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세출의 가수 배호의 '마지막 잎새' 노랫말

 

Photo report  흐느끼며 떨어지는 마지막 잎새
-  배호의 마지막 잎새 노래 탄생지를 찾아.......  -

바람 한 점 없이 서리라도 내릴 듯한 달빛만 싸늘한 1970년 늦 가을밤 늦은  들일을 마치고 귀갓길인 현곡국민학교(현 초등학교) 담장 길에 수북이 떨어진 낙엽을 밟으며 걷던 29세의 문학 청년 정귀문은  흐느적대며 떨어지는 손바닥만한 플라타너스 낙엽 한 장을 무심코 잡아든다.
당시 현곡초등학교 담장 가에는 아름드리 플라타너스 나무가 담 너머로 가지를 길게 뻗어 늦가을이면 수많은 낙엽을 흩날렸다.
알싸한 밤 공기를 가르며 허공을 맴도는 마지막 입새를 잡은 정기문은 불현듯 소년기 때 이별한 친구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무친 친구에 대한 그리움은 낙엽이 곧 자신의 분신인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했다.
그 친구란, 까까머리 소년 시절 한 살 아래의 현곡국민학교(현 초등학교) 교장선선생님의 딸이었다.
그 소녀와 친구로 지내든 정기문은 첫사랑의 속알이를 대단히 했었다 . 세월은 흘러도 그 소녀의 잔상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 시절 그 소녀의 생각에, 그 옛날 뛰놀던 달빛이 싸늘한 운동장 플라타너스 낙엽을 밟으며, 좋아한다 말한마디 못하고 헤어진 그 소녀에 대한 심경을 문학 청년 정귀문이 가다듬은 노랫말이 바로 '마지막 잎새'이다.

1.그 시절 푸르던 잎 어느덧 낙엽 지고
달빛만 싸늘히 허전한 가지
바람도 살며시 비켜가건만
그 얼마나 참았던 사무친 상처 길래
흐느끼며 떨어지는 마지막 잎새

2.싸늘히 부는 바람 가슴을 파고들어
오가는 발길도 끊어진 거리
애타게 부르며 서로 찾을걸
어~이해 보내고 참았던 눈물인데
흐느끼며 길 떠나는 마지막 잎새

강산이 네 번씩이나 변한 세월 속에 그때 그 플라타너스 나무는 윗둥치를 잘린체 수많은 잔가지를 새끼를 쳐 지금도 그 자리에 그때처럼 늦가을 찬 바람에 몇 점 남은 잎새들은 떨고 있다.
북잽이 무명가수로 출발하여 생을 마감 때까지 투병(신장염)으로 사투를 반복했던 배호의 데뷔곡은 '굿바이(63년)', 마지막으로 취입한 노래인 '마지막 잎새'와 '영시의 이별'이 유작으로 노랫말처럼 파란 낙엽되어 1971년 11월 7일 29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마지막 잎새'를 한(恨)이 맺히게 마지막 노래로 목메어 부르고 배호가 타계했다는 비보를 작사가 정귀문씨는 고향마을 하구리 사랑방에서 새끼를 꼬다가 접했다고 한다.
지금도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는 배호의 기일(11.7)이면 깊은 생각에 빠진다고 한다.
자신이 만든 '마지막 잎새' 제목 처럼 마지막 노래가 되어 팬들의 살려내라는 항의를 많이 받기도 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마지막 잎새' 작사가 정귀문은 40년 가까운 세월동안 조미미의 '바다가 육지라면'등 수많은 히트곡들을 발표하였지만 늘 아마추어 정신으로 고향을 사랑하며 고향에 살며 1,000여 곡의 한국대중가요를 창작해오고 있는 경주(현곡)가 낳은 명작사가로 지금도 현곡초등학교 담장 옆 고향집에서 노래를 만들고 있다.

2003.6.22  배호 팬클럽 회원들의 정성을 담은 '불세출의 가수 배호의 마지막 잎새 노래비'가 세워졌다.
노래비는 작사가 정귀문(정문) 선생의 고향이자 현재 거처이기도 한 경북 경주시 현곡면 남사저수지 소공원에 건립되었다.  

경주시 금장에서 북서쪽 영천 고경 28호 국도와 이어지는 925번 지방도를 타고 조금 가면 하구, 가정리를 지나 야트막한  언덕길을 오르면 오른쪽으로 남사 저수지이다.  뒤쪽으로 남사리고 맞은편은 어림산 고개로 영천으로 넘는 고갯길이다.
925번 지방도에 붙어 있는 남사저수지가에는 서너 대가 주차할 수 있는 작은 공간에 소공원이 꾸며지고 이곳에는 '마지막 잎새' 배호의 노래비가 세워져있다. 그냥 앞만 보고 가노라면 그냥 칠 수 있는 위치이다.
노래비 정면에는 '마지막 잎새 '노랫말, 기둥에는 '불세출의 가수 배호의 마지막 잎새 노래비'라고 새겨져있고, 측면에는 가수 배호의 약력, 작사가 정귀문의 약력 그리고 뒷면에는 '마지막 잎새' 노래비 건립 경위를 새겼다.

'마지막 잎새 ' 노래비 앞에는 누군가가 가져 놓은 메마른 하얀 국화꽃 네 송이가 찬 바람에 떨고 있었다.
아마도 지난 11월 7일 배호의 38주년 기일을 맞아 누군가가 추모한 듯하였다.
비(碑)는 사적을 기념하기 위하여 돌이나 쇠붙이, 나무 따위에 글을 새기어 명소(名所)에 세우는게 일반적인데, 배호의 '마지막 잎새' 노래비는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는 그냥 904번 지방도 저수지가에 세워졌다.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도 배호의 '마지막 잎새' 노래비가 있는지조차 모르고 지나치기 일쑤이다. 그리고 이곳에 '마지막 잎새 ' 노래비가 있는지 아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알고 보면 세워 질 만한 곳에 세워졌는데.....
남사못이 있는 현곡은 '마지막 잎새'의 노랫말 탄생지이다. 남사못 아랫마을인 하구마을에는 우리나라 가요 사에 큰 족적을 남긴 정귀문 선생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이다. 2008.11.22 정해유 자유기고가.

 

 

 ▲   배호의 마지막 잎새 노래 탄생지인 경북 경주시 현곡면  하구 3리 현곡초등학교

▲   배호의 마지막 잎새 노래 탄생지인 현곡초등학교 담장가엔 지금도 그 나무가 현존한다.  강산이 네 번씩이나 변한 세월 속에 그때 그 플라타너스 나무는 윗둥치를 잘린체 수많은 잔가지를 새끼 쳐 지금도 그 자리에 그때처럼 늦가을 찬 바람에 몇 점 남은 잎새들은 떨고 있다.

불세출의 가수 배호의 마지막 잎새 노래비와 작사가 정귀문 선생의 고향마을 이정표

▲   불세출의 가수 배호의 마지막 잎새 노래비 정면

▲   불세출의 가수 배호의 마지막 잎새 노래비 뒷면엔 건립 경위가 새겨져 있다.

▲   '불세출의 가수 배호의 마지막 잎새 노래비' 측면에 새긴 가수 배호의 약력

▲   '불세출의 가수 배호의 마지막 잎새 노래비' 측면에 새긴 작사가 정귀문의 약력

▲   '불세출의 가수 배호의 마지막 잎새 노래비'에서 작사가 정귀문이 마지막 잎새를 부르며 추억에 잠긴다.

하구리 작사가 정귀문의 고향집에서 '마지막 잎새'를 기타에 실어 추억에 잠긴다.

▲   '마지막 잎새' 작사가 정귀문은 40년 가까운 세월동안 조미미의 '바다가 육지라면'등 수많은 히트곡들을 발표하였지만 늘 아마추어 정신으로 고향을 사랑하며 고향에 살며 1,000여 곡의 한국대중가요를 창작해오고 있는 경주(현곡)가 낳은 명작사가로 지금도 현곡초등학교 담장 옆 고향집에서 노래를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