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으로 삼고싶은  띠띠미 산수유 마을

옴폭 패인 문수산 구릉에 20여 호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봉화땅 산촌 마을 띠띠미에는 400년 이상 된 산수유 수만 그루가 군락을 이뤄 온 마을을 노랗게 채색하고 있다.
봄의 전령사 산수유하면 일반적으로 구례 산동, 이천 백사, 의성 숲실 군락지를 연상하나 진짜 고향 마을의 향수를 자극하는 산수유 마을은 경북 봉화 띠띠미 마을 산수유 군락지이다.
이 마을은 글이나 사진으로는 그 표현이 모자란다. 직접 찾아 눈으로 보아야 실감이 나는 산촌마을이다.
노란 산수유 꽃그늘에 뭍힌 고가와 흙담장 너머로 축축 가지를 늘어뜨린 산수유가 고향마을의 향수를 자극한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

절로 고향의 봄이 흥얼거려지는 마음속의 고향에 온 듯한 감흥에 빠질 것이다.
마음대로 고향을 정할 수 있다면 고향으로 삼고싶은 마을이다.

구례 산동이나 이천 백사을은 유명세로 지금 쯤 상춘객으로 미어터지지만, 이곳은 거대 산수유 군락지임에도 산촌의 순수를 그대로 간직한 마음속의 고향같은 할아버지 마을길을 거닐고 이웃 아주머니 보리밭 메는 웰빙 그 자체이다.

경북에서 봉화하면 산골 오지로 연상되지만,그것은  옛소리고 지금은 어디서나 접근성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산수유 꽃 구경보다 사람 구경이 싫다면 그 대안으로 올봄 띠띠미 산수유마을이 어떨까 싶다.
언제 찾아도 고향같은 호젓하고 고저넉한 띠띠미 산수유꽃 그늘 아래에서 낭만에 젖어 추억을 쌓아봄이 어떨까!
2012년 4월 7일 현재 띠띠미 산수유마을 산수유는 그림에서 보다싶이 볼 만하나, 만개는 4월14일 경이라고 현지인은 전한다.
그 때 이곳에서는 2012 띠띠미 산수유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통상 산수유는 개화후 1주일 쯤이 가장 보기좋다고 한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동요 고향의 봄이  절로 흥얼거려지는 띠띠미는 태백산 문수산 아랫자락 옴폭 들어간 자리에 소쿠리 모양새로 들머리길만 열려있다. 노란 꽃을 한 소쿠리 담아 놓은 듯한 지세이다. 
그 소쿠리에 빠져들어 봄날을 즐겨보자. 
필자는 지금 참꽃이 듬성듬성 핀 마을 앞산
소나무 그늘 아래에서 렌즈로 그림을 그린다.
렌즈에 그려지는 띠띠미는 한 폭의 유채화이다. 노랑물감을 통째로 문수산에 들러부어 큰 붓으로 썩썩 문지른 듯 온통 노랑 세상이다.

마을이 산수유를 품고 있는지, 산수유가 마을을 안고 있는지 자연과 하나 된  이쁜 마을로 드라마 배경으로 좋을 듯한 영상미가 아름다운  꽃피는 산골마을이다.
참 이상한 일이다. 산좋고,물좋고,꽃좋아 셔터를 눌렀다하면 산수화가 그려지는 띠띠미 마을 사진들이 검색을 해보면 많지 않다.
띠띠미 산수유 정보를 찾어려는 유저들이 띠띠미의 참모습을 가늠하여 보기엔 좀 부족하다.
4년전에 처음 둘러보고 두 번째 띠띠미 산수유를 찾았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고저넉한 산촌으로 남아 인적이 드물다.

주민들에 의하면 봄가을로 띠띠미의 산수유를 담으러 사진가,화가들이 가끔 찾는다고 전한다.
이정도 사진빨이면 웹상에 사진 정보들이 많을텐데 4년전이나 지금이나 정보량이 빈약하다.
아마 이곳을 찾는이 혼자 보고 몰래 즐기려 가슴에 담아두는 곳이 아닐까!
띠띠미의 산수유는 개체수(어림 추산 10,000여 그루)가 많고 田地전지에 작목으로 400여년간 재배되어 그 둥치가 아기 허리만하다.
논 한뱀이 없는 첩첩산골  띠띠미 사람들은 비탈 밭에 산수유 농사로 4세기를 살았으니 산수유는 나무가 아니라 곡식으로 빨간 열매는 곧 쌀이었던 것이다.
그 열매로 자식 공부 시키고 결혼도 시켰으니 그 얼마나 귀한 나무이던가!
띠띠미 들머리길은 좌우로 갈라지는데, 바로가면 띠띠미 마을이고 오른쪽 골은 온통 산수유로 가득한 옥얌골이다.
"띠띠미"란 마을 이름이 어찌보면 정답고
평화스럽지만, 어찌보면 촌 스럽다.
마을의
四方사방이 태백산 문수산 줄기로 꽉 막혀 있어 마을 이름에 "막힐 두(杜)"자가 들어간 '杜洞두동 마을’이다.

"할머니 이마을 이름이 뭐에요?"
"띠띠미요..."

비닐하우스에서 물을 주던 할머니의 답이다.
지도에는 분명 ‘
杜洞두동 마을’이라 표기되어 있으나, 그 지역 사람들은 모두들 ‘띠띠미 마을’이라 부른다.
뒷마을 後谷후곡 즉 ‘뒷띠미’가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뒷띠미가 띠띠미로 굳어 졌다고 한다.
띠띠미 마을은 400여년전
병자호란(인조14년1636년)때 개절공(介節公) 두곡(杜谷)홍우정(洪宇定) 선생의 피난처로서 개척된 마을이다.
마을 전경을 담으려고 앞산에 올라 내려다 본
鳥瞰조감은 要塞요새중의 요새다. 
四方사방이 문수산 줄기로 둘러 쳐지고 가운데가 옴폭 패인 분지로 앞면 좁은 골에 들머리길만 열려 있으니 지금도 초행길인 사람은 36번 국도에서 동양리로 접어들어도  길은 열려 있는데 띠띠미 마을이 어디쯤인지 종 잡을 수 없다.
위성 네비게이션도 못 들어가고 동양리에서 안내를 종료하는 마을이다.
동양리에서 약 오리길을 올라 좁은 협곡을 지나야 노란 산수유꽃에 숨어있는 띠띠미 마을이 빼곰이 얼굴을 내민다.

양지녘 띠띠미의 봄은 온통 노랑 세상이다. 집에도,들에도 산에도 모두가 노랑물결이다.  
카메라를 둘러맨  객꾼이 마을을 훼집고 다녀도 주민들은 보이지 않는다.
오른쪽 옥얌골로 내려가는 길옆 비닐하우스에서 고추묘에 물을 주던 홍 할아버지(80)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봄가을로 사진 찍으로 많이 오제",  "어디서 왔는교?"
하고 반가이 맞는다.
수인사를 나눈 홍할아버지는 여러 가지로 재미나게 말씀을 해 주셨다.

 "우리 마실은 산수유가 많은데 언제부터 심어졌는가 하면 두곡 할배가 피난할적에 산수유 두 그루를 심어 논밭이 없어 산수유 먹고 살았지."
"할아버지 그 때가 병자호란때니 한 400년은 되었겠네요?"
"400살 먹은 나무가 저 나무여"
손짓으로 시조목을 가르킨다.
" 물야와, 의성 산수유도 여기서 새끼 친것거여"

4 백번은 꽃을 틔웠을 띠띠미 "산수유 시조나무" 는 올해도 가지마다 노란 꽃을 피워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띠띠미의 산수유는 400살 시조목을 비롯하여  대부분이 100살은 넘음직한
古木고목들로 둥치가 굵고 가지가 많아 꽃이 이쁘다.

 " 지금은
20여호가 되는데 전부 늙은이 뿐이여, 옛날에는 50여호 살았는데 산수유 농사로 자식들 공부시키고 장가도 보내고 먹고 살았지 요즘은 젊은들이 없어 힘들어... "

하는 말씀을 뒤로하고, 옆골인 옥얌 산수유 꽃그늘을 걸으며 함참이나 생각에 잠겼다.
신문, 인터넷에는 구례산수유 소식으로 도배질을 하고 방송은 봄꽃이 어디가 좋다고 그렇게 떠드는데, 띠띠미 산수유 소식은 일간지 여행코너에서 간단히
처럼  원경으로 문수산 푸른 송림 위로 파란 하늘 뭉게구름, 중경으로 주제인 산수유노란꽃 무리, 전경인 흙길에 붉은댕기 검정치마 흰저고리 물동이 인 여인네의 뒷모습 영상미는 환상 그 자체일 것 같다.

여행길잡이
중앙고속도로→ 영주IC→36번 국도→봉화→ 천성사 이정표( 좌회전)→2㎞도로 끝마을( 띠띠미마을)

 

 

 

 

                                                                                                                              2012.4.8  글.사진 프리랜서 기고가 정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