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를 아십니까. 보릿고개 ......

 '보릿고개'의 사전적 의미는 "
햇보리나올 지의 넘기 힘든 고개라는 으로, 묵은 곡식거의 떨어지보리아직 여물지 아니하여 농촌식량 사정가장 어려운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불과 사오십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에게는 해마다 똥구멍이 찢어지는 태산보다 더 높은 '보릿고개'를 힘겹게 넘어야 했다.
풋나물, 열매도 없이 오로지 보리가 익기만을 기다려야 했던 음력 삼사월 보릿고개는 하루하루가 굶주림과의 전쟁 이었다.

들판에 보리가 피어서 그 이삭이 익기 전 1∼2개월, 지난 가을 추수한 쌀을 다먹어 식량이 떨으져  보리가 익을 때 까지 기다리는 시기가 보릿고개였지요.

풀떼죽, 흰 쌀알 몇 개 뜬 갱죽(갱식이), 소나무 껍질등 초근목피(草根木皮) 그리고 쌀겨등으로 연명하던 그야말로 굶주림과의 전쟁이였지요.
보리가 익을 때를 기다리다 배고픈에 지쳐 설익은 보리 이삭을 뜯어 죽을 끓여 먹던 그 시절 ..................
참으로 똥구멍이 찢어지도록 가난했었죠.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뛰지 마라 배 꺼진다.' 고 많이 움직이지 말 것을 주문했다.

바닷가 사람들은 미역, 진저리, 모자반 등 해초를 , 육촌 사람들은 시래기, 쑥, 산나물 등에  약간의 보리나 좁쌀을 넣어 멀건하게  끊인  갱죽(갱식이)이 주식이었다.

쑥, 풀뿌리, 송기등 강한 섬유질을 섭취 하다보니 변이 딱딱하여져  배변시 똥구멍(항문)이 찢어져서 고통을 받았다는 말에서 유래된 가난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지요.

반세기 전  6, 7십 세대들은 그렇게 살았다. 보릿고개 시련에 어른 아이 할것 없이 오래 굶어 살가죽이 들떠서 붓고 누렇게 되는 부황(浮黃)병에, 그리고 얼굴에는 마른버짐이 피고 머리는 기계충이 생겨 일명 영구머리 어린이들이 많았던 그시절 그 때는 밥을 얻어 먹는 거지들도 왜 그렇게 많았는지.

초근목피(草根木皮)로 목숨을 어렵게 연명하던 때라 자고 일어나면 굶어 죽는 사람이 많아서  '밤새 안녕하셨습니까?'라는 인삿말이 생겼고, '진지 드셨습니까?’라고 안부를 물었지요.

점심때면 배가 고파 운동장가 두레박 우물가에서 물배를 채우던 그 시절이 반세기 전의 일로 먼 얘기가 아니다.

IT 1위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잘사는 대한민국은 오래지 않은 동안에 몰라보게 변하여 아주 다른 세상이 된 것 같은 격세지감(隔世
感)이든다.
따뜻하고 시원한 방에서 잘 먹고 편해지니 살만
뒤룩뒤룩 쪄  살 빼기로 난리법석을 뜨는 모습을 보노라면 세상이 참 많이도 변했다.

보리가 고개를 숙이는 오월이면 똥구멍이 찢어지도록 가난했던 그 시절의 이웃들이 문득 그립워지고 배고파도 마음만은 순수했던 그시절이 그립다.

국민학교(당시) 시절 재 넘어 면 소재지 까지의 이십 리 소릿길은 추억이 너무나 진하여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눈 감으면 어제일같이 오버랩 된다.
≪깜장 바지 저고리, 깜장 고무신,  깡마른 얼굴의 마른버짐, 까까머리엔 기계충 흉터( 일명 영구머리)≫
보릿고개 시절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당시는 가정마다 의식주에 필요한 물자를 스스로 생산하여 충당하는 자급자족 경제였기 때문에 오일장이 열려도 농수산물 거래가 주였지 공산품은 거의 없었다. 양잿물, 고무신,연필,백로지(갱지) 등이 당시에는 주요한 공산품이었다.

농경시대가 공업국으로 전환 과정에서 식량의 대량 수입과 통일벼 등 벼 품종개량과 비료·농약의 공급확대 등으로 식량증산에 힘써 1970년대 중반에  식량의 자급자족으로 보릿고개도 서서히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져갔다.

'해마다 보리가 고개를 숙이는 5월이면 배고픔이 뭐 자랑이라고, 보릿고개 추억을 떠올리는지 !'
 필자는 보릿고개  끝 세대로  유년시절 꽁보리 곱삶이와 갱죽에 질려  지금도 보리밥과 죽을 싫어하는데  보리가 뭐 좋아서 연구실 뜰 가득히 보리를 심어 보릿고개의 추억을 반추하면서 낭만을 즐기는지 ! 모를 일이다.
해마다 가을이면 보리를 갈아 이듬해 6월이면 몇 말 거두어 지인들과 나누어 엿질금이나 보리차로 활용한다.
올해 보리 작황은 좋다. 밑거름으로 퇴비를 잔뜩 주어서인지 보리알이 탱글탱글하다.
오늘은 때 이른 더위로 여름날을 방불케한다. 연구실 뜨락의 매화그늘 들마루에 앉으니 고개숙인 보리가 내마음의 타임머신을 그 시절로 시계바늘을 되돌린다.

당시 국민학교 느티나무가 두레박 샘에서 점심으로 물배를 채우고 책보를 어깨에 질끈 매고 보리밭을 지나 샘골재 고갯마루에 오르면 저 멀리 청산 아래 옹기종기 붙은 초가집이 눈에 선하다.
고향마을 소릿길의 아카시아, 찔레꽃 진한 향도 그립고,  산에도 들에도 물결을 이룬 청보리밭도 눈에 삼삼하다.
한참 그 시절로 돌아가 추억을 헤매다가 짱지비알에서 쌍으로 울어대는 뻐꾹새 소리에 현실로 되돌아 온다.
봄바람에 실여 온 곰냇골 아카시아향이 좋은 봄날의 오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