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8년12월 상맥회에서 공갈못 옛터에 세운 공갈못 기념 노래비가 3번국도변에 자리하고 있다.



포토르포. 상주함창 공갈못에 연밥 따는 저 처자야

   조선시대 3대 저수지로 교과서에도 등재되어 있을 정도로 세상에 널리 퍼진 상주 함창 공갈못이 세월의 흐름 속에 못터는 논자리로 바뀌어 2천여 평의 연지와  공갈못 기념비만 남아 찾는 이로 하여금 실망을 안겨주었으나, 근년에 복원이 이루어 지면서 4만여 평으로 옛터를 되찾아 지금은 백련,홍련,수련이 한가득 피워 명실상부(名實相符)한 상주함창 공갈못으로 거듭 태어나 구경꾼과 사진 마니아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잇다.

상주함창 공갈못에
연밥 따는 저 처자야
연밥줄밥 내 따주께
이내 품에 잠자주소
잠자기는 어렵잖소
연밥따기 늦어가오

상주 함창 공갈못에
연밥 따는 저 큰아가
연밥 줄밥 내 따줌세
백년 언약 맺어 다오
백년 언약 어렵잖소
연밥따기 늦어간다.


상주 함창 공갈못 "연밥따는 노래"는 1988년12월 상맥회에서 공갈못 옛터에 세운 공갈못 기념 노래비에 새겨져 있다.
 여름날 곱게 피던 연꽃이 지고 연밥이 익어가는 공갈못에서 연밥을 놓고 작업을 거는 사내와 이를 받아넘기는 처자의 여유가 재미있는 상주지방을 대표하는 민요이다.

 경북 상주시 공검면의 공검지(시도기념물  제121호)는 김제 벽골제(사적 제111호), 제천 의림지(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11호) 와 더불어 조선시대 3대 저수지로 교과서에도 등재되어 있을 정도로 명성이 높다.  
그 명성에 비해 실상은 부족하여 명성만 듣고 찾아간 이들에게 실망을 시키기고 있다. 너무 협소하고 초라한 모습에 실망한 나머지 시쳇말로 ‘공갈을 치는 못’으로 빈정되는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점차 복원되어 옛모습을 되찾아 가면서 홍련,백련,수련이 한가득 피어 구경꾼과 사진마니아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지역에서는 공검지(恭儉池)보다는 공갈못으로 불리고 있다.

못을 만들 때 둑을 쌓으면  터지기를 반복하여 고심끝에  "공갈" 이라는 아이를 못둑에 묻고 쌓은 후로는 터지지않아 "공갈못" 이라는 이름이 되었다고  홍귀달(1438~1504)의 명삼정기(名三亭記)에 전해지고, 공검지는 예로부터 연꽃이 풍성하여 꽃이 만발하면 중국의 전당호와 견줄만 하다고 하였다.

공갈못의 인근의 상주,문경,예천 지방에는 "공갈못을 못 보고 죽으면 저승에서도 쫓겨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당시의 함창 공갈못의 명성을 짐작할 수있다.

고려 명종때만 하여도 못의 둘레가 이십리길인 16,647 자(8.56㎞)로  못을 한바퀴 도는데만 3, 4시간이 소요될 정도로 대규묘 저수지였다고 신증동국여지승람 상주목편에 전해진다.

조선 고종 때 못의 일부를 논으로 만들면서 줄어들었고, 1959년에는 공갈못 상류에 오태저수지가 생기면서 저수지로서 명을 다한 공갈못은  대부분 논으로 바뀌고, 옛 못터를 기념하기 위하여 못 둑쪽에 2,000여평을 남겨두고 옛터 기념비를 세워 명맥을 유지하여 왔다.

역사,민요,전설 등 콘텐츠가 풍부한 공갈못(시도기념물  제121호)은 김제 벽골제(사적 111호) 제천 의림지(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11호) 에 견주어 보아도 어느하나 꿀릴것이 없는데 ......
이와달이 동급인 김제 벽골제와 제천의 의림지는 잘 가꾸어진 관광지로 사계절 북적이는 모습과는 너무나 대비되고 있다.

벽골제와 의림지는 복원을 서둘러 유물전시관, 파크랜드 조성 등으로 관광 명소로 각광받고 있는데 반해, 공갈못의 복원은  좀 늦은감은 있으나 주변의 논이 원래의 못자리로 복원되면서 제법 공갈못의 영역이 넓어져 옛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
복원된 공갈못은  아홉칸으로 나누어 홍련과 백련 관상용 연꽃으로 구분지어 심고 중앙에는 수련을 심어 연꽃의 아이콘을 되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멀지많아 상주함창 공갈못에 연밥 따는 저 처자를 배경으로 사진 찍을 날도 멀지 않을것 같다.

2008년 8월 2일 상주시 공검면에서는 유서 깊은 공갈못의 성공적인 복원 기원과 지역문화 축제의 조기정착을 위하여 제1회 공갈못 연꽃문화제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공갈못 넘어 마을인 이안리에는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한글 번역 한문소설인 ‘설공찬전’ 작가인  인천군(仁川君) 채수(蔡壽, 1449~1515)의 무덤과 신도비(경상북도 문화재 제306호 )가 있어 한번 둘러볼만한 곳이다.
성균관 대사성과 호조참판을 지낸 채수가 이안리에 정착하게 된 것은 공갈못과 인연이 깊다.
함창현감이던 아버지를 따라와 살때 공갈못을 구경하러 이안리를 지나다가 담 너머에 살구를 따먹은 인연으로 살구나무 집 딸과 혼인하게 됐다. 중종반정에 휘말려 공신이 되지만, 반정이 올바르지 않다고 여겨 처가 동네인 이안리에 은거하면서 쾌재정(快哉亭)에서 한문소설 ‘설공찬전’을 지었고 집필 당대에 한글 번역본까지 나돌아 조정에서 금서로 지목해 불사르기도 했다.
지난 1996년에 한글 번역본이 발견돼 화제가 됐다.

인근 호암사(주지 현종)의 백련(白蓮) 재배지도 둘러볼만 한 곳이다. 1천 200여 평의 백련을 재배하는 호암사는 백련차와 가루차 그리고 연줄기 혼합차를 판매하여 부모가 없는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곳이기도하다.

호암사의 백련(白蓮) 재배 사례를 보고 인근마을인 상주 이안면 새남골에서는 연꽃작목반을 결성하고 호암사 연꽃을 재배지 주변의 논 9만9천㎡에 연꽃을 심어 백련(白蓮) 재배단지를 조성하여 앞으로 상주 함창 공갈못을 중심으로 대한민국 연꽃 아이콘이 될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송의 주돈이(周敦頤)는 애련설(愛蓮設)에서 “연꽃은 진흙에서 나왔으나 그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향은 멀리 떨어질수록 더욱 맑으며,진실로 꽃 중의 군자다"라고 연꽃을 칭송 하였다.

연꽃만큼 우리 민족의 의식주와 정신세계에 크게 영향을 끼친 꽃도 없다. 연꽃으로 건축물을 단청하고  비단 옷고름에 연꽃으로 단장하였다.그리고 연꽃으로 차를 끓이거나 연잎, 연밥, 연근은 요리의 재료가 되었다.
새잎은 나물로 무쳐먹고, 연근은 간장에 졸여 밑반찬이 되기도하고, 된장이나 고추장에 박아두면 연근장아찌가 된다.그리고 연꽃은 차나 술을 빚어 마신다.  연의 씨(蓮子)는 예로부터 신선식이라 하여 귀하게 여겼다.
웰빙바람에 백연재배단지가 늘어나면서 연을 재료로 만들어진 각종차와 연꽃 국수,연꽃 냉면이 선보이고 있다.
옛날에는 연꽃 속에서 태어난 심청의 효성어린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고, 죽어서도 연꽃이 만발한 꽃상여를 타고 저승길로 떠난다.
사찰에서는 무수히 많은 연꽃으로 장식하고 그 중앙에 연화좌대를 마련하여 부처님을 모신다.

동영상으로 보기   . 상주함창 공갈못에 연밥 따는 저 처자야

2008.8.5 포토르포라이터 정해유

 

△  경북 상주시 공검면의 공검지(시도기념물  제121호)의 현재 모습 2008.8.5
세상에 널리 퍼져 평판 높은 상주함창 공갈못 사적지를 찾은 사람들이 도로가에 달랑 하나 세워진 공갈못 기념노래비와 반달 만한 옛터를 보고 실망한 나머지 그 이름을 빗대어 ‘공갈을 치는 못’으로 빈정되는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었나, 점차 복원되면서  백련,홍련,수련이 한가득 피어 옛모습을 되찾아가면서 관광객과 사진마니아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   백련,홍련,수련이 한가득 피어 옛모습을 되찾아가면서 관광객과 사진마니아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상주함창 공갈못 풍경. 2008.8.5

△  경북 상주시 공검면의 공갈못(시도기념물  제121호)의  백련. 2008.8.5
송의 주돈이(周敦頤)는 애련설(愛蓮設)에서 “연꽃은 진흙에서 나왔으나 그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향은 멀리 떨어질수록 더욱 맑으며,진실로 꽃 중의 군자다"라고 연꽃을 칭송 하였다.  

△  경북 상주시 공검면의 공갈못(시도기념물  제121호)의  홍련. 2008.8.5

△  경북 상주시 공검면의 공갈못(시도기념물  제121호)의  연꽃. 2008.8.5
연꽃만큼 우리 민족의 의식주와 정신세계에 크게 영향을 끼친 꽃도 없다. 연꽃으로 건축물을 단청하고  비단 옷고름에 연꽃으로 단장하였다.그리고 연꽃으로 차를 끓이거나 연잎, 연밥, 연근은 요리의 재료가 되었다.새잎은 나물로 무쳐먹고, 연근은 간장에 졸여 밑반찬이 되기도하고, 된장이나 고추장에 박아두면 연근장아찌가 된다.그리고 연꽃은 차나 술을 빚어 마신다.  연의 씨(蓮子)는 예로부터 신선식이라 하여 귀하게 여겼다.  

△  경북 상주시 공검면의 공갈못(시도기념물  제121호)의  연꽃. 2008.8.5
웰빙바람에 백연재배단지가 늘어나면서 연을 재료로 만들어진 각종차와 연꽃 국수,연꽃 냉면이 선보이고 있다.옛날에는 연꽃 속에서 태어난 심청의 효성어린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고, 죽어서도 연꽃이 만발한 꽃상여를 타고 저승길로 떠난다. 사찰에서는 무수히 많은 연꽃으로 장식하고 그 중앙에 연화좌대를 마련하여 부처님을 모신다.  

△  경북 상주시 공검면의 공갈못(시도기념물  제121호)의  수련. 2008.8.5
연잎이 둥근 모양인데 비해 수련 잎은 둥글지만 한쪽이 고깔 모양으로 중앙까지 갈라졌다. 온대지방에서 자라는 수련은 꽃이 물위로 벗어나지 못하고 수면에 뜬다. 그러나 열대성 수련은 꽃자루가 길게 물위로 솟아오르고 꽃은 연꽃처럼 물위에서 핀다.  

△  경북 상주시 공검면의 공갈못(시도기념물  제121호)의  수련. 2008.8.5

한문소설 ‘설공찬전’의 산실 이안리 쾌재정(快哉亭)
공갈못 넘어 마을인 이안리에는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한글 번역 한문소설인 ‘설공찬전’ 작가인  인천군(仁川君) 채수(蔡壽, 1449~1515)의 무덤과 신도비(경상북도 문화재 제306호 )가 있어 한번 둘러볼만한 곳이다.성균관 대사성과 호조참판을 지낸 채수가 이안리에 정착하게 된 것은 공갈못과 인연이 깊다.
함창현감이던 아버지를 따라와 살때 공갈못을 구경하러 이안리를 지나다가 담 너머에 살구를 따먹은 인연으로 살구나무 집 딸과 혼인하게 됐다. 중종반정에 휘말려 공신이 되지만, 반정이 올바르지 않다고 여겨 처가 동네인 이안리에 은거하면서 쾌재정(快哉亭)에서 한문소설 ‘설공찬전’을 지었고 집필 당대에 한글 번역본까지 나돌아 조정에서 금서로 지목해 불사르기도 했다.지난 1996년에 한글 번역본이 발견돼 화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