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경주 연꽃
전설의 고향 서출지 그리고 안압지 연꽃

▲  서출지 전경 2009.7.10


 
"開       ▲   서출지 절설의 비각  "見二人死 不見 一人死"


 
      
"開見二人死 不見 一人死" '열어보면 두사람이 죽고, 열어보지 않으면 한사람이 죽는다' "

"開見二人死 不見 一人死", "射琴匣" 이란 글이 나와 임금을 구한 연못, 서출지는 이름부터가 예사롭지않다.

전설의 고향 서출지(書出池)는 사적 138호로 지정된 경주 남산 기슭에 위치한 신라시대 연못이다.

서출지(書出池)의 연화(蓮花)는 못가의 이요당(二樂堂)과 경주 남산이 조화를 이루어 연화(蓮花)가 이쁘게 찍히는 곳으로 알려진 곳이다.

서출지의 연화(蓮花)가 피는 시기가 여름 휴가철이라 대구분들은 아침 일찍 길을 나서 서출지의 아름다운 연꽃을 렌즈로 담고, 고개넘어

감포 여름바다를 즐기는 하룻길 여행지 중간 코스로 둘러 보기에 좋은 곳이다.

그림에서와 같이 2009년 7월 10일 현재 서출지의 연화는 그 수를 헤아릴 정도의 몇송이만 피어 연꽃만 주 피사체로 담기엔 좀 부족함이 없지 않다.

그 부족함은 경주국립박물관을 조금 지나 반월성 맞은편 큰길옆의 연화가 지금 한창이어서 보충할 수 있다.

빨강, 흰색, 노랑에 피는 놈에, 지는 놈 그리고 개체수도 많아 연을 즐기고 렌즈에 담기에 참 좋다.

진흙 속에서도 향과 자태를 잃지 않고, 속세의 더러움 속에서도 물들지 않고 깨끗한 꽃을 피워 청정함의 상징인 연꽃은 해 뜰 무렵 넓은

꽃잎을 열었다가 해 질 무렵 다시 봉오리를 여민다.

아름다운 연꽃을 담기위해서는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야 한다.

하루중 가장 아름다운 자태를 보이는 시간은 해뜨기 직전부터 해가 뜬 직후 시간대이다.  해뜨기 전, 아침 이슬을 머금은 연꽃 송이는 넓은 연잎 위로 물기를 털고, 그것을 받아 낸 연잎은 또르르르 물방울을 만들어 연못으로 굴러 내린다.

이슬 맺힌 연꽃송이와 물방울이 구르는 파란 연잎을 큼직하게 그릴 수 있는 때가 해뜰 무렵이다.

해가 뜨면 연꽃은 우아한 자태로 꽃잎을 열어 아침이슬로 세수하고, 미처 연못으로 구르지 못한 물방울들은 연잎에 싸인채 아침 고요를 맞는다.

꽃봉오리와 연잎의 영롱한 이침이슬 물방울과 꽃잎이 적당이 열어지는 우아한 자태를 담아야 연사진의 맞이 난다.

 사진 마니아들이 아침 잠을 줄여 새벽녘에 집을 나서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서출지 연못가의 배롱나무도 아직 꽃잎을 열지 않고 입을 꼭 다물고 있다. 못가 이요당(二樂堂)을 배경으로 붉은 연화 한가득 피어나고 배롱나무 곱게 필 때가 운치가 나는데 아직 이른편이다. 연꽃의 단아한 자태도 좋지만, 백일홍 붉은 꽃과  이요당이 어우러지면 멋진 풍경화를 그린다.

 "開見二人死 不見 一人死" 이란 큼직한 글이 새겨 진 연못가 배롱나무 그늘 아래에서 서출지를 바라보는 눈맛도 그만이다.

삼국유사 기이편(紀異扁)에 서출지에 얽힌 사금갑(射琴匣) 설화가 전해지는데.

때는 신라 소지왕 10년(488). 왕이 남산 기슭에 있던 '천천정'이라는 정자로 가고 있을 때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더니 쥐가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쫓아 가보라' 하였다.

괴이하게 여긴 왕이 신하를 시켜 따라 가보게 하였다. 그러나 신하는 이 못에 와서 두 마리의 돼지가 싸우는 것에 정신이 팔려 까마귀가 간 곳을 잃어버리고 헤매던 중 못 가운데서 한 노인이 나타나 봉투를 건네 주었고, 왕에게 그것을 올렸다.

 "開見二人死 不見 一人死" '열어보면 두사람이 죽고, 열어보지 않으면 한사람이 죽는다' 라고 그 겉봉에는 씌어 있었다.

왕은 한 사람이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열어보지 않으려 하였다. 그러자 일관(日官)이 두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요,

한 사람은 임금을 뜻한다고 하며 왕에게 봉투를 열어볼 것을 청하였다.

왕이 봉투를 열자, 그 안에는 "射琴匣" '거문고갑[琴匣]을 쏘라' 는 글이 씌어 있었다. 왕이 활로 거문고갑을 쏘니 그 안에서 궁주(宮主)와 승려가 정을 통하다 나왔다. 왕실에서 향을 올리던 중과 공주가 흉계를 꾸미고 있다가 죽음을 당했다는 것이다. 이 못에서 글이 나와 계략을 막았다 하여 이름을 '서출지(書出池)'라 하고, 정월 보름날은 '오기일(烏忌日)'이라 하여 찰밥을 준비해 까마귀에게 제사 지내는 풍속이 생겨 났다고 한다.

바로 오곡밥을 먹게 된 유래가 여기에서 비롯된다.

조선 현종 5년(1664)에 임적이라는 사람이 못가에 이요당(二樂堂) 이라는 건물을 지어 글을 읽고 경치를 즐겼다고 한다.

정면 4칸, 측면 2칸인 팔작집의 ㄱ자형 이요당(二樂堂) 건물은 연못 서북쪽에 소박하면서 우아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이요당(二樂堂)은 정자 건물로 풍천 임씨 종부댁의 개인 소유이다.

 

● 서출지(書出池) 찾아가는 길 경주시내에서 7번 국도를 타고 울산 쪽으로 가다가 사천왕사 터 앞에서 우회전, 화랑교를 넘어 동방역을 지난 후 우회전하면 통일전이다. 서출지는 통일전 왼편에 있다. 또다른 길은 7번 국도를 타고 울산 쪽으로 가다가 동방초등학교를 지나 우회전하여 조금 가면 서출지가 나온다.

 

 

▲  안압지 연꽃

 

▲  안압지 주차장과 이어지는 드넓은 연꽃 단지에는 지금 연꽃이 만개하여 지나는 길손의 발길을 잡는다.  2009.7.10

 

▲  안압지 연꽃 단지 정자 풍경.  2009.7.10

 

 

▲  안압지 연꽃 단지에서 바라 본 첨성대 .  2009.7.10

 

▲  안압지 연꽃 단지.  2009.7.10

 

 

▲  안압지 연꽃을 담는 마니아.  2009.7.10

 

2009.7.10 글.그림 정해유포토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