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도 삼척시  '해신당 공원'은  우리나라 유일의 남근을 컨셉으로 꾸민  공원으로 재미있는 곳이다.

          
야동보다 더 리얼!  보기가 쑥스럽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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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양각색의 귀귀묘묘(奇奇妙妙)한 글로벌 남근들 다 모여. 해신당 _

 전통 시대는 시집간 여자가 아들을 낳지 못하면 쫓겨 나가야만하는  칠거지악(七去之惡)이었다.
 남근은 아들을 낳지 못하는 여자들이 아들 낳게 해달라고 비는 대상이 되기도 하였고, 마을의 풍요를 기원하는 제를 올리기도 하였다.
생식과 풍요를 상징하는  남근(男根)상은 전국에 걸쳐 분포한다.  이름도 가지각색으로 질펀하여 입에 담기가 거시기하지만...... "남근암, 좆바위, 자지방구, 소좆바위, 뼈죽바위" 등으로 부른다.

이웃나라 일본은 해마다 남근축제가  열려  거대한 남근(男根)상을 들고 행진도하고, 남근 모양의 막대사탕을 빨아먹는 여성들도 있지만, 우리나라는 터부시하여  예술품으로 남근상을 깎아 세워도 눈치를 보아야 한다.  지자체의 박물관 뜰에 전시된 목재 남근 조각품이 여론에 밀려 철거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곳은 남근 해방구로 귀귀묘묘(奇奇妙妙)한 글로벌 난근과 여근을 만날 수 있다.

강원도 삼척시   '해신당 공원'이 바로 그곳.  
남근으로 시작해서 거시기로 끝나는 요상스러운 이색적인 공원으로 자녀를 대동하여 둘러보기는 좀 뭐한 곳이기도하다.
공원의 들머리 작은 육교 천장에는 굴비처럼 엮여진 남근 두릅이 주렁주렁 매달려 고추 풍년이다.
해신당으로 이어지는 일산의 작은 능선길은 해신당, 축 늘어진 해송가지, 당당한 남근상, 푸른파도 ,갈매기와 어우러져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어촌민속전시관으로 오르는 언덕길 꽃밭에 세운 아름드리 거시기가 압권(壓卷)이다.

" 아  그 놈 잘 생겼다...  저 정도는 되어야 쓸만하지 !... "

부부인듯한 중년 남성의 감탄사에 그  부인은 남편을 등을 탁치면서 실눈을 뜨고 몰래 훔쳐본다.

갈수록 가관이다 남근에 새겨진 해신당의 전설, 바다를 향해 허리춤을 내려 거대한 고추를 내어 오줌을 싸는 전설속의 남정네 들......

맨 윗쪽의 남근 12지상을 둘러보고 어촌민속전시관으로 내려오는 오실길의 오른쪽 언덕아래의 초가집에는 무엇이 있는지  초가를 나서는 사람마다 히죽히죽 웃는다.  초가의 입구에는  '19세이하 출입금지' 표지가  예사롭지않는 물건이 있는 듯.

40여 돌계단아래 초가집 갓방은 야동방이다. 발을 살짝 들어 야동을 엿보는 옆방의 까까머리 총각의 표정이 재미있다. 이 야동 모형은 조선시대의 춘화를 재현한 것으로 재미있는 눈요기감이다.

해신당 공원은 색다른 볼거리도 많지만, 주변 풍경이 한 폭의 그림이다.  

태백준령이 S자로 해변으로 이어져  백두대간의 산줄기들이 급격히 바다와 맞닿아 리아스식 해변으로 들고남이 심하고 바다에는 온갖 기암괴석이 그대로 바다위로 옮겨 앉아 아름다운 풍경을 이룬다.

솔향 그윽한 송림 속 해산당 난간 잡고 밀려오는 하얀 파도, 너울너울 춤추는 갈매기 떼를 보노라면 잠시라도 인간사 번뇌의 끈을 놓을만하다.

바다로 길게 뻗은 해산(日山) 정상의 해신당은 서너 평쯤되는데  벽면에는 단정한 용모의 해신 낭자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해신당 해신 낭자에게는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인   "애바위"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해신당 공원에 꾸며진 볼거리는 모두가 전설속의 이야기로 구성 되어있다.

 "애바위" 전설의 이바구는 대략 이러하다.

 옛날 옛날 아주 오랜 옛날(지금으로부터 400여년전 조선왕조 제14대 선조 무렵) 가뭄으로 산천은 헐벗고 백성들은 초근목피마저 없어 굶는 것을 밥먹듯 하던 시절이었다. 궁벽한 어촌 마을인 신남리도 예외가 아니어서 당장 봄 살아나기가 어려운 처지였다.

이때 신남리 마을에 아름다운 한 처녀는 혼례를 올릴 나이였지만 속절없이 노처녀가 되었다.

이웃집의 건장한 총각과 눈만 맞추고 지냈다. 이른 봄날 처녀는 바다 나물을 뜯 으러 해변에서 한참 떨어진 돌섬에 가겠으니 배를 태워 달라고 총각에게 부탁하였다.

총각은 돌섬에 처녀를 데려다 주고 한낮이 되면 다시 오기로 약속하고 뭍으로 나와 밭일에 열중하였다.

신남리 마을 동북쪽 1㎞ 지점 바다 가운데 있는 돌섬은 미역과 김 그리고 소라 등이 많았다.  처녀는 미역 등을 열심히 뜯다 보니, 어느덧 해가 중천에 솟았고, 약속한 총각은 해변가로 나왔으나 배를 띄울 수 없었다.

풍랑이 크게 일어 바다가 뒤집힐 지경이었다. 한낮이 지나고 저녁이 지나고 밤이 와도 풍랑은 그치지 않고 파도가 높이 솟았다.

처녀는 돌섬에서 보이지 않았다. 처녀가 살려 달라고 애쓰다 죽었다 하여 그 바위 이름을〈애바위>로 불러지게 되었다.

처녀가 "애바위"에서 죽은 후부터 신남리 마을에는 고기가 잡히지 않았다.

고기잡이로 생계를 꾸려 가는 마을에 고기가 잡히지 않는 것은 참으로 큰 변괴였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바다에 나간 마을의 어부들도 풍랑을 만나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괴변이 자주 생겼다.

 어부들 사이는 물론 온 마을에는 애쓰다 죽은 처녀 때문이라는 등 뒤숭숭한 소문들이 꼬리를 물었다.

그런 어느 날 저녁 한 어부가 화가 나서 바다를 향해 남근을 내어놓고 오줌을 싸면서 욕을 하였다.

그런데 그 다음날 이상하게도 그물에 많은 고기가 잡혔다. 또 하나 전하는 이야기는 좋아지내던 총각의 꿈에 그 처녀가 산발하고 나타나〈나 해신의 원혼을 달래어 달라〉라는 하소연을 하였다.

총각은 이튿날 당장 향나무로 남근을 깎아 해신당 신수에 엮어 달아 놓고 처녀의 혼을 위로하는 제사를 올렸다. 그 후 부터 총각에게는 고기가 신기하게도 잘 잡혔다. 어부들은 그 연유를 듣고 너도나도 남근을 깎아 신수에 매달아 놓고 제사를 올렸다. 그랬더니 너도나도 모두에게 고기가 잘 잡혔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고기가 안 잡힌 것은 애쓰다 죽은 처녀의 원혼 때문이라고 확신하고 처녀의 위령제를 지내자고 의논하여 공동으로 실물 보다 조금 더 큰 남근을 깎아 해신당 신목에 매달고 치성을 올리게 되었다.

그 이후부터 음력 정월 대보름날의 해신당 제사는 마을의 큰 연중행사가 되었다는 가슴아픈 전설이다.

해신당 공원에는 '애바위 전설'을 컨셉으로 남근이 깎아 세우는 등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남근 테마 공원이라 할 수 있다.

입장료 3천원이 아깝지않을 정도로 다양하게 꾸며져 볼거리가 많다.   생식과 풍요를 상징하는  남근(男根)상은 도처에 수두룩한다. 전통시대는 아들을 낳지 못하는 것을  칠거지악(七去之惡)으로 여기   아내를 내쫓는 이유가 되었다.  여자가 남자 아기를 낳지 못할 때는 용하다는 남근석을 찾아 비는 하나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남근과 여근이 수두룩하다. 이름도 가지각색으로 질펀하여 입에 담기가 거시기하지만...... "남근암,좆바위, 자지방구, 소좆바위, 뼈죽바위" 등으로 부르는데 점잔은 이름으로 남근이다.

지금은 귀하지만, 옛날에는 마을의 입구에 세운 남근상은 보편적으로 정월이면 남근에 새끼를 감아  잡인의 접근을 금하고 제사를 올려 풍년과 마을의 풍요를 기원하기도 했었다.

이웃나라 일본은 해마다 남근축제인 ‘가나마라 다산(多産) 축제’ 열려   거대한 남근(男根)상을 들고 행진도하고, 남근 모양의 막대사탕을 먹는 여성들도 있지만, 우리나라는 터부시하여 예술품으로 남근상을 깎아 세워도 눈치를 보아야 한다. 박물관 뜰에 전시된 목재 남근 조각이 여론에 밀려 철거되기도하는 실정이다.

그런데 이곳에 가면 각양각색의 귀귀묘묘(奇奇妙妙)한 난근과 여근을 만날 수 있다.

강원도 삼척 '해신당 공원'이 바로 그곳이다. 남근으로 시작해서 남근으로 끝나는 공원의 두어곳 초가집에는 조선시대 춘화를 실제 모형으로 만들어 전시된 곳이 있어 웃음을 자아낸다. 남여가 실제 거식하는 모습을 리얼하게 만들어 어른도 들어다보기가 좀 쑥스러워지기도 한다.

어촌민속전시관으로 오르는 언덕길 꽃밭에 세운 하늘높이 치 솟은 굵직한 거시가가 압권이다.

" 아  그 놈 잘 생겼다...  저 정도는 되어야 !... "

부부인듯한 중년 남성의 감탄사에 그  부인은 남편을 등을 탁치면서 실눈을 뜨고 몰래 훔쳐본다.

갈수록 가관이다 남근에 새겨진 해신당의 전설, 바다를 향해 허리춤을 내려 거대한 고추를 내어 오줌을 싸는 전설속의 남정네 들......

남근 12지상을 둘러보고 어촌민속전시관으로 내려오는 오실길의 오른쪽 언덕아래 초가집에 무엇이 있는지  둘러보고 계단길을 오른는 사람마다 히죽히죽 웃는다. 길옆의 '19세이하 출입금지' 표지가  예사롭지않는 물건이 있는 듯.

40여 돌계단아래 초가집 갓방은 야동이다. 발을 살짝 들어 야동을 엿보는 까까머리 총각의 표정이 재미있다. 이 야동 모형은 조선시대의 춘화를 재현한것이다. 하나의 양념으로 재미있는 눈요기감이다.

해신당 공원은 색다른 볼거리도 많지만, 주변 풍경이 한 폭의 그림이다.  

 

태백준령이 S자로 해변으로 이어져  백두대간의 산줄기들이 급격히 바다와 맞닿아 리아스식 해변으로 들고남이 심하고 바다에는 온갖 기암괴석이 그대로 바다위로 옮겨 앉아 아름다운 풍경을 이룬다.

솔향 그윽한 송림 속 해산당 난간 잡고 밀려오는 하얀 파도, 너울너울 춤추는 갈매기 떼를 보노라면 잠시라도 인간사 번뇌의 끈을 놓을 만하다.

버다로 길게 뻗은 해산(日山) 정상의 해신당은 서너평쯤되는데  벽면에는 단정한 용모의 해신 낭자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해신당 해신 낭자에게는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   "애바위"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해신당 공원에 꾸며진 볼거리는 모두가 전설속의 이야기다.

 "애바위" 전설의 이바구는 이러하다.

 옛날 옛날 아주 오랜 옛날(지금으로부터 400여년전 조선왕조 제14대 선조 무렵) 가뭄으로 산천은 헐벗고 백성들은 초근목피마저 없어 굶는 것을 밥먹듯 하던 시절이었다. 궁벽한 어촌 마을인 신남리도 예외가 아니어서 당장 봄 살아나기가 어려운 처지였다.

이때 신남리 마을에 아름다운 한 처녀는 혼례를 올릴 나이였지만 속절없이 노처녀가 되었다.

이웃집의 건장한 총각과 눈만 맞추고 지냈다. 이른 봄날 처녀는 바다 나물을 뜯 으러 해변에서 한참 떨어진 돌섬에 가겠으니 배를 태워 달라고 총각에게 부탁하였다.

총각은 돌섬에 처녀를 데려다 주고 한낮이 되면 다시 오기로 약속하고 뭍으로 나와 밭일에 열중하였다.

신남리 마을 동북쪽 1㎞ 지점 바다 가운데 있는 돌섬은 미역과 김 그리고 소라 등이 많았다.  처녀는 미역 등을 열심히 뜯다 보니, 어느덧 해가 중천에 솟았고, 약속한 총각은 해변가로 나왔으나 배를 띄울 수 없었다.

풍랑이 크게 일어 바다가 뒤집힐 지경이었다. 한낮이 지나고 저녁이 지나고 밤이 와도 풍랑은 그치지 않고 파도가 높이 솟았다.

처녀는 돌섬에서 보이지 않았다. 처녀가 살려 달라고 애쓰다 죽었다 하여 그 바위 이름을〈애바위>로 불러지게 되었다.

처녀가 "애바위"에서 죽은 후부터 신남리 마을에는 고기가 잡히지 않았다.

고기잡이로 생계를 꾸려 가는 마을에 고기가 잡히지 않는 것은 참으로 큰 변괴였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바다에 나간 마을의 어부들도 풍랑을 만나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괴변이 자주 생겼다.

 어부들 사이는 물론 온 마을에는 애쓰다 죽은 처녀 때문이라는 등 뒤숭숭한 소문들이 꼬리를 물었다.

그런 어느 날 저녁 한 어부가 화가 나서 바다를 향해 남근을 내어놓고 오줌을 싸면서 욕을 하였다.

그런데 그 다음날 이상하게도 그물에 많은 고기가 잡혔다. 또 하나 전하는 이야기는 좋아지내던 총각의 꿈에 그 처녀가 산발하고 나타나〈나 해신의 원혼을 달래어 달라〉라는 하소연을 하였다.

총각은 이튿날 당장 향나무로 남근을 깎아 해신당 신수에 엮어 달아 놓고 처녀의 혼을 위로하는 제사를 올렸다. 그 후 부터 총각에게는 고기가 신기하게도 잘 잡혔다. 어부들은 그 연유를 듣고 너도나도 남근을 깎아 신수에 매달아 놓고 제사를 올렸다. 그랬더니 너도나도 모두에게 고기가 잘 잡혔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고기가 안 잡힌 것은 애쓰다 죽은 처녀의 원혼 때문이라고 확신하고 처녀의 위령제를 지내자고 의논하여 공동으로 실물 보다 조금 더 큰 남근을 깎아 해신당 신목에 매달고 치성을 올리게 되었다.

그 이후부터 음력 정월 대보름날의 해신당 제사는 마을의 큰 연중행사가 되었다는 가슴아픈 전설이다. 해신당 공원에는 '애바위 전설'을 컨셉으로 남근이 깎아 세우는 등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남근 테마 공원이라 할 수 있다.
입장료 3천원이 아깝지않을 정도로 다양하게 꾸며져 볼거리가 많다.

▲  바다로 길게 뻗은 해산(日山) 정상의 해신당은 서너 평쯤되는데  벽면에는 단정한 용모의 해신 낭자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해신당  낭자에게는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  "애바위"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데, 해신당 공원에 꾸며진 볼거리는 모두가 전설속의 이야기로 구성 되어있다.

▲  솔향 그윽한 송림 속 해산당 난간 잡고 밀려오는 하얀 파도, 너울너울 춤추는 갈매기 떼를 보노라면 잠시라도 인간사 번뇌의 끈을 놓을만 풍경이다.

▲  발을 살짝 들어 야동을 엿보는 까까머리 총각의 모습이 재미있다.

▲  이 야동 모형은 조선시대의 춘화를 재현한 것인데  모형의 남근과 여근이 너무 리얼하여 모자익으로 가렸다.

▲  어촌민속전시관으로 내려오는 오실길의 오른쪽 언덕아래 초가집에 무엇이 있는지  둘러보고 계단길을 오른는 사람마다 히죽히죽 웃는다.  길옆의 '19세이하 출입금지' 표지가  예사롭지않는 물건이 있는 듯.40여 돌계단아래 초가집 갓방은 야동이다.

▲  어촌민속전시관으로 오르는 언덕길 꽃밭에 세운 하늘높이 치 솟은 굵직한 거시기가 압권이다.

▲  바다를 향해 허리춤을 내려 거대한 고추를 내어 오줌을 싸는 전설속의 남정네 들......

▲  남근 12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