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 부석사의 낭만

경북 영주시 부석면 태백산 부석사는 신라 천년 고찰로 산사 가을 풍경으로 으뜸으로 치는 곳이다.
특히 일주문에서 사천왕문까지의 은행 단풍길은 눈이 시릴정도로 노랗다.
그리고  
해가 지고 어둑어둑할 때 부석사의 안양루에서 바라보는  황혼(黃昏) 전경은  아름답다.
태백산 부석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로,  신라 문무왕 16 (676년) 2월에 의상(義湘)이 왕명으로 창건한 뒤 화엄종의 중심 사찰로 삼았다고 한다.
부석사는 명찰(名刹 )답게  이곳에는 국보 제18호인 무량수전과 국보 제19호인 조사당(祖師堂)을 비롯하여, 조선 후기의 건물인 범종루·원각전·안양루·선묘각·응진전·자인당·좌우요사·취현암 등의 문화재가 많은 곳이다. 부석사는 천왕문에서 안양문까지 108개의 돌계단을 밟아 오르는데 이는 108번뇌(煩惱)를 제도한다는 뜻의 표현이다.
부석사의 대표적인 볼거리는 일반 사찰의 대웅전 격인 무량수전과  절 입구의 은행나무길 그리고 안양루에서 바라보는 전경 등을  꼽을 수 있다.
우리나라 곳곳에는 큰 은행나무길이 많이 있지만, 부석사 은행 나무길을 으뜸으로 친다.
사계절 모두 좋지만 특히, 눈이 시리도록 노란 단풍이 곱게지는 만추에 단풍비를 맞으며 걷노라면 마치 극락이 따로없다.

 Tip  부석사의 창건 설화
<삼국유사>에 이 절의 창건에 얽힌 설화가 다음과 같이 전해진다.
661년(문무왕 1) 불교 공부를 위해 당나라를 향해 떠난 의상은 상선을 타고 등주(登州) 해안에 도착했는데, 그 곳 어느 신자의 집에서 며칠을 머무르게 되었다.
신자의 딸 선묘는 의상을 사모하여 결혼을 청했으나, 의상은 오히려 선묘를 감화시켜 보리심을 발하게 했다.
선묘는 그 때 "영원히 스님의 제자가 되어 스님의 공부와 교화와 불사를 성취하는데 도움이 되어드리겠다"는 원을 세웠고, 의상은 종남산(終南山)에 있는 지엄(智儼)을 찾아가서 화엄학을 공부했다.
그 뒤 귀국하는 길에 의상은 다시 선묘의 집을 찾아 그동안 베풀어 준 편의에 감사를 표하고 뱃길이 바빠 곧바로 배에 올랐다. 선묘는 의상을 위해 준비해 두었던 법복과 집기 등을 전하기도 전에 의상이 떠나 버렸으므로, 급히 이들을 넣은 상자를 가지고 선창으로 달려 갔으나 배는 이미 떠나고 있었다.
선묘는 의상에게 공향하려는 지극한 정성으로 저만큼 떠나는 배를 향해 상자를 던져 의상에게 전했다.
곧 이어 선묘는 다시 서원을 세워 몸을 바다에 던져 의상이 탄 배를 옹호하는 용이 되었다.
용은 의상이 신라에 도착한 뒤에도 줄곧 의상을 옹호하고 다녔다.
의상이 화엄을 펼 수 있는 땅을 찾아 봉황산에 이르렀으나 여기에는 도둑의 무리 500명이 살고 있었다.
이 때 용은 커다란 바위로 변하여 공중에 떠서 도둑들을 위협하여 모두 몰아내고 절을 창건할 수 있도록 했다.
의상은 용이 바위로 변해 절을 지을 수 있도록 했다고 하여 절 이름을 부석사로 지었다. 현재 이 절 무량수전 뒤에 부석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가 당시의 그 바위라고 전해진다

 

▼ 부석사 가을길

▼ 부석사 사하촌 사과

▼ 우리나라 곳곳에는 큰 은행나무길이 많이 있지만, 부석사 은행 나무길을 으뜸으로 친다.

▼ 태백산 부석사 일주문

▼ 태백산 부석사 은행나무 길

▼ 부석사는 사계절 모두 좋지만 특히, 눈이 시리도록 노란 단풍이 곱게지는 만추에 단풍비를 맞으며 걷노라면 마치 극락이 따로없다.

▼  부석사 안양루

▼  부석사 무량수전

▼  해가 지고 어둑어둑할 때 부석사의 안양루에서 바라보는  황혼(黃昏) 전경은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