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르포/ 삼강주막 복원
낙동강 천삼백리 마지막 주막 겨울 정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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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삼백리 낙동강 물길의 유일무이(唯一無二)한 마지막 삼강주막이 지난 1월 17일 구각(舊殼)를 벗고 옛모습대로 토담 초가 주막으로 복원되었다.

 

 


디카르포
낙동강 천삼백리 마지막 주막 복원

   천삼백리 낙동강 물길의 유일무이(唯一無二)한 마지막 삼강주막이 지난 1월 17일 구각(舊殼)를 벗고 옛모습대로 토담 초가 주막으로 복원되었다.

옛집의 구조를 그대로 살려 슬레트 지붕을 걷어내고, 토담을 다시쌓았다.
특히, 꽃다운 열아홉살부터 90세까지 70년간 이주막을 지켜왔던 마지막 주모 유옥연 할머니의 흔적들을 그대로 두어 할머니는 가셨지만, 부엌과 다락에서 할머니의 체취를 느낄 수 있다. 

삼강리 주민 정수흠(70)는 “유옥연 할매는 주막에서 술을 팔았지만, 처신이 바르고 인심이 후했지, 그리고 할매는 글도, 숫자도 알지 못하여 외상 술은 부엌 흙벽에 할매만이 아는 암호로 금을 그었지”라고 전한다.

지금도 부엌의 연기로 거을린 흙벽에는 할머니의 외상술 장부가 그대로 남아 있다.
짧게,길게, 지운 금들이 지금도 선명하다.

한잔 술 외상은 짧은 금을 긋고, 한 주전자를 외상하면 긴금을 세로로 긎고 외상값을 죄다 갚으면 옆으로 길게 금을 그어 외상을 지웠다고 한다.
 

"다리가 뚫리던 2004년 4월, 평생 눈물을 보이지 않던 할매가 봉당마루에 앉아 쓸쓸히 눈물 훔치는 모습을 봤다"고 마을 주민은 전한다.

다리가 놓여지면서 주막을 감돌며 시원하게 흘러가는 낙동강 허리를, 다리가 동강 막아버리고, 도로가 높아지면서 마을과 담이 쌓여 인적도 끊겨, 주막을 찾는 사람도 하나 둘씩 사라지고 말았으니 70년을 지킨 주모의 마음이 어떠했으랴 !

할매는 다리가 놓여지고 다음해인 2005년 가을에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복원전 삼강주막은 90여년의 세월의 무게에 지붕은 슬레트로 이어지고 흙벽은 낡아 장정 서너명이 힘껏 밀면 곧 넘어갈듯한 주막이 2005년 주인을 떠나보낸 후에는 흉물로 지내다가 지난 12월 복원되어 마지막 주모 유옥연 할머니의 대를 이은 새 주모 권태순(70)할머니가 두부,메밀묵,국수,막걸리,배추전 등 삼강주막 토속음식으로 나그네를 맞고 있다.
 

1960년대 초까지만 하여도 큰고갯길이나, 강가의 길목에는 여관의 원조격인 주막(酒幕)이 있어 과객들을 상대로 술이나 밥 따위를 팔고 나그네를 치는 주막(酒幕)이 요소요소에 있었다.

 근대화 과정에서 신작로가 뚫이고, 콘크리트 다리가 들어서면서 주막도 우리들 주변에서 하나 둘 자취를 감추었다.

 이시대의 마지막 주막집으로 명맥을 이어오던 예천 풍양 삼강주막의 마지막 주모(酒母)였던 유옥연 할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자 주인 잃은 주막도 돌보는이 없이 2년을 폐가로 명맥을 이어오다가 이번에 새로 다듬어지고 새로운 주모가 들어서면서 삼강주막(三江酒幕 경상북도 민속자료 134호 )은  활기를 되찾고 있다.

영남인의 젖줄인 낙동강은 강원도 태백시 함백산에서 발원하여 영남지방의 중앙저지(中央低地)를 흘러 부산광역시 서쪽에서 바다로 흘러드는 본류의 길이가 천삼백리(525.15㎞)로 남한 제일 긴 강이다.

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三江)은 마을 이름처럼 낙동강 본류와 지류인 내성천과, 금천이 합쳐진다. 세강이 합쳐진다고 지명이 삼강(三江)으로 불린다.
 

그 옛날, 삼강나루는 대구와 서울을 잇는 단거리 내륙 뱃길로, 낙동강을 오르내리는 소금배와 서울로 가는 농산물은 이곳으로 모여들어 뱃사공,보부상, 선비가 흥청되는 요충지였다. 이때는 황소 몇 마리가 들어가는 큰 목선이 오갔다.

문경새재를 넘어 서울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으로 뱃사람들로 시끌벅적 하였던 삼강나루는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면서 소금배가 노젖던 삼강엔 번듯한 삼강교가 놓여져 나루와 주막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200살 회화나무 아래 옛모습을 되찾은 삼강주막은 현대판 주막으로 관광객을 맞고 있다.

마을주민 정수흠(70)씨는 삼강주막을 지키는  보호수인 회화나무가 영험한 나무라고 전한다. 옛날에 상주의 김씨성을 가진 목수가 이 나무를 베어 배를 만들면 사고도 나지 않고 큰 돈을 번다하여 연장을 가지고 이 나무를 베려하므로 마을 사람들은 마을을 지키는 영험스러운 나무라 하여 베지 못하게 말렸지만 듣지 않았다고 한다.
목수 김씨가 어느날 나무그늘이 좋아 낮잠이 들었는데 꿈에 백발을 날리는 노인이 무서운 모습으로 나타나서 "만약 이 나무를 해치면 네가 먼저 죽으리라"하므로 꿈에서 깨어나니 하도 생생하여 식은 땀을 흘리며 겁에 질려 벌벌 떨면서혼비백산 달아났다고 한다.

그리고
삼강주막은 옛 시대상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역사·문화적 가치가 커 전국적으로 관광 객들이 찾아들고 있다.

특히 인근 내성천의 회룡포 물돌이 마을이 스타 촬영지로 뜨면서 삼강주막을 찾는 사진마니아들이 줄을 잇고 있다.

 

1960 년대까지만 하여도 이곳 풍양면을 휘감아 도는 낙동강 나들목에는 언시뱃가, 강대비리, 말응나루 하풍나루, 삼강나루, 구담나루 등 크고 작은 여섯곳의 나루터에는 사공이 상주하고 간이 주막도 있었다.

 그 중 삼강 나루터가 주요한 길목이어서 주변에는 주막이 네개나 있었단다. 당시는 나루를 건너다니던 이곳 주민들이 집집마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약간의 벼를 걷어서 뱃사공에게 뱃삯을 주었다.

1970 년대 새마을운동으로 나루에는 하나둘씩 다리가 놓여지면서 소금배가 올라오지 않고, 사람을 건네다 주던 나룻배마저 없어져 사공도 사라 졌다.

 

 

 

▲  복원전 삼강주막은 90여년의 세월의 무게에 지붕은 슬레트로 이어지고 흙벽은 낡아 장정 서너명이 힘껏 밀면 곧 넘어갈듯한 복원 전 주막

▲  복원되기 전 삼강 주막과 마지막 주모 유옥연 할머니의 생전 모습

 ▲  삼강주막 부엌 흙벽에 그은 유옥연할머니의 술값 외상 장부

 ▲  삼강을 가로 지른 삼강교" . 이 다리가 뚫리던 2004년 4월, 평생 눈물을 보이지 않던 할매가 봉당마루에 앉아 쓸쓸히 눈물 훔쳤다고 한다. 다리가 놓여지면서 주막을 감돌며 시원하게 흘러가는 낙동강 허리를, 다리가 동강 막아버리고, 도로가 높아지면서 마을과 담이 쌓여 인적도 끊겨, 주막을 찾는 사람도 하나 둘씩 사라지고 말았으니 70년을 지킨 주모의 마음이 어떠했으랴 ! 할매는 다리가 놓여지고 다음해인 2005년 가을에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  낙동강 천삼백리 물길이 시작되는 강원도 태백시 황지

 

 ▲  삼강나루 낙동강
  
영남인의 젖줄인 낙동강은 강원도 태백시 함백산에서 발원하여 영남지방의 중앙저지(中央低地)를 흘러 부산광역시 서쪽에서 바다로 흘러드는 본류의 길이가 천삼백리   (525.15㎞)로 남한 제일 긴 강이다.


   ▲  상강마을과 주막을 이어주는 도로 통로벽

 ▲  상강마을과 주막을 이어주는 도로 통로벽에 그려진 삼강주막 벽화
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三江)은 마을 이름처럼 낙동강 본류와 지류인 내성천과, 금천이 합쳐진다. 세강이 합쳐진다고 지명이 삼강(三江)으로 불린다. 그 옛날, 삼강나루는 대구와 서울을 잇는 단거리 내륙 뱃길로, 낙동강을 오르내리는 소금배와 서울로 가는 농산물은 이곳으로 모여들어 뱃사공,보부상, 선비가 흥청되는 요충지였다. 이때는 황소 몇 마리가 들어가는 큰 목선이 오갔다.

 ▲  복원된 삼강주막
그 옛날, 삼강나루는 대구와 서울을 잇는 단거리 내륙 뱃길로, 낙동강을 오르내리는 소금배와 서울로 가는 농산물은 이곳으로 모여들어 뱃사공,보부상, 선비가 흥청되는 요충지였다. 이때는 황소 몇 마리가 들어가는 큰 목선이 오갔다.
문경새재를 넘어 서울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으로 뱃사람들로 시끌벅적 하였던 삼강나루는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면서 소금배가 노젖던 삼강엔 번듯한 삼강교가 놓여져 나루와 주막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200살 회화나무 아래 옛모습을 되찾은 삼강주막은 현대판 주막으로 관광객을 맞고 있다.

▲  복원된 삼강주막

 ▲  복원된 삼강주막
주막 뒤로 낙동강을 따라 이어지는 뚝길은 인공물이 없는 자연 그대로로 산책을 하기에 좋은 시골길이다.

 ▲  삼강주막 회화나무 보호수
마을주민 정수흠(70)씨는 삼강주막을 지키는  보호수인 회화나무가 영험한 나무라고 전한다. 옛날에 상주의 김씨성을 가진 목수가 이 나무를 베어 배를 만들면 사고도 나지 않고 큰 돈을 번다하여 연장을 가지고 이 나무를 베려하므로 마을 사람들은 마을을 지키는 영험스러운 나무라 하여 베지 못하게 말렸지만 듣지 않았다고 한다.
목수 김씨가 어느날 나무그늘이 좋아 낮잠이 들었는데 꿈에 백발을 날리는 노인이 무서운 모습으로 나타나서 "만약 이 나무를 해치면 네가 먼저 죽으리라"하므로 꿈에서 깨어나니 하도 생생하여 식은 땀을 흘리며 겁에 질려 벌벌 떨면서혼비백산 달아났다고 한다.

 ▲  천삼백리 낙동강 물길의 유일무이(唯一無二)한 마지막 삼강주막이 지난 1월 17일 구각(舊殼)를 벗고 옛모습대로 토담 초가 주막으로 복원되었다.

 ▲  삼강주막 토속 음식상
2005년 주인을 떠나보낸 후에는 흉물로 지내다가 지난 12월 복원되어 마지막 주모 유옥연 할머니의 대를 이은 새 주모 권태순(70)할머니가 두부,메밀묵,국수,막걸리,배추전 등 삼강주막 토속음식으로 나그네를 맞고 있다.

 ▲  주막집 벽

   ▲  삼강주막 토속 음식상
2005년 주인을 떠나보낸 후에는 흉물로 지내다가 지난 12월 복원되어 마지막 주모 유옥연 할머니의 대를 이은 새 주모 권태순(70)할머니가 두부,메밀묵,국수,막걸리,배추전 등 삼강주막 토속음식으로 나그네를 맞고 있다.

  ▲  삼강주막을 찾은 나그네들이 막걸리와 두부를 안주로 옛 주막의 정취를 느끼고 있다.

▲  삼강주막을 찾은 나그네들이 막걸리와 두부,메밀묵을  안주로 옛 주막의 정취를 느끼고 있다.

 ▲  삼강리 전통마을

 

★ 주변 관광지

삼강주막을 중심으로 20,30여분 지척에는 우리나라 제일의 물돌이 마을 회룡포, 세금을 납부하는 황목근 팽나무석송령 그리고 명승19호 선몽대가 있어 겨울철 테마 여행지로 손색이 없는 곳들이다.

     

 

▲  국가지정 명승19호 겨울 선몽대의 정취

▲  세금을 납부하는 소나무 석송령

▲  우리나라 제일의 물돌이(350도) 마을 회룡포

▲  세금을 납부하는 소나무 황목근 팽나무

 2008.1.28 영남일보사외편집위원 정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