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암의 가을그림

충북 단양군  대강면 사인암리 산27번지에 위치한 사인암舍人巖(명승  제47호)은 남조천(일명 운계천)변에 높이 70m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직벽을 이루며 위엄을 자랑하고 있다.

충북 단양군 대강면 사인암리 산27번지에 있는 사인암舍人巖(명승  제47호)은 남조천(일명 운계천)변에 높이 70m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직벽을 이루며 위엄을 자랑하고 있는 곳으로 추사 김정희가 이곳을 두고 하늘에서 내려온 한 폭 그림과 같다고 찬양했을 정도로 그 경관이 특이하고 아름답다. 특히 가을 그림은 한 폭의 한국화를 그린다.

고려 시대 경사와 역학에 능통했던 역동우탁(易東禹倬) 선생이 정4품 벼슬인 사인(舍人) 재직 시 이곳에서 머물렀다는 사연이 있어 조선 성종 때 단양군수였던 임재광이 사인암이라 명명했다고 전하며, 암벽에는 "卓爾弗群 確乎不拔 獨立不懼 豚世無憫(탁루불군 확호불발 독립불구 돈세무민) " 즉 뛰어난 것은 무리에 비유할 것이 아니며 확실하게 빼지 못한다. 혼자서도 두려운 것이 없으며, 세상에 은둔해도 근심함이 없다"라는 우탁의 글이 남아 전한다. 70m 기암절벽 꼭대기에는 노송까지 곁들여, 흰 구름이 걸칠 때면 마치 해금강을 연상하게 한다.

 역동우탁(易東禹倬) 선생은 성리학(性理學)의 선구자인 동시에 시조문학(時調文學)의 효시(嚆矢)로 탄로가(嘆老歌)를 남긴 분이다.

말년의 역동 선생이 늙음을 한탄하며 인생의 허무를 노래한 「탄로가(嘆老歌)」는 그의 묘소가 있는 안동시 예안면 지삼리 '鼎井齋 정정재' 재실 정원과 충북 단양시 대강면 사인암 암벽에 새겨 전한다.

"한 손에 막대 집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
늙은 길 가시로 막고 오는 白髮 막대로 치렸더니
白髮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그리고 우탁은 주역의 이치에 능한 사람이었다. 주역은 일명 「역경」이라 하는데 약칭으로 그냥 '역'이라고도 한다.
'역'은 괘를 따져 의미를 서술하는 것이기 때문에 역에 능하면 길흉을 점칠 수 있다.
주역의 이치를 깊이 공부한 우탁은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뛰어난 역학자였으며, 또 이를 넘어서 도술까지 부렸다고 한다.
어느 여름날 개구리 울음소리가 하도 시끄러워 우탁이  "네 이놈들 계속 그렇게 기승을 부리면 멸종을 시킬 것이니라." 하고  글을 써서 개구리들에게 보내니 동헌으로 개구리들이 떼로 몰려와 살려 달라고 애걸복걸했다는 이야기와 호랑이가 사람과 가축에 해를 끼치는 것을 보았을 때도 이런 방법을 써서 퇴치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  추사 김정희가 이곳을 두고 하늘에서 내려온 한 폭 그림과 같다고 찬양했을 정도로 그 경관이 특이하고 아름답다.

▲  70m 기암절벽 꼭대기에는 노송까지 곁들여, 흰구름이 걸칠때면 마치 해금강을 연상하게 한다.

▲  사인암舍人巖(명승  제47호)의 가을 그림

▲  사인암舍人巖(명승  제47호)의 가을 그림

▲ 사인암 암벽에는 "卓爾弗群 確乎不拔 獨立不懼 豚世無憫(탁루불군 확호불발 독립불구 돈세무민) " 즉 뛰어난 것은 무리에 비유할 것이 아니며 확실하게 빼지 못한다. 혼자서도 두려운 것이 없으며, 세상에 은둔해도 근심함이 없다"라는 우탁의 글이 남아 전한다.

▲  말년의 역동 선생이 늙음을 한탄하며 인생의 허무를 노래한 「탄로가(嘆老歌)」는 그의 묘소가 있는 안동시 예안면 지삼리 '鼎井齋 정정재' 재실 정원과 충북 단양시 대강면 사인암 암벽에 새겨 전한다.

"한손에 막대 집고 또 한손에 가시쥐고
늙은 길 가시로 막고 오는 白髮 막대로 치렸더니
白髮이 제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  사인암舍人巖(명승  제47호)의 여름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