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론가 홀로 떠나고 싶을 때  딱인 가을 여행지

전통 정원의 진수 청암정,이몽룡의 생가 계서당 그리고 부석사 은행길은 차로 2, 30분이면  닿을 수 있는 곳으로  가을을 타는 사람들이 하룻쯤 일상의 끈을 놓고 나홀로  훌쩍 떠나 착잡한  추심(秋心)을 달래고 낭만을 맛보기에 딱인 여행지이다.

▲  사적 및 명승  제3호 내성유곡권충재관계유적(乃城酉谷權沖齋關係遺蹟) 일원 청암정(靑巖亭)의 가을  


전통 정원의 진수 청암정,이몽룡의 생가 계서당 그리고 부석사 은행길은 차로 2, 30분이면  닿을 수 있는 곳으로  가을을타는 사람들이 하룻쯤 일상의 끈을 놓고 나홀로  훌쩍 떠나 착잡한  추심(秋心)을 달래고 낭만을 맛보기에 딱인 여행지이다.
이중  부석사 은행길은 붐비지만 .....

전통 정원의 진수 청암정의 추색

먼저 우리나라에서 가을 그림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나라에서 경치가 훌륭하다고 사
적 및 명승(名勝) 제3호로 지정한 닭실마을과 청암정의 가을 그림 속으로 빠져보자.
조선시대 실학자(實學者) 이중환(李重煥)은 택리지(擇里誌)에서 ' 닭실' 마을을  삼남지방의 4대 길지 중 하나로 꼽았다.
풍수가들은 이곳의 땅 모양세가 금닭(金鷄)이 알(卵)을 품고 있는 듯한 금계포란(金鷄抱卵)형의 명당 중의 명당이라고 친다.
행정상으로는
경북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이지만 '닭실'마을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닭실 마을 동쪽의 옥적봉은 수탉을 닮고, 서쪽의 백운령은   알(卵)을 품는 암탉을 형상이라 '닭실'이라 한다.

한 폭의 동양화를 방불케하는 빼어난 닭실의
경치는 나라에서도 인정하여 사적 및 명승(名勝)  제3호로 지정된 곳이니 경치는 말할 것도 없어렸다.

닭실마을의 아이콘은 황금 들녘과  단풍이 어우러져 기가 막히는 풍경으로 다가오는 청암정(靑巖亭)이다.
마을 들머리길에는  '충절세향(
忠節世鄕) 닭실'이라 생긴 큰 이정표가 나그네를 반긴다.  작은 다리를 건너 수탉같은 옥적봉 기슭의 닭실 마을을 옆으로 끼고 창평천(川)을 따라 황금들녘길을 조금 가면 마을의 끝머리에 한 폭의 그림이 그려진다.
배경,주제,전경이 가을 그림으로 너무나 좋다. 사진 마니아라면 절로 카메라를 들이댈 만한 풍경이다. 
배경은 푸른솔 옥적봉에 흰구름 걸려있고, 오색단풍,기암괴석, 노송에 포근히 쌓인 주제인 청암정, 전경은 황금들녁에 덤으로 파란하늘 흰 구름이 보테니  시쳇말로 쥑이는 가을 그림이다.

차가 멎는 곳은 청암정과 붙어있는 충재박물관(沖齋
博物館 ) 뜰이다. 무슨 시골 마을에 박물관 하겠지만 충재 선생의 숨결이 느껴지는 유물들로 알차고  닭실 '한과'의 내력을 알 게 되는 곳이다.
닭실 이바구에서 뺄 수 없는 것이 충재(沖齋) 권벌(權벌)(1478∼1548)선생과  닭실 한과(
漢菓)이다.

충재(沖齋) 선생은 안동(安東) 출신으로 중종(中宗)때 과거에 급제(及第) 관직(官職)에 있던 중, 기묘사화(己卯士禍)에 연루(連累) 파직(罷職)되어 닭실로 낙향하여 14년간 후진(後進)을 양성하며 경학(經學)을 몰두할 때  맏아들 권동보와 청암정을 지었다고 한다.
그후 복직(復職)되었으나 을사사화(乙巳士禍) 연루로 평안도(平安道) 삭주(朔州)로 유배(流配)되어 그곳에서 명종(明宗) 3년(1548) 71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신 분이다.
그의 호를 따서 청암정 옆에 아담하게 세워 그와 관련된 유물을 전시 한곳이 충재(沖齋)박물관이다.
청암정은 사계절 아름답지만 으뜸은 가을 그림이다.

요 아래 사진에서 보다시피 청암정은 기암괴석 돌섬을 가운데로 사방에 연못을 파고 정자를 지었다.  한쪽에 돌다리를 놓아 드나든다.
하늘을 찌를 듯한 노송과 기암, 형형색색 단풍과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 어우러져 한 폭의 풍경화를 그린다. 그리고  수면에 내려앉은  반영(
反影 )은 오색물감을 통째로 부어 큰 붓으로 썩썩 문지른듯하다.
렌즈에 비치는 눈맛이 꿀맛이라  요리조리 찰깍찰깍 눌러 대느라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청암정의 아름다운 가을을 담기엔 18mm정도의 화각이 되어야  호수면의 가을 반영이 담겨진다.

청암정은 창덕궁의 비원, 강릉의 선교장, 완도의 부용정, 경주의 안압지 등과 함께 한국 전통의 정원 모습을 고스란히 갖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한과를  일등으로 잘 만드는 곳이 닭실마을로 한과도 충재선생과 관련이 있다.
충재  선생이 돌아가신후 후손들은 불천위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정성스레 올렸는데 그 중 하나가 한과였다.
※ 불천위 : 나라에 큰 공훈이 있거나 도덕성과 학문이 높으신 분에 대해 신주를 땅에 묻지 않고 사당(祠堂)에 영구히 두면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 허락된 신위(神位
옛날이나 지금이나 수작업으로 만들어지는 ‘닭실종가전통유과’는 국만 한과로 자리매김되고 있는 것이다.
가을을 그냥 보내기는 그렇지 않는가? 가을이 가기전에 청암정의 눈맛을 즐겨봄이 어떠리 !

춘향전의 실존인물 이몽룡의 생가

닭실 마을을 빠져나와 삼계 삼거리에서 물야면 오록리 방면 915번 지방도로로 접어들면 10여분 가면 외쪽으로 정미소 옆에 '춘향전의 실존인물 이몽룡의 생가' 이정표를 끼고 단풍나무와 황금들녘이 어우러진 길을 접어들면 안내판과 주차장이 보인다.
이몽룡 생가는 지금 한창 공사중이라 카메라를 들이댈 만한 형편이 못된다.
우리나라 최고의 로맨티스트인 이몽룡이 봉화사람이라고 알려지면서 봉화군에서는 우리나 최고의 국문소설 춘향전의 탄생 비밀이 숨어있는 계서당을 남원의 광한루처럼 "이몽룡 테마타운"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소설속의 주인공인 이몽룡과 성춘향의 러브스토리 춘향전의 무대 남원 광한루는 국민적 관광지로 너무나 널리 알려져 있지만 남자 주인공인 이몽룡의 생가가 있는 이곳 가평리(봉화군 물야면)에 있는줄은 아는이가 그리 많지않다.

춘향전의 남자 주인공인 이몽룡으로 알려진 계서(溪西) 성이성(成以性 .1595∼1664)은 남원부사(南原 府使)를 지낸 부용당(芙蓉堂) 성안의(成安義)의 자제(子弟)이며 인조(仁祖) 5년(1627) 문과(文科)에 급제한 후 진주부사(晋州 府使) 등 6개 고을의 수령을 지냈고, 세차례나 어사(御使)로 등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생활과 마음이 아울러 검소하여 훗날에 부제학(副提學)을 추서(追敍)받았으며 청백리(淸白吏)로 이름이 높은 실존 인물이다.

실제 <춘향전>의 암행어사 출두 장면에서 암행어사 이몽룡이 읊었던 , "금준미주는 천인혈이요, 옥반 가효는 만성고라. (金樽美酒 千人血 玉盤佳肴 萬姓膏 燭淚落時 民淚落 歌聲高處 怨聲高)"는 詩는 성이성이 쓴 시로 4대 후손 성섭이 지은 <교와문고 3권>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계서당에서 부석사까지는 40여길(16km)로 가깝다.오던길인  915번지방도를 타고 물야 방면으로 가다가 오록에서 931번 지방도를 타면 20여분만에 부석사에 닿는다.

눈이 시린 부석사 단풍길의 낭만

경북 영주시 부석면 봉황산(鳳凰山) 중턱에 자리잡은 부석사는 신라 천년 고찰로 산사가을 풍경으로 으뜸으로 치는 곳이다.
특히 일주문에서 천왕문에 이르는 은행나무 단풍길이 대표적인데 눈이 시릴정도로 노랗다. 그리고 해가 지고 어둑어둑할 때 부석사의 안양루에서 바라보는 황혼(黃昏) 전경도 아름답다.

우리나라 곳곳에는 큰 은행나무길이 많이 있지만, 부석사 은행 나무길은 운치있는 길이다.
눈이 시리도록 노란 단풍이 곱게지는 만추에  추풍에 빙그르르 원을 그리며 떨어지는 낙엽을 맞으며 터벅터벅 흙길을 걷노라면 낭만적이다.
무량수전 오른쪽 뒤안 숲속에 작은 선묘각이 있다. 무량수전 등 문화재 이야기는 너무 많이들어 식상하고.
선묘낭자와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조사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가 얽힌 선묘각의 전설속으로 들어가 보자.

의상조사가 당나라 유학길에 양주(楊州)에서 병을 얻어 민가에 유숙하며 그 집의 선묘(善妙)라는 처녀의 지극한 간병으로 병이 완쾌되었다.
선묘(善妙)낭자는 의상조사에게 연정을 품게 되었다.
의상조사는 선묘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법도로 대하여 제자로 삼게 되었다. 몸이 완쾌된 의상조사는 다시 길을 떠나게 되었다.
선묘가 의상조사에게 "귀국하실 때 이곳을 지나시면 꼭 소녀의 집에 다시 한번 들려 주시고 가십시오"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그후 의상조사는 당나라 종남산 (終南山) 지상사(至相寺)에서 지엄대사(智嚴大師)의 제자가 되어 수학하던 중 당(唐)이 30만 대군으로 신라를 침범하려는 소식을 접하고 급히 문무왕 11년에 급히 귀국길에 오른다.

의상조사는 귀로에 양주땅 선묘와의 약속대로 선묘의 집에 들렸으나 때마침 선묘낭자가 출타중이라 귀국한다는 것을 선묘에게 전해 달라고 부모에게 부탁후 길을 재촉하였다.
그동안 선묘낭자는 의상조사의 귀국 선물로 법의(法衣)를 정성껏 마련하여 손꼽아 기다리던 중, 잠시 집을 비운 사이 조사를 만나지 못한 선묘낭자는 조사를 뒤좇아 산동성(山東省) 해안에 이르니 의상조사가 탄 배는 수평선 저너머 흰 돛만 보일 뿐이었다.

선묘낭자가 선물을 바닷에 던지니 때마침 해풍이 크게 일어 배 안으로 날아갔다. 다시 바다에 몸을 던진 선묘낭자는 용이 되어 조사의 바닷길을 호위하여 의상조사는 무사히 귀국하게 되었다.

그 후 의상조사는 사찰 건립의 왕명을 받아 길지인 영주시 봉황산에 이르렀으나 여기에는 도둑의 무리 500명이 살고 있었다.
의상조사는 수차 이들에게 자리를 양보해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듣지 아니하여 고심을 하고 있을때, 용으로 화신한 선묘가 지금의 무량수전 서편에 있는 큰 바위를 공중으로 올렸다 내렸다 3차례나 하였더니 굴복하였다.
이 자리에 건립한 사찰이 부석사이며, 공중에서 세번이나 떴다는 큰 바위를 부석(浮石)이라 부르고 지금도 무량수전 서편 암벽 밑에 있다.

그후 선묘룡(善妙龍)은 석용(石龍)으로 화하여 무량수전의 자리에 안좌하여 부석사의 수호신이 되었다고 전한다. 무량수전 오른쪽 언덕에는 의상과 선묘의 애달픈 사연을 간직한 선묘각이 세워져 있다.
 2009.10.20 정해유포토밸리

 

 ▲  청암정은 기암괴석 돌섬을 가운데로 사방에 연못을 파고 정자를 지었다.  한쪽에 돌다리를 놓아 드나든다.하늘을 찌를 듯한 노송과 기암, 형형색색 단풍과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 어우러져 한 폭의 풍경화를 그린다. 그리고  수면에 내려앉아 반영은 흡사 오색물감을 통째로 부어 큰 붓으로 썩썩 문지른듯하다.
렌즈에 비치는 눈맛이 꿀맛이라  요리조리 찰깍찰깍 눌러 대느라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  기암괴석,오색 단풍,가을 하늘이 어우러진 청암정의 가을

 ▲  배경은 푸른솔 옥적봉에 흰구름 걸려있고 주제는 오색단풍,기암괴석, 노송에 포근히 쌓인 그림같은 정자와 호수요, 전경은 황금들녁으로 그림의  구도가 짱이다. 덤으로 파란하늘에 흰 구름이 보테지니  시쳇말로 쥑이는 가을 그림으로 카메라를 들이대면 그림이다.

 

▲  청암정과 붙어있는 충재박물관(沖齋博物館 )은 충재 선생의 숨결이 느껴지는 유물들로 알차고  닭실 '한과'의 내력을 알 게 되는 곳이다.

 

 ▲  충재박물관(沖齋博物館 ) 유물

 ▲  충재박물관(沖齋博物館 )

 ▲  충재박물관(沖齋博物館 ) 유물 (충재 선생 제사상 차림표)

  ▲    마을 들머리인 도로변에는  '충절세향(忠節世鄕) 닭실'이라 생긴 큰 자연석이 나그네를 반긴다.

  ▲    닭실 마을의 가을  

▲   춘향전의 실존인물 이몽룡의 생가 이정표(里程標)

▲  춘향전의 남자 주인공인 이몽룡으로 알려진 계서(溪西) 성이성(成以性 .1595∼1664)의 생가 계서당

▲   경북 영주시 부석면 봉황산(鳳凰山) 중턱에 자리잡은 부석사는 신라 천년 고찰로 산사가을 풍경으로 으뜸으로 치는 곳이다. 특히 일주문에서 천왕문에 이르는 은행나무 단풍길이 대표적인데 눈이 시릴정도로 노랗다.

▲  그 후 의상조사는 사찰 건립의 왕명을 받아 길지인 영주시 봉황산에 이르렀으나 여기에는 도둑의 무리 500명이 살고 있었다.
의상조사는 수차 이들에게 자리를 양보해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듣지 아니하여 고심을 하고 있을때, 용으로 화신한 선묘가 지금의 무량수전 서편에 있는 큰 바위를 공중으로 올렸다 내렸다 3차례나 하였더니 굴복하였다.
이 자리에 건립한 사찰이 부석사이며, 공중에서 세번이나 떴다는 큰 바위를 부석(浮石)이라 부르고 지금도 무량수전 서편 암벽 밑에 있다.

▲  무량수전은 우리 나라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봉정사 극락전(국보 제15호)과 더불어 오래된 건물로서 고대 사찰건축의 구조를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건물이 되고 있다.

▲  해가 지고 어둑어둑할 때 부석사의 안양루에서 바라보는 황혼(黃昏) 전경도 아름답다.

▲   부석사 무량수전에 오르는 안양문

 

 

▲  선묘낭자와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조사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가 얽힌 선묘각

▲  선묘낭자와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조사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가 얽힌 전설속의 선묘낭자 영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