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일요일인 11월 7일이 겨울의 문턱인 입동(立冬 11.7)으로 이제 가을 단풍 잔치도 파장이다.

만산홍엽을 뽐내든 나뭇잎은 갈잎 되어 찬 바람에 나뒹굴고 나목의 앙상한 가지마다 스치는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스산한 겨울의 문턱이다.
10월의 마지막 날 만추 용계 은행나무 아래 찬 서리를 맞고 소복이 쌓인 낙엽이나 담아 볼까 차 머리를 돌렸으나 마지막 잎새 한 장 없이 다 떨어낸 거목엔 가을의 흔적은 간 곳이 없다.
실망을 머금고 만추 임하호를 끼고 영양 서석지의 만추 풍경을 그리며 차 머리를 돌린다.

보길도의 부용원, 담양의 소쇄원하면 잘 알아도 우리나라 3대 정원의 하나인 서석지를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다. 경북 내륙의 한 갖진 산골 마을이라 접근성이 떨어지고 주변 연계 볼거리가 거시기해서인지 요즘같이 서석지에 은행 비를 흩날리며 고가와 기와 담에 소보소복 쌓아 만추 수채화를 그려도 객꾼 없는 자축연이다.
입암면 소재지 신구에서 좌회전 911지방도를 따라 선바위를 지나 조금 가면 연당리 입구에 닿는다.
차창에서 힐끗 보니 웬일 딱 타이밍이 맞았다. 서석지는 온통 노랑 물감을 통째로 흩뿌려 큰 붓으로 썩썩 문지른 듯 수채화를 그린다.
400여 년 노거수 은행은 땅바닥을 노랗게 물들일 정도로 노란 잎을 흩뿌리고도 노랑나무 그대로이다.

아무도 밟지 않은 은행잎은 만추 이슬에 촉촉이 젖어 있다. 첫눈을 밟듯 한 발 한 발 내디디니 발걸음 뛰기가 아깝다. 그 때 까만 차 한 대가 들어선다.  
만추 영양 여행차 서울에서 왔다는 중년 부부는 입이 쩍 벌어진다.
"참 좋네요.이렇게 좋은 곳인 줄은 모랐습니다"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서석지는 광해(光海), 인조(仁祖) 연간에 성균관 진사를 지낸 석문 정영방(鄭榮邦)(1577~1650년)선생의 별장으로 보길도의 부용원, 담양의 소쇄원과 더불어 3대 한국 정원으로 꼽히는 아름다운 정원이다.

4백 여년 된 은행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드리워주는 연못 주변에는 소나무, 대나무, 매화나무, 국화를 심어 선비의 지조를 상징 하였다.

흡사 사극 드라마의 배경으로 나올법한 고색창연한 서석지 처마끝으로 고목 은행이 노란잎을 예쁘게 달고 연못으로 축 늘어진 모습이 한폭의 동양화를 그린 듯하다.
정자문을 들어서면 왼편 서단에는 규묘가 큰 경정(敬亭)이 자리하고 있다. 경정은 넓은 대청과 방 2개로 되어있는 큰 정자이다.

북단에 있는 3칸 서재인 주일재(主一齋) 마루에는 운루헌(雲樓軒)이라고 쓴 편액(扁額)이 걸려 있다.

주일재 앞 화단에는 송죽매국(松竹梅菊)을 심어 사우단(四友壇)을 만들었다.  그리고 정자인 경정의 뒤편에는 수직사(守直舍) 두 채를 두었는데 큰채에는 자양재(紫陽齋)라고 쓴 편액이 걸려 있다.

아랫채에는 지금도 디딜방아가 그대로 있다.

경정(敬亭)앞의 연당(蓮塘)에는 수초가 자라고 서석군은 동편 연못바닥을 형성하는데 크고 작은 암반들이 각양각색의 형태로 솟아 있다.

돌 하나하나에 모두 명칭이 붙어 있다. 서석지라는 이 연못의 이름도 연못 안에 솟은 서석군(瑞石群)에서 유래한다. 마지막 잎새가 지기전에 한번 둘로 봄이 어떠리!

 

찾아가는 길

34번, 31번 국도 교차점인 진보 월전마을에서 31번 도로를 타고 입암면 소재지 마을인 신구에서 좌회전하여 다리를건너 911번 지방도를 타고 선 바위를 지나 10여분 시골길을 타면 연당마을 이정표가 보인다(지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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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생가 두들 마을 /서석지 여름/조지훈 생가/일뤌산/수하게곡/수비 고추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