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등산(天燈山)봉정사(鳳停寺) 겨울여행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소재 천등산(574) 남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봉정사(鳳停寺)는"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란 영화 촬영지로,영국여왕 엘리자베스 11세가 방문한 이후 인근의 하회마을과 더불어 안동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뜬 사찰이다.
신라 문무왕 12년(672년) 의상 스님의 제자인 능인 스님에 의해 창건된
천년고찰로 국보,보물 등 많은 문화재를 품고 있어 한번 쯤 둘러볼 만한 곳이다.
이곳에는
국보 15호 극락전, 보물 55호 대웅전, 보물 448호 화엄강당, 유형문화재 182호 삼층석탑, 그리고 부처님 후불벽화, 최고의 목조관세엄보살 등 많은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의상대사가 도력으로 만든 종이 봉황을 부석사에서 날리자 이 곳에 내려 앉아 봉정사라 불렀다는 전설이 전하여 온다.일설에는 의상이 화엄기도를 드리기 위해서 이산에 오르니 선녀가 나타나 횃불을 밝혔고 청마靑馬가 앞길을 인도하여 지금의 대웅전 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산이름을 천등산(天燈山)이라 하고 청마가 앉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절 이름을 봉정사라 하였다고 한다.

중앙고속도로 서안동IC에서 영덕방향 34번국도를 타고 노리,명리를 지나 안동시 송현동 4거리에서 봉정사 이정표를 따라 좌회전 924번 지방도를 타면 서후면 소재지 성곡을 지나 태장마을에서 좌회전 조금 오르면 봉정사 주차장에 닿는다.
주차장에서는 절이 보이지 않는다. 명옥대를 옆으로 솔숲 언덕을 오르다 보면 저만치서 지붕이 서서히 나타나고 조금 더 오르면 완전한 모습으로  봉정사 일주문이 눈에 들어온다.


명옥대(鳴玉臺  문화재자료 174호)는 천등산 계곡 작은 폭포앞에 서 있는 정자로 조선 현종 6년(1665)에 퇴계 이황이 후학들에게 도를 강의하던 자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정자이다.
 정자에는 ‘명옥대’라 새긴 바위가 남아 있다. 정자보다도 폭포 위쪽의 큰 바위에서 내려다 보는 정자의 풍치가 아름답다.

매표소에서 일주문까지 오르는 길이 급한 경사를 이루다가 일주문에서 잠깐 평지를 만들어 여기에 일주문을 세운 것이 아닐까 싶다.
봉정사 일주문은 자연석으로 쌓은 기단 위에 둥근 기둥을 나란히 일직선상에 세우고 그 위에 공포를 짜서 결구
(結構)하고 도리를 걸치고 서까래를 걸어 완성시켰다.
처마 밑에는 '天燈山鳳停寺' 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1

일주문을 지나면 양쪽으로 촘촘히 늘어선 겨울나뭇가지 사이로 고색창연古色蒼然한 절집이 보인다. 봉정사 안내각옆으로는 지조암을 오르는 길이다.

봉정사의 대문격인 덕휘루德輝樓밑을 통과하면 대웅전뜰이다.
2층의 누각형태를 한 누문에는 그림과 같이 "덕휘루德輝樓'란 편액(扁額)이 걸려 있는데,언제부터인가는 몰라도 이 누문을 봉정사만세루 (鳳停寺萬歲樓)라 불리어 진다.
만세루는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앞면에서 보면 2층이나 경사진 지형을 이용하여 뒷면은 단층으로 처리하였다. 아래층 가운데 칸에 출입문을 두었으며, 위층은 네모난 우물 정(井)자 모양의 우물마루 바닥에 평난간으로 둘러져 있다.
만세루 출입문을
오르면 보물 55호 대웅전이다.

대웅전 왼쪽의 국보 15호 극락전은 1972년 보수공사때 고려 공민왕 12년(1363)에 지붕을 크게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담긴 상량문을 발견하였는데, 우리 전통 목조건물은 신축후 지붕을 크게 수리하기까지 통상적으로 100~150년이 지나야 하므로 건립연대를 1200년대 초까지 올려볼 수 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통일신라시대 건축양식을 본받고 있는 목조 건물로 보고 있다.

일반적으로 봉정사를 찾는 사람들은 대웅전과 극락전만을 보고 발길을 돌리지만 대웅전 오른쪽 옆길 언덕위의  영산암을 둘러 보라고 권하고 싶다.

경북민속자료 제126호 영산암은 ‘ㅁ’자 형태의 아담한 절집 마당에는 고목 향나무와 기암괴석이 조화를 이룬 겨울 암자는 고즈넉하다. 법당에 봉안된 토불도 친근감이 든다.
영산암은 몇해전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라는 영화를 촬영한 장소가 되어 주목을 받은 곳이다.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낡고 퇴락한 암자와 빼어난 자연경관의 조화 속에 노승의 초췌하리만치 비장한 불도의 엄숙함과 진실성을 빼어난 영상미와 절제된 언어로 관객들에게 전달하여 도대체 어느 장소에서 찍었기에 저토록 훌륭한 영상미를 살려냈을까 하는 궁금증을 자아낸 바 있는데 그 영화의 배경이 된 곳이 바로 이 영산암이다.
 

 

 

 

▲  보물 제449호 고금당(古金堂)
보물 제449호로 지정되어 있는 고금당은
극락전의 앞 서쪽에 세워져 있다. 이 건물은 동쪽에 있는 화엄강당과 같은 시기에 같은 목수에 의하여 건축되어 조선시대 중기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 중의 하나이다. 그

▲  봉정사 일주문은 자연석을 가지고 허튼층쌓기로 마무리 한 기단 위에 둥근 기둥을 나란히 일직선상에 세우고 그 위에 공포를 짜서 결구하고 도리를 걸친 다음 서까래를 걸어 완성시켰다.
지붕은 맞배지붕에 겹처마를 하고 측면에 풍판을 설치한 구조이다. 공포의 구조는 다포양식을 사용하였으며 처마 밑에는 '天燈山鳳停寺' 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 천등산 지조암
천등산 암자인 지조암은
, 일주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면 참나무 숲을 지나면 넓은 터가 펼쳐지고 봉정사 안내판이 이곳에 세워져 있다.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 방향으로 400m 정도 오르면 지조암에 닿을 수 있다.
지조암은 법당과 요사채, 칠성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암자는 흙돌담으로 둘러쳐져 있고 서쪽 모퉁이에 출입문이 나 있다. 출입문을 들어서면 법당이 가장 앞쪽에 배치되어 있고 법당 뒤에 칠성각이 세워져 있고 그 동쪽에 요사채가 자리잡고 있다.
지조암 귀일스님의 기와그림으로  널리 알려진 암자인데, 귀면과 갖가지 형상의 동식물들을 기와에 그려넣은 그림을 볼 수 있다.  

   

 

 

 

 

 

 

 

 

 

 

 

 

 

▲ 봉정사 영산암
경북민속자료 제126호 영산암은 ‘ㅁ’자 형태의 암담한 절집 마당에는 고목 향나무와 기암괴석이 조화를 이루고 법당에 봉안된 토불은 친근감이 든다.
영산암은 몇해전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라는 영화를 촬영한 장소가 되어 주목을 받은 곳이다.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낡고 퇴락한 암자와 빼어난 자연경관의 조화 속에 노승의 초췌하리만치 비장한 불도의 엄숙함과 진실성을 빼어난 영상미와 절제된 언어로 관객들에게 전달하여 도대체 어느 장소에서 찍었기에 저토록 훌륭한 영상미를 살려냈을까 하는 궁금증을 자아낸 바 있는데 그 영화의 배경이 된 곳이 바로 이 영산암이다.


명옥대(鳴玉臺  문화재자료 174호)
천등산 계곡 작은 폭포앞에 서 있는 정자로 조선 현종 6년(1665)에 퇴계 이황이 후학들에게 도를 강의하던 자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정자이다.정자에는 ‘명옥대’라 새긴 바위가 남아 있다. 정자보다도 폭포 위쪽의 큰 바위에서 내려다 보는 정자의 풍치가 아름답다.


 

찾아가는 길

♠ 서울:중앙고속도로-서안동IC- 34번국도 시내방향으로 우회전- 5 km - 송하교 삼거리 좌회전- 금계동 학봉종택-성곡(서후면 소재지)-봉정사
♠ 대구-중앙고속도로-
서안동IC- 34번국도 시내방향으로 우회전- 5 km - 송하교 삼거리 좌회전- 금계동 학봉종택-성곡(서후면 소재지)-봉정사
○ 주변 볼거리:하회마을, 도산서원,안동댐(월영교), 안동 아가페상, 지례예술촌

 2007.1.4 글.사진 정해유(영남일보사외편집위원,정해유포토디자인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