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속의 섬 무섬마을이 그리는 가을

▲  무섬마을의 아이콘 외나무 다리
내성천(乃城川)이 빚은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무섬마을은 동쪽 일부를 제외한 3면을 내성천 물길이 휘감아 흐르는 안쪽 모래톱 위에 터를 잡고 있는 전통 물도리 마을이다.


내성천(乃城川)이 빚은 물도리 무섬 마을
낙동강 천삼백리를 이루는 여러 지류 가운데 내성천(乃城川) 만큼 아기자기한 천(川)도 없다.
소백산맥의 남쪽 기슭 경북 봉화군에서 발원하여 영주 문수면 수도리에서 삼면을 휘돌아 물도리 무섬마을을 시작으로 하류부인 예천땅을 지나면서, 명승 제19호 예천선몽대(醴泉仙夢臺一圓)와  명승 제16호 예천회룡포(醴泉回龍浦)를 빚고 남서쪽으로 흐르다가 용궁(龍宮) 남쪽 풍양 삼강리에서 낙동강 본류로 합수되는데, 삼강나루에는 낙동강 마지막 주막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내성천(乃城川)이 빚은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무섬마을은 동쪽 일부(약 100여 m)를 제외한 3면을 내성천 물길이 휘감아 흐르는 안쪽 모래톱 위에 터를 잡고 있다. 평은 쪽에서 문수방향으로 내성천 줄기를 따라 가보면 내성천이 거의 원형으로 휘감아도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평은쪽에서 오다 보면 무섬교 다릿목에 크게 위정표가 보인다. 이곳에서는 7,8백 m걸어야 되지만 조제리쪽으로 차를 몰아 수도교로 접근하면 바로 마을 입구이다.

무섬마을은 조상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천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우리나라 일등 물도리 마을이라해도 손색이 없다.
무섬은 흡사 연꽃이 물 위에 떠 있는연화부수(蓮花浮水)형 지형으로 옛날에는 120가구에 400명이 훨씬 넘게 살았던 전통마을이다. 지금은 40여 가구 5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지만......
38동의 전통 가옥 중 김규진 가옥, 김위진 가옥, 해우당 고택, 만죽재 고택 등 9점이 도문화재자료와 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지금의 수도교(1979)가 세워지기 전의 육지의 섬마을 수도리 사람들은 외나무다리(9월~이듬해 4월)가 뭍을 이어 주는 유일한 통로였었다.

무섬마을의 아이콘은 외나무다리이다. 드넓은 백사장에 폭 30㎝, 길이 150m의 외나무 다리가 올해도 놓였다.
모랫바닥에 통나무를 박고 그 위에 발 하나가 겨우 걸칠 만한 널빤지 조각으로 이어져 처음 대하는 사람은 선뜻 다리 위로 못 오른다.
이 다리를 건너 내성천뚝에 올라야 무섬마을을 제대로 볼 수 있기에 카메라를 등에 지고 양손을 수평으로 벌여 균형을 잡아도 흐르는 물결 탓인지
어지럽고 균형이 깨질 듯하여 잠시 제자리에서서 먼 산을 바라보다가 겨우겨우 다리를 건넜지만 되돌아갈일이 걱정이다.
뚝에 올라 사진을 몇 컷 찍고 있는사이 겨운기 한 대가 내성천으로 접어든다. 경운기 덕을 볼까 했으나 사진을 다 찍고나니 경운기는 이미 물살을 가르고 있었다.
사진 마니아 한분이 아슬아슬 다리를 건너오고 있다. 교행이 불가능하니 천사 기다릴수밖에.
물에 빠질까봐 아예 카메라 가방을 건너 백사장에 두고 와 사진을 못 찍게 되었다고 후회를 한다.
수도리 사람들의 전답이 대부분 내성천 건너에 있어 농사철엔 물길을 걷거나 경운기를 타고 내왕한다.
찬 바람이 부는 가을로 접어들면 무섬마을 사람들은 내성천을 가로 지르는 외나무 다리를 놓는다.
겨울철은 외나무 다리가 외지로 가는 유일한 통로로 그 옛날엔 책보를 메고 학교 가는 아이, 장가가는 새신랑, 꽃가마를 타고 시집오는 새색시, 황천길 상여도 어김없이 이 외나무다리를 건너야 했다고 한다. 불과 30여년 전 풍경이라고 겨운기를 물던 농부가 전한다. 

´물속의 섬´과 같은 물도리 마을을 들어선 나그네는 흡사 조선시대로 시간 여행을 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인적이 드물다. 단지 외지 차량이 마을 한 바퀴 돌고 갈뿐 너무나 한적하다. 물돌이 마을로 유명한 하회는 사철 덜끊는 인파로 때가 너무 묻어 도회지를 방불케하지만, 수도리(水島里)는 전통이 그대로 녹아, 옛 그대로를 간직한 한적한 전통마을로 남아 있다. 최근에 마을 길을 황토포장이 되었다.

 ▲  무섬마을의 가을 풍경 1

 ▲  무섬마을의 가을 풍경2

 ▲  무섬마을의 가을 풍경 3

 ▲  무섬마을의 가을 풍경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