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로 떠나는 패키지 여행   - 회룡포.황목근.삼강주막 -

   태백 황지(黃池)에서 발원하여 골골의 지류를 모아 영남땅 1,300리 길을 굽이굽이 흘러돌아 남해로 흘러드는 낙동강은 영남인의 젖줄이요, 어머니의 품속같은 삶의 터전이다.

특히, 예천의 산하를 굽이돈 물줄기는 내성천 지류(支流)를 이루는데, 내성천은 명승(名勝) 두곳을 품은 곳으로 낙동강 1,300리 물길중 그 풍경이 으뜸인 곳이다.
경관(景觀)이 뛰어나 이름난 곳을 국가가 인정하여 문화재로 보호하는 자연풍경을  명승(名勝)이라 하는데,  예천선몽대(명승 제19호)와 예천회룡포(명승 제16호)가 바로 내성천이 빚은 명승이다.

 

먼저 예천 관광 1번지격인 명승 제16호 예천회룡포(醴泉回龍浦)는 예천군 용궁면 대은리와 향석리 일대에 펼쳐진다.

삼면이 물이 돌고 한면만 육지에 연결된 회룡포의 강폭은 약 60∼80m에 불과하다. 그래서 뭍속의 섬이란 표현이 더없이 어울린다.
물줄기를 삽으로 한나절 파헤쳐 버리면 섬이 되어 버릴 것 같다.
이 곳은 옛적 한때는 절해 고도인 유배지 였단다. '한국 땅이름 큰사전(1991년 간행)'에 '의성포(義城浦)는 회룡 남쪽에 있는 마을로서 내성천이 감돌아 흘러 섬처럼 되었고, 조선조 때 귀양지였다고 전할만큼 한갓진 곳이다.
 

원래는 ‘의성포’였는데, 의성군에 있는 것으로 착각할까 싶어 예천군에서는 회룡포로 부르기로 했다고 한다.

이곳은 드라마 '가을동화'의 촬영지로 은서와 준서의 어린 시절에 자전거 타고 다니던 곳과 보에서 물장난 치던 곳이다.

 

▲  회룡대에 올라서면 발아래 내성천이 마치 거대한 뱀이 또아리를 틀듯 휘감아 돌아가는 강물이 만들어낸 드넓은 모래사장이 마을을 포근히 감싸고, 그 안에 갇혀버린 섬마을 회룡포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8, 9채 정도의 가옥들이 주위 논밭과 어우러져 평화스러운 전원 풍경으로 다가온다.

드라마 '가을동화'로 자태를 드러내어 사진 마니아들의 촬영 명소로 널리 뜬 곳이다.

대구에서 회룡포 가는 빠른 길은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예천 IC를 빠져나와 문경방향으로 20여분 달리다 보면 용궁에 닿는데 용궁 진입로 신호등 옆에 '가을동화 촬영지 회룡포' 란 큼직한 이정표가 보인다.

용궁면 소재지에 진입하여 몇백미터 가다 보면 왼쪽으로 홍능종묘 옆으로 회룡포 이정표가 보인다.

좌회전하여 한 10여분 시골 길을 타다보면 향석 마을이 나오고 '용궁향교'가 보인다. 이곳에서 조금 나아가면 오른쪽으로 회룡포 이정표가 나온다.

차한대가 겨우 지날 정도의 내성천 다리를 건너면 눈앞에 장안사, 회룡대 이정표를 따라 계속 직진하면 회룡포 마을로 들어가고, 회룡대, 장안사로 가는 이정표를 따라 우회전하면 장안사.회룡대에 닿는다.

회룡마을은 사실 별로 볼것이 없다.

내성천 위로 뿅뿅다리가 세워져 있어 사람이 건너갈 수 있는데 회룡포 내부는 대부분 논으로 별다른 볼거리는 없다.

 

▲  비룡산(190m) 정상의 회룡대
 회룡포의 멋진 풍경은 내성천을 사이에 두고 회룡포와 마주한 비룡산(190m) 정상 회룡대에 올라야 이 일대의 멋진 전경을 한눈에 바라보기에 좋다.
그래서 이곳을 간다면 마을로 진입치 말고 장안사.회룡대 방향으로 바로 가야만 발품을 팔지 않는다.

회룡대는 비룡산 중턱의 장안사 경내를 지나는데 숨을 돌릴겸, 잠시 장안사 경내를 한 바퀴 돌아보는 것도 여행자의 마음을 포근하게 한다.

 

▲  비룡산장안사(長安寺)

장안사는 통일신라 시대때 세워진 천년의 역사을 지닌 아직까지 이름이 별로 알려지지 않은 고찰이다.

천년 고찰 장안사(長安寺)는 20여년 전 한 스님이 중창불사를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쇠락할 대로 쇠락했다고 한다. 홀연히 찾아 온 두타스님은 곡괭이로 산길을 내고 우마차로 들보를 날라 중수했다고 한다.

장안사 앞 잘 다듬어진 등산로 초입에는 큰 대불이 여행자의 눈길 끈다.


이곳은 팔각 정자가 있고 음료수대가 있어 잠시 쉬어 갈 수도 있다.

여기서부터 비룡산 정상 회룡대까지는 300m정도의 가파른 송림 오솔길 침목 계단길이 이어진다.

회룡포를 내려다 보면서 쉬엄 쉬엄 올라도 10여분 정도 오르면 깎아지른 절벽위에 팔각정의 전망대 회룡대가 눈앞에 나타난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발아래 내성천이 마치 거대한 뱀이 또아리를 틀듯 휘감아 돌고, 흐르는 강물이 만들어낸 드넓은 모래사장이 마을을 포근히 감싸고, 그 안에 갇혀버린 섬마을 회룡포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8, 9채 정도의 가옥들이 주위 논밭과 어우러져 너무도 평화스러운 전원 풍경으로 다가온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회룡포의 모습은 비룡산 가파른 길을 오를때 쌓였던 피로를 말끔히 씻어내릴 만큼 퍽 인상적이다.

 

▲  비룡산(190m) 회룡대 오솔길
 회룡대에 앉아서 탁트인 회룡포를 감상하면서 사진을 촬영을 하기도 아주 좋은 위치이다.

이곳은 해마다 예천군의 해맞이 행사가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의 경치는 사계절 중 가을이 으뜸이다. 사진에서처럼  논밭에는 곡식이 누렇게 익어가고 비룡산 단풍이 곱게 물드는 10월 중순경이 면 한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 하다.

특히, 이른 아침에 회룡대에 올라 골안개라도 만나는 날이면 느낌이 있는 사진을 담을 수 있어 사진 마니아들은 이런날을 땡잡았다고 한다.

이 가을이 다가기 전에 가을이 한가득한 회룡포를 찾아보자. 회룡포 전경을 담기엔 아마도 벼수확전 화룡마을이 벼들로 노랗게 물들고 회룡대가 단풍으로 뒤덮는 10월 20일 전후가 사진 촬영의 적기로 볼 수 있다.

 

이곳까지 왔으면 지척의 천연기념물 400호 황목근(黃木根) 할배나무를 뵙고 가야지 않겠는가?


황목근(黃木根) 할배나무는 회룡포에서 차로 10여분 거리인 용궁면 금남리 696번지 금원마을 들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천연기념물 400호 황목근(黃木根)은 토지를 소유하고 국가에 세금을 내는 납세목(納稅木)으로  성은 황(黃)씨요, 이름 목근(木根)인 500살 팽나무이다.

줄기둘레 3.2m, 키 15m에 이르는 황목근 할배 나무의 유래는 이러하다.

금원마을에는 황목근과 관련된 기록이 1903년부터 전해오는데 1903년의 '금원계안 회의록' 1925년의 '저축구조계안 임원록' 등이 전수되고 있다.

전해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5월에 누런 꽃을 피운다 하여 “황(黃)”씨 성을,  근본 있는 나무라는 뜻을 따 “목근(木根)”이라 작명 하였다고 한다.

1939년 금원마을 사람들이 쌀을 모아  마련한 마을의 공동 재산인 토지를 황목근(黃木根) 앞으로 등기 이전했다고 한다.

▲  12,232㎡(3,700여평)의 땅을 소유한 토지 부자인 황목근 할배나무는 해마다 국가로부터 부과된 세금을 꼬박꼬박 납부하는 성실 납세목으로 세인들의 귀감이 되는 나무이다
 

현재 황목근 할배나무는 12,232㎡(3,700여평)의 땅을 소유한 토지 부자로, 해마다 국가로부터 부과된 세금을 꼬박꼬박 납부하는 성실 납세목으로 세인들의 귀감이 되는 나무이다.

용궁면 소재지에서 금남리로 진입하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금원 마을 들판에 있어 찾아 보기가 쉽다.

자동차로 황목근 까지 진입할 수 있다.

▲  12,232㎡(3,700여평)의 땅을 소유한 황목근 할배,나무 신단(神壇)
 부자나무답게 넓게 자리잡은 터엔 놀이 공원과 우물 그리고 재단도 꾸며져 있다.

금원마을에서는 해마다 정월대보름 자정에 당재를 올리고 다음날에는 온 마을 주민들이 나무 아래에서 마을 잔치를 벌린다고 한다.

그리고 7월 백중날에도 마을 전 주민이 모여 잔치를 벌이며, 농사로 지친 심신의 피로를 풀고 나무를 보살핀다고 한다.

500살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정정한  황근목 할배나무는 올해도 가지마다 빨간 팽열매를 조롱조롱 매달고 있다. 세월에는 장사가 없는 듯 황근목 밑둥치 성형수술자국이 세월의 무게를 말해주고 있다.

또 한곳 .낙동강 1,300리 물길의 마지막 주막인 삼강주막이 이곳에서 차로 20여분 거리의 지척이라 이곳까지 와서 그냥 발길을 돌린다면 후회 되지 않겠는가?

▲  경상북도 민속자료 134호인 낙동강 물길 1,300리 마지막 삼강주막(三江酒幕)

낙동강 물길 1,300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경북 예천군 풍양면에서 삼강(三江)을 만난다. 삼강(三江)이란 내성천과 금천, 낙동강 등 3개의 강이 만나는 곳이라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삼강(三江)에는 경상북도 민속자료 134호인 삼강주막(三江酒幕)이 있다.

1,300리 낙동강 줄기에 현존하는 마지막 주막(酒幕)으로, 마지막 주모인 유옥연할머니가 2005년 10월 90의 나이로 돌아가시고 지금은 주인 잃은 주막과 회화나무가 쓸쓸히 낙동강변을 지키고 서 있다.

회화나무 아래에 자리한 2개의 평상은 영화 “엄마”에 나왔던 소품이다.

▲  1,300리 낙동강 줄기에 현존하는 마지막 주막(酒幕)으로, 마지막 주모인 유옥연할머니가 2005년 10월 90의 나이로 돌아가시고 지금은 주인 잃은 주막과 회화나무가 쓸쓸히 낙동강변을 지키고 서 있다.

 
세월의 무게에 곧 넘어질듯한 흙집인 주막에는 할머니가 벽에다 남겨놓은 외상값 표시가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이 주막은 조만간 복원해서 관광지화 한다고 한다.

그 옛날, 삼강 나루터는 김해에서 올라오는 소금배가 안동까지 가는 길에 뱃사람들이 쉬어가는 곳이었고, 문경새재를 넘어 서울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으로 뱃사람들로 시끌벅적 하였던 곳이다.

현대화의 물결에 소금배가 노젖던 낙동강엔 번듯한 삼강교가 놓여져 지금은 찾는이 없지만, 낙동강 1,300리 마지막 삼강주막은 마지막 주모를 잃고 200살 된 보호수인 회화나무와 함께 쓸쓸이 낙동강변을 지키고 있다.

1960년대까지만 하여도 이곳 풍양면을 휘감아 도는 낙동강 나들목에는 언시뱃가, 강대비리, 말응나루 하풍나루, 삼강나루, 구담나루 등 크고 작은 여섯곳의 나루터에는 사공이 상주하고 간이 주막도 있었다.

그 중 삼강 나루터가 주요한 길목이어서 주변에는 주막이 네개나 있었단다. 당시는 나루를 건너다니던 이곳 면민들이 집집마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약간의 벼를 걷어서 뱃사공에게 뱃삯을 주었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나루에는 하나둘씩 다리가 놓여지면서 소금배가 올라오지 않고, 사람을 건네다 주던 나룻배마저 없어져 사공도 사라 졌다.

 삼강주막에서 삼강교 반대편 도로로 올라가 언덕위에 서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웰빙 그 자체이다. 마을 앞으로 강이 유유히 흐르는 가운데 들판이 황금빛으로 물든 모습은 풍요로운 고향의 가을을 만끽하게 한다.

 이시대에는 나루터가 오늘날의 여객선 터미널 구실을 하였기에 나루터와 관련된 노래나 영화가 그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 1965년도에 나룻터를 배경으로 뱃사공의 딸과 휴양차 서울에서 내려온 대학생과의 비극을 그린 '나루텃 처녀'란 영화나 '노들강변 봄버들 휘휘 늘어진 강변에다 무정한 세월 한허리를 칭칭 동여 매어 볼까 에헤요 봄버들도 못믿으리로다 '로 시작되는 '노들강변'이란 민요가 전한다.

2007.10.6  글.사진 영남일보사외편집위원 정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