디카르포.함박꽃 함박웃음 활짝 핀 작약


update 08.6.01
함박꽃 함박웃음 활짝 핀 작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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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가운 6월의 햇살 아래 의성 작약이 만발했다. 작약하면 의성으로 우리나라 작약 생상량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유명하다. 의성 작약이 집단으로 재배되는 곳은 912번 지방도변의 상리리,옥산 감계리,사곡 신감 등으로 해마다 5월 중순에서 6월초 사이 이 길을 지나는 나그네의 시선을 끈다.
지금쯤은(6.1) 작약꽃의 한물은 지났지만 아직도 산골의 작약은 한창이다.

작약꽃을 제대로 보려면 5월 25일 전후인데 지금쯤은 시기적으로 좀 늦으나, 골이 깊은 사곡면 양지리 산골에 펼쳐진 2,000여평의 작약포장은 활짝 피어 사진 찍기도 좋고 볼 만하다.
주인장 이양우씨는 이번  주말(6.1~7)까지는 좋을같다고 전한다.
912번 지방도 주변의 작약은 끝물로 거의 지고 있기 때문에 사정을 모르고 찾았다가는 사진 한 장 못찍고 돌아서는 낭패를 당할 수 있으므로 사전에 알아보고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작약은 일명 함박꽃이라고도 한다. 함박꽃 송이처럼 굵고 탐스럽게 내리는 눈을 함박눈이라 하고, 환하게 크게 웃는 웃음을 함박웃음 짓는다고 한다. 이같이 함박꽃은 굵고, 탑스러워 원예용으로 사용하고 뿌리는 진통·복통·월경통·빈혈·타박상 등의 약재로 쓰인다.

작약의 고향인 의성 작약이 지금은 저가의 중국산에 밀려 한 물 갔다지만 아직도 해마다 이맘때 쯤이면 그 어느 곳보다 함박꽃이 넉넉히 피고 지는 고장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작약을 재배한 의성은 경북의 한가운데 내륙으로 토심이 깊고, 겨울은 춥고, 여름에 더워 작약재배의 적지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작약 생상량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하고 약효도 좋기로 이름나 있다.

작약은 중국 진나라 때, 이미 화초로서 가꾸어져 꽃세상의 재상인 "화상(花相)"이라 칭하였다.
"화왕(花王)"인 모란 다음으로 아름다운 꽃이라 하였다.
"화왕(花王)"인 모란(木壇)은 나무이고 함박꽃(작약 芍藥)은 풀(숙근초)이라는 점이 다르다.

화투장에 그려진 목단은 다른 나무와 마찬가지로 줄기가 땅 위에서 자라서 겨울에도 죽지 않고 남아 있지만, 작약은 겨울이 되면 땅 위의 줄기는 말라죽고 뿌리만 살아 이듬해 봄에 뿌리에서 새싹이 돋아 나온다.

모란과 작약의 또 하나 재미있는 점은 꽃이 피는 순서이다. 반드시 "화왕(花王)"인 모란이 진 후에야 비로소 "화상(花相)"인 작약이 피기 시작한다. 절대로 "화왕(花王)"인 모란보다 앞서 피지 않는다.

현재의 작약 이름을 한자로 "芍藥"이라 쓰지만 본초강목에는 "작藥"으로 기재되어 있다.
"작"자는 얼굴이나 몸가짐이 아름다운 모양을 뜻하는 말로서 "꽃이 아름다운 약초"라는 데서 유래하였다.
본초강목에는 꽃이 아름다운 약초 작약의 약효를 이렇게 적고 있다.
'白芍酸寒腹痛痢 能收能補虛寒忌 ' 백작약은 맛이 시고 성한하다. 복통과 이질을 멎게하고 수렴도 능하고 보익도 능하다. 그러나 허한에는 금기한다. 소독이 있다.
'赤芍酸寒能散瀉 破血通經産後畏 ' 적작약은 맛이 시고 성한하다. 산사시키는 능력이 있어서 파혈하고 통경하나 산후에는 조심한다.' 흰것은 보하고 붉은 것은 사한다.

이와 같이 함박꽃은 "화상(花相)"이란 이름에 걸맞게 . 크고 탐스러운 꽃은 마음의 약이되고, 그뿌리는 아픈 육신을 고쳐주는 약이되는 아름다운 약초다.

"화상(花相)"인 작약 (芍藥)에 얽힌 이야기가 고려사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고려 충렬왕 23년 5월에 노국공주는 수령궁 향각 뜰을 거닐다가 적(赤)작약이 만발한 것을 보고 시녀에게 꽃 한송이를 꺾어 오라고 했다.
그 꽃을 받은 공주는 한참 동안 감상하다가 결국 흐느껴 울고 말았다. 공주는 멀리 떠나온 고국에도 한창 피어 있을 적작약을 생각한 것이다.
그 뒤로 공주는 몸져 자리에 눕게 되고 끝내는 숨지고 말았다고 한다.

중국에서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사천에 사는 어느 선비의 이야기가 있다.
이 선비는 만나는 사람도 별로 없이 글을 읽으며 무료하게 지냈는데 오직 한가지 뜰 앞에 붉게 핀 작약꽃을 바라보는 것만이 유일한 취미였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어여쁜 아가씨가 찾아와 집안 일을 거들며 함께 지내길 청했다.
처녀는 집안 일도 잘 할 뿐더러 교양과 재치가 있어 선비와 좋은 동무가 되었다.
하루는 선비를 찾아온 도인에게 선비가 처녀를 자랑하자 처녀는 자신이 사람이 아니라 작약의 혼이라고 말하고 다시 꽃으로 돌아가고 말았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저승의 왕인 프르톤은 불사신인 헤라클레스가 저승으로 내려오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래서 화가 난 헤라클레스는 프로톤에게 활을 쏘아 피를 흘리게 했다.
다급한 프르톤은 하늘로 급히 올라가 신의 의사인 페온에게 살려 달라고 간청했다.
그러자 페온은 올림퍼스 산에서 작약을 캐어다. 그의 상처를 낫게 했다고 한다.

2006.5.21 로포라이터 丁海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