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한과 정을 노래한 향토음악인 정귀문

- 바다가 육지라면, 마지막 잎새, 먼후날, 동네방네 뜬소문......외 1,000여곡을 만든 향토 가요 작사가 정귀문 -

"얼마나 멀고먼지 그리운 서울은 파도가 길을막아 가고파도 못갑니다. 바다가 육지라면 바다가 육지라면 배떠난 부두에서 울고있지 않을것을 아--- 아--- 바다가 육지라면 이별은 없었을 것을 "

"그 시절 푸르던 잎 어느덧 낙엽 지고 달빛만 싸늘히 허전한 가지 바람도 살며시 비켜가건만 그 얼마나 참았던 사무친 상처 길래 흐느끼며 떨어지는 마지막 잎새 "
'바다가 육지라면', '마지막 잎새' 작사가 정귀문(鄭貴文)은 고향의 한(恨)과 정(情)을 담은 주옥같은 가요 1,000 여곡을 만들어 국민의 심금을 울린 향토 음악인이다.
신라의 땅 고도 경주 현곡에서 태어나 단 한 번도 고향(경주시 현곡면 하구3리 1057번지)을 떠난적이 없이 지금껏 고향마을을 지키며 고향을 소재로 서정적(抒情的)인 노랫말을 만드는 진정 대한민국 가요 창작인이다.

그 시절 푸르던 잎 어느덧 낙엽 지고 마지막 잎새가 허공을 가르는 입동지절인 2014년 11월 7일 배호가 간지 43년 오늘이 배호 43주기 기일날에 '마지막 잎새' 노래비를 찾아 보았다.
'마지막 잎새' 노래비는 작사가 정귀문(정문) 선생의 고향이자 현재 거처이기도 한 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 남사 저수지 소공원에 건립되었다.
이 노래비는 가수 배호의 영.호남 팬클럽의 성금으로 경주시에서 부지를 제공받아 2003년 6월 22일 노래비가 제막 되었다.
경주시 금장에서 북서쪽 영천 고경 28호 국도와 이어지는 925번 지방도(아래 지도 참조)를 타고 조금 가면 하구, 가정리를 지나 얕으막한 언덕길을 오르면 오른쪽으로 남사 저수지이다.
뒤쪽으로 남사리고 맞은편은 어림산 고개로 영천 가는 길이다.
925번 지방도에 붙어있는 남사저수지가에는 서너 대가 주차할 수 있는 공간에 소공원이 꾸며지고 이곳에는 '마지막 잎새' 배호의 노래비가 세워져있다.
그냥 앞만 보고 가노라면 그냥 칠 수 있는 위치이다.
노래비 정면에는 '마지막 잎새 '노랫말, 기둥에는 '불세출의 가수 배호의 마지막 잎새 노래비'라고 새겨져있고, 측면에는 가수 배호의 약력, 작사가 정귀문의 약력 그리고 뒷면에는 '마지막 잎새' 노래비 건립 경위를 새겼다.

'마지막 잎새 ' 노래비 앞에는 누군가가 가져놓은 조화 한다발이 찬 바람에 떨고 있었다.
비(碑)는 사적을 기념하기 위하여 돌이나 쇠붙이, 나무 따위에 글을 새기어 명소(名所)에 세우는게 일반적인데, 배호의 '마지막 잎새' 노래비는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는 그냥 904번 지방도 저수지가에 세워졌다.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도 배호의 '마지막 잎새' 노래비가 있는지조차 모르고 지나치기 일쑤이다. 그리고 이곳에 '마지막 잎새 ' 노래비가 있는지 아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알고 보면 세워 질 만한 곳에 세워졌는데.....

남사못이 있는 현곡은 '마지막 잎새'의 노랫말 탄생지이다. 남사못 아랫마을인 하구마을에는 우리나라 가요 사에 큰 족적을 남긴 정귀문 선생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이다.
'마지막 잎새’, ‘바다가 육지라면’ 등 숱한 인기 가요 1,000여 곡의 노랫말을 지은 정귀문(예명 정문)씨는 정(情)과 한(恨)을 노래한 서정적인 향토 음악인이다.
우리나라 가요 사에 끼친 공으로 제12회 한국가요 창작인 공로대상(1998 ), 제6회 대한민국 연예 예술상(1999)을 수상하였다.

정귀문 작가는 1941년생으로 27세 때인 1968년 KBS방송가요(숲 속의 외딴집)발표를 시작으로, TBC신가요 박람회(그림)발표. (만추)로 세광출판사 추천가로 데뷔하였다.
40년 간 그가 만든 주옥같은 노랫말은 1,000여곡으로 널리 알려진 대표작으로 '마지막 잎새'. '바다가 육지라면'.  '먼훗날'.  '동네방네 뜬소문'을 손꼽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노래비를 가진 가수로는 극민가수로 추앙받는 고 배호씨를 꼽을 수 있다.

'돌아가는 삼각지' 노래 발상지인 서울 용산구 한강로1가 삼각지 교차로의 '돌아가는 삼각지' 노래비(2001.11.13), 배호의 유택인 경기 양주군 장흥면 신세계공원묘지의 '두메산골' 노래비(2002.4.21), '마지막 잎새' 탄생지인 경주시 현곡면 남사 소공원의 '마지막 잎새' 노래비(2003.6.22), 그리고 강릉시 주문진의 '파도' 노래비(2003.7.12) 등 네곳이다.

네곳 중 노래의 탄생지로 노래를 만든 음악인이 거주하는 곳에 세워진 '마지막 잎새' 노래비는 어느곳보다 뜻이 깊다고 하겠다.
이 노랫말을 지은 작사가 정귀문 선생이 육성으로 전한 '마지막 잎새' 노래를 만든 일화는 이러하다.

바람 한 점없이 서리라도 내릴 듯한 달빛만 싸늘한 1970년 어느 가을 밤.
현곡초등학교 돌담장를 걷던 29세의 문학청년 정귀문은 흐느적대며 떨어지는 손바닥만한 플라타너스 낙엽 한 장을 무심코 잡아든다.
당시 현곡초등학교 담장 가에는 아름드리 플라타너스 나무가 담 너머로 가지를 길게 뻗어 늦가을이면 수많은 낙엽을 흩날렸다.
알싸한 밤 공기를 가르며 허공을 맴도는 마지막 입새를 잡은 정기문은 불현듯 소년기 때 이별한 친구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무친 친구에 대한 그리움은 낙엽이 곧 자신의 분신인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했다.
그 친구란, 까가머리 소년 시절 한 살 아래의 현곡국민학교(당시 교명) 교장선선생님의 딸이었다. 그 소녀와 친구로 지내든 정기문은 첫사랑의 속알이를 대단히 했었다 .
세월은 흘러도 그 소녀의 잔상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 시절 그 소녀의 생각에, 그 옛날 뛰놀던 달빛이 싸늘한 운동장 플라타너스 낙엽을 밟으며, 좋아한다 말한마디 못하고 헤어진 그 소녀에 대한 심경을 문학 청년 정귀문이 가다듬은 노랫말이 바로 '마지막 잎새'이다.

1.그 시절 푸르던 잎 어느덧 낙엽 지고
달빛만 싸늘히 허전한 가지
바람도 살며시 비켜가건만
그 얼마나 참았던 사무친 상처 길래
흐느끼며 떨어지는 마지막 잎새

2.싸늘히 부는 바람 가슴을 파고들어
오가는 발길도 끊어진 거리
애타게 부르며 서로 찾을걸
어~이해 보내고 참았던 눈물인데
흐느끼며 길 떠나는 마지막 잎새

'마지막 잎새'는 인생의 무상함을 반추하는 애절한 정서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명곡이다.
'마지막 잎새' 노래비문에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 천재 요절가수 백호님.
우리는 숨쉬기조차 버거워하며 필사적으로 들려주었던 님의 노래 '마지막 잎새'를 기억하합니다.
산 좋고 물 좋고 인심 또한 후덕한 고장 경북 경주시 현곡면 .
바로 '마지막 잎새'의 탄생지이자 글을 쓰신 정귀문 선생님의 고향임을 기억합니다. 바람 한 점없는 1970년 어느 가을 밤 .
아름드리 플라타너스 나무에 힘없이 달려 있던 나무잎들이 우수수 낙엽이 되었습니다. 호기심에 떨어진 낙엽을 집어든 정귀문 선생님은 불현듯 소년기 때 이별한 친구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사무친 친구에 대한 그리움은 낙엽이 곧 자신의 분신 인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했습니다. 그 심경을 담은 '마지막 잎새'는 인생의 무상함을 반추하는 애절한 정서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노랫말로 옮긴 명곡입니다.
이듬해인 1971년 7월 작곡가 배상태님이 곡을 붙여 배호 님은 그의 유작앨범이 된 '0시의 이별 앨범'에서 이 노래를 발표했습니다.
4개월 뒤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듯 29살의 젊은 나이에 배호님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당시 인기순위 4위 곡 '마지막 잎새' 는 온국민의 가슴을 적시며 오히려 정상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지요. 30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서야 불세출의 가수 배호님의 '유작 노래 창작자'라는 특별한 사연을 간직한 정귀문 선생님의 '마지막 잎새' 노랫말을 기념하려 합니다.
40년 가까운 세월동안 조미미의 '바다가 육지라면'등 수많은 히트곡들을 발표하셨지만 늘 아마추어 정신으로 고향을 사랑하며 고향에 살며 1000여 곡의 한국대중가요를 창작해오신 현곡이 낳은 명작사가 정귀문 선생님. 그 분의 고집스런 창작인생이 배호님의 유작 노래비 '마지막 잎새'에 담겨져 후세에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에 뜻 있는 분들이 작은 정성을 담아 이 노래비를 바칩니다.  2003년 6월 22일 www.baehofan.com 』

'마지막 잎새', '0 시의 이별', '안녕', '또하나의 이별' , '파란낙엽' 등의 노랫말이 마지막 이별을 준비하고 있는 듯한 감을 받게 된다.
배호는 자신의 운명을 예감이라도 하듯 '마지막 잎새'를 부르다 무대에서 쓰러졌다. 그가 떠난 71년11월은 미처 떨어지지 않은 가로수의 낙엽까지도 슬픔에 하나둘씩 사그러 들었고, 팬들은 그의 타계를 슬퍼하고 애도하였다.

북잽이 무명가수로 출발하여 생을 마감때까지 투병(신장염)으로 사투를 반복했던 배호의 데뷔곡은 '굿바이(63년)', 마지막으로 취입한 노래인 '마지막 잎새'와 '영시의 이별'이 유작이 되었다. 배호는 이상하게도 노랫말처럼 파란낙엽되어 29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마지막 잎새'를 한(恨)이 맺히게 마지막 노래로 목메어 부르고 배호가 타계했다는 비보를 작사가 정귀문은 고향마을 하구리 사랑방에서 새끼를 꼬다가 접했다고 한다.
지금도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는 배호의 기일(11.7)이면 깊은 생각에 빠지게 된다고 한다.
자신이 만든 '마지막 잎새' 제목 처럼 마지막 노래가 되어 팬들의 살려내라는 항의를 많이 받기도 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필자가 알고있는 정귀문 선생은 가요계의 선비이시다. 학식이 있고 행동과 예절이 바르며 의리와 원칙을 지키고 관직과 재물을 탐내지 않는 고결한 인품을 지닌 사람이다.
음악인생 50년.
수많은 힛트 가요의 유명작가로 관직과 재물을 탐내지않고 평생을 흙에 살면서 의리와 원칙을 지키는 겸손한 예술인이다. 이 시대의 선비라 칭하여도 조금도 손색이 없는 분이시다.
논두렁에서, 낙엽지는 거리에서 혹은 사랑방에서 새끼를 꼬면서 만들어진 정귀문 선생의 주옥같은 가요는 대중의 가슴에 녹아 상처를 어루만지며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였다.
매주 수요일 2시면 포항 mbc에서 정귀문 선생의 목소리가 전파를 탄다. "싱송생송 전화노래방"의 심사를 맡고있다.
아마도 그의 얼굴은 몰라도 목소리는 귀에 익은 청취자들이 많을 것이다. 정귀문 선생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제일 행복하게 사시는 분이다.

정귀문씨랑 이런저런 세상 이야기, 음악 이야기를 나누며 마지막 잎새 노랫말 발상지인 만추 현곡초등학교 낙엽 진 교정을 거닐며 그때 그 시절 추억을 되새기고 발길을 남사 저수지 마지막잎새 노래비를 둘러보았다.
사람이 만나고 맺어지는 것을 불가에서는 인연(因緣)이라 부르는데 필자가 정귀문씨랑 인연을 맺어 때가되면  밥이나 먹으며  인연을 이어가는 형님같은 분이시다.
세상사 인연이 오래갈갈 줄 알았는데 소원해지기도하고 그냥 지나가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벗이되는 겨우가 있다.세상사 인연이 뭐 별건 아닌 것 같다.일년에 한 두 번씩 밥이나 먹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정귀문하면  명가요  ‘바다가 육지라면’ 을 빼놓을 수 없다.

‘바다가 육지라면’은  KBS가요무대에서 선정한 ‘건국 60년 명가요 60선’에 선정된 대한민국 현대가요사에 길이 남을 명가요다.

이왕 나선 김에 ‘바다가 육지라면’ 노래비도 둘러보기 위해 다시 발길을 감포 나정 해변으로 돌렸다. 북쪽은  단풍이 한물갔지만, 아직 남쪽 바닷가는 오늘이 입동지절이지만  추령 고갯길 토함산 단풍은 절정이다.기상 예보대로 동해안은 만추 찬비가 차창을 때린다. 비를 맞은 산야의 단풍은 더 색이 짙어 아름답다.

69년 그때는 추령 길이 비포장 흙길로 험했고 나정 해변은
태곳적 그대로 하얀 백사장에 파도만 밀려왔다고 한다.
가난한 문학 청년정귀문은  신발 하나, 옷 한 벌 조차도 변변찮았던 배고팠던 현실에 답답한 마음을 달래려 1969년 이른 봄날  바람이나쐬며 낚시질이나 할까 하는 심정으로 감포 나정 해변을 찾았다.낚싯대를 드리우고 망망대해 수평선을 바라보며 자신의 현실이 저 바다 섬에 섬에 갇혀 있는 처지로, 저 바다가 육지라면, 이 몸이 철새라면 막막한 현실을 벗어 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시리도록 푸른 파도 위에 정귀문은 그만의 특유한 情과 恨을 밑밥처럼 풀어놓고 노랫말 낚시에 몰입 고기는 낚지 않고  한 단어씩 주옥같은 노랫말을 낚아 올리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바다가 육지라면! 이 몸이 철새라면 ! 하염없이 하염없이 그는 그렇게 목이 메다가 불후의 명 가사 바다가 육지라면 명가요 노랫말이 이곳 나정해변에서 태어났다.
 
 2008년 KBS가요무대가 선정한 대한민국 "건국 60년 명가요 60선"에 뽑히기까지 만만찮은 그 세월 반세기 동안 끊임없이 불리고 사랑받아 온 명가요, 바다가 육지라며! 명가요 노랫말을 돌에 새겨 노랫말의 발상지인 이곳에 나정 해변에 지자체에서 노랫말 창작  현장을 기념하고 기리자는 뜻을 모아 여기에 세웠다. 

얼마나 멀고먼지 그리운 서울은
파도가 길을 막아 가고파도 못갑니다
바다가 육지라면 바다가 육지라면
배 떠난 부두에서 울고 있지 않을 것을
아- 아- 바다가 육지라면
이별은 없었을것을

어제 온 연락선이 육지로 가는데
할말이 하도많아 하고파도 못합니다
이몸이 철새라면 이몸이 철새라면
뱃길에 훨훨날아 어디던지 가련마는
아- 아- 바다가 육지라면
눈물은 없었을 것을  

 2014.11.7  글. 그림  자유기고가  정해유
 

 

 

 

 

 

 

 

   △ 마지막잎새 노랫말 창작지 현곡초등학교 담장 길 너머로 가지를 뻗어 늦가을이면 수많은 낙엽을 흩날린다.

바람 한 점없이 서리라도 내릴 듯한 달빛만 싸늘한 1970년 어느 가을 밤.
현곡초등학교 돌담장를 걷던 29세의 문학청년 정귀문은 흐느적대며 떨어지는 손바닥만한 플라타너스 낙엽 한 장을 무심코 잡아든다.
당시 현곡초등학교 담장 가에는 아름드리 플라타너스 나무가 담 너머로 가지를 길게 뻗어 늦가을이면 수많은 낙엽을 흩날렸다.
알싸한 밤 공기를 가르며 허공을 맴도는 마지막 입새를 잡은 정기문은 불현듯 소년기 때 이별한 친구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무친 친구에 대한 그리움은 낙엽이 곧 자신의 분신인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했다.
그 친구란, 까가머리 소년 시절 한 살 아래의 현곡국민학교(당시 교명) 교장선선생님의 딸이었다. 그 소녀와 친구로 지내든 정기문은 첫사랑의 속알이를 대단히 했었다 .
세월은 흘러도 그 소녀의 잔상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 시절 그 소녀의 생각에, 그 옛날 뛰놀던 달빛이 싸늘한 운동장 플라타너스 낙엽을 밟으며, 좋아한다 말한마디 못하고 헤어진 그 소녀에 대한 심경을 문학 청년 정귀문이 가다듬은 노랫말이 바로 '마지막 잎새'이다.

△ 마지막잎새 노랫말 창작지 현곡초등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