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르포. 양백지간 10승지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 흰 구름 뜬 고개 넘어 가는 객이 누구냐 ♪ ♬~~ "

소백산과 태백산이 만나는 신선골 노루목에 방랑시인 김삿갓 섹소폰 소리가 잔잔히 흐른다.
양지바른 언덕에는 예사롭지 않은 묘지 한 기가 있고 들머리 숲 속 작은 난고정에는 죽장에 도포와 갓을 쓰고 괴나리봇짐에 짚신과 호리병을 묶은 현대판 김삿갓이 눈을 지그시 감고 방랑시인 김삿갓 노래 섹소폰 연주에 몰입이다.

노루목 양지바른 언덕의 묘지 비석엔 "시선난고 김병연 지묘(詩仙蘭皐金炳淵之墓)라고 새겨져 있다.
이어서 30여 명의 관광객이 노루목 난고정을 찾았다.

"하하하......... " 영락없는 김삿갓 복장에 흰 수염을 휘날리며 멋진 해설에 여행객을 사로잡는다.

죽장에 도포와 갓을쓰고 괴나리 봇짐에 짚신과 호리병을 묶은 현대판 김삿갓은 영월군 문화해설사 촤상락씨이다.

명함을 부탁했더니
 "하하하....."

너털웃음에 붓을 잡아 일필휘지로 최상의 낙(樂)으로 사는 김삿갓이라 적고 낙관을 친다..
"하하하....."

영월 땅 와석 골 노루목 양지바른 언덕에 잠든 이 분은 우리에게 방랑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김삿갓이다.
하동면에서 김삿갓면으로 면(面) 이름을 바꾸어 영월 관광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김삿갓유적지는 연간 수십만이 찾는 그야말로 국민 여행지이지만, 세상에 알려지기는 고작 30년이 넘었다.

 1982년 영월의 향토사학자 박영국 씨(작고)가  '김삿갓 뫼는 양백(태백- 소백)지간, 영월-영춘 어간에 있다'는 고문서 기록 하나로 집요한 추적으로 노루목 밭 가운데 초라하게 서 있던 김삿갓 무덤을 찾아 1989년 묘지 주변을 정비하여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감삿갓묘의 왼쪽은 태백산 끝자락이자 소백산 시발점으로 흡사 버드나무가지에 있는 꾀꼬리집 형국인 유지앵소(柳枝鶯巢)로  정감록에 기록된 십 승지 중 한 곳으로 겨울에 해가 가장 빨리 떠서 가장 늦게까지 머무는 명당이라고 현대판 김삿갓은 전한다.

유행가 방랑 시인 김삿갓으로 김삿갓 북한 방랑기란 드라마로 우리에게 친숙한 그가 실제 어디서 태어나 왜 영월에서 생활했으며 어떻게 자랐고 살았는지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와석 골 김삿갓문학관 벽화와 문화해설사의 해설로 김삿갓의 생애를 엿볼 수 있는데 그의 일생은 이러하다.

경기도 양주에서 출생한 김병연(金炳淵)은  본관이 안동으로 자는 난고(蘭皐), 별호는 김삿갓 또는 김립(金笠)으로  57(1807~1863)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한  방랑시인이다.
김삿갓은 안동김씨 세도가 집안의 자손으로 태어났으나, 그의 나이 다섯 살 때 홍경래의 난으로 운명이 바뀌게 된다.

선천 방어사 조부 김익순이 반군에 투항함으로써 역적의 집안으로 전락하였다.
여덟 살때 사면으로 이리저리 떠돌며 폐족(廢族)의 고단한 삶을 살다가 부친이 화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 홀어머니 함평  이씨가 형제를 데리고 강원도 영월 하동면(지금 김삿갓면) 노루목 어둠 골에 정착하여 모친의 후원에 힘입어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글공부에 힘 쓰다가, 스무 살에 결혼한 그 해 1826년(순조 32년), 영월 백일장에 장원하였다.

백일장의 시제(詩題)는 '논정가산 충절사  탄김익순 죄통우천' (論鄭嘉山 忠節死 嘆金益淳 罪通于天)이었다.

김병연은 가산 군수 정시(鄭蓍)의 충절은 찬양하고, 선천 방어사  김익순(조부)의 불충의 죄는 망군(忘君), 망친(忘親)의 벌로 만 번 죽어도  마땅하다고 신랄히 시를 쓰 장원을 하게 된다.

김병연이  장원 한날 어머니로 부터 청천벽력(靑天霹靂)같은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  네가 백일장에서 만고의 역적으로 욕되게  익자(益字) 순자(淳字)를  쓰셨던 선천 방어사는 네 할아버지였다.
너의  할아버지는 사형을 당하셨고 너희들에게 이런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게  제사 때 신주를 모시기는커녕 지방과 축문에 관직이 없었던  것처럼 처사(處士)로 써서 너희들을 속여 왔다......"

병연은  너무나 기막힌 사실에 말문이 막혀 버렸다.

'반란군의  괴수 홍경래에게 비겁하게 항복한 김익순이 나의 할아버지라니......'  

손자인  자신이 조부를 다시 죽인 천륜을 어긴 죄인이라고 스스로 단죄하고,  뛰어난 학식에도 불구하고 신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할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고민 끝에 삿갓을 쓰고 방랑의 길을 떠나 서민들 속에  섞여서 날카로운 풍자로 상류 사회를 희롱하고 재치와 해학으로 서민의  애환을 읊으며 일생을 떠돌다가 쉰 일곱, 전라도 땅에서 객사  2년 후 아들(익균)이 유해를 영월 와석리 노루목 고향으로 모셔와 시인은  고된 방랑을 멈추고  폐족의 한(恨)을 가슴에 뭍고  고단한  비주류의 삶을 마감하게 된다.

폐족(廢族)이란 조상이 큰 죄를 짓고 죽어 그 자손이 벼슬을 할 수 없게 된 조선시대의 벌이다.
김삿갓은 죽어서야 세상에 난리가 나도 굶주림과 재앙이 없이 화를 피하는 명당인  십승지(十勝地)에 안착하게 된 셈이다.

경북,충북,강원도가 맞닿은 남대,의풍,와석은 십승지(十勝地)로 정감록에 기록된 명당이다.
태백산 끝자락이자 소백산 시발점이기도 한 이지역은 태백, 소백 능선, 마대산, 어래산 준령으로 둘러쌓여 넓은 분지를 이루어 살만한 곳이지만, 아직까지 충북 단양군 영춘면에서 의풍으로 통하는 535번 지방도와 경북 영주시 부석에서 남대리 사이는 소백준령에 935번 지방도가 열려있으나 굴곡이 심하고 가팔라 교통이 불편하다.
특히 경북 부석에서 남대리간 소백준령 마구령 구간의 시멘트 포장길은 로폭이 좁고  급경사로 승용차 교행도 불편하고 버스 통행은 불가다.
부석에서 마구령(馬駒嶺) 정상까지는 3.4km의 짧은 거리지만 직선으로 소백산능선 통과로 경사가 매우 가파르다.
한두명 승차 차량은 거뜬히 오를수 있으나 짐을 가득 싣은 승용차는 오르기가 버겁다. 다섯명이 승차한 차로 겨우 정상까지 올라온 운전자 차에서 냄새가 난다고 엔진룸을 열어 식히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마구령 정상(810)에서 소백산 넘어 남대리 주막거리까지(2.7km)는 경사가  오르막길에 비해 완만하고 하늘을 덮는 숲길로 계곡을 끼고 돌아 멋진 길이다. 동승자가 있으면 운전자만 주막거리까지 내려가고 걸어서 내려가도 좋은 길이다.
마구령 소백산 능선길은 요즘같은 삼복지간에도 좋지만 단풍때는 멋진 드라이브나 산책길이다.
남대리 주막거리를 한모롱이 돌면 어래산 중턱에 현정사가 위치한다.
어래산현정사는 정광명장(법명)씨가 사재를 털어 스님들의 참선수행을 돕기 위해 만든 사찰로, 베스트셀러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의 저자 미국인 현각스님이 초대 주지스님으로 취임하여 세간에 회자된 사찰로 유명하다.

현정사에서 의풍리방향으로 조금 내려가면 경북과 충북의 지경인 삼도접경공원이다. 좌회전 하면 단양군청.동대리.구인사 방향 935번 지방도이고, 우회전하면 와석,김삿갓문학관,묘소 방향 28번도로가 이어진다.

사방이 태배-소백준령으로 둘러쌓였고 수도권이나 영남권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 작정을 않고는 쉽게 접근이 어려곳이다.
수도권에서는 영동고속도로 만종 분기점-중앙고속도로(대구 방면)-신림IC -88번국도를 타고 김삿갓계곡 들머리길로 접어들면 되고,영남권에서는 영주시 부석면에서 935번도로를 타면 (마구령 정상까지 3.4km, 정상에서 주막거리까지 2.7km) 20여분이면 재를 넘을수 있다.
허나 이 길은 로폭이 좁고 가팔라 겨울은 피하는게 좋다. 길은 멀어도 편하게 갈려면 중앙고속도로(대구 방면)-신림IC -88번국도를 타고 김삿갓계곡 들머리길로 접어들면 된다.

 

▲ 소백준령 마구령을 넘는 부석면의 935번 도로 들머리길로 버스통행 불가다. 여기서 마구령 정상까지 3.4km, 정상에서 주막거리까지는 2.7km로 20여분이면 재를 넘을수 있다. 허나 이 길은 로폭이 좁고 가팔라 겨울은 피하는게 좋다.

▲ 부석에서 마구령(馬駒嶺) 정상까지는 3.4km의 짧은 거리지만 직선으로 소백산능선 통과로 경사가 매우 가파르다.
한두명 승차 차량은 거뜬히 오를수 있으나 짐을 가득 싣은 승용차는 오르기가 버겁다.

▲ 마구령(馬駒嶺) 정상

 

 

▲ 마구령 정상(810)에서 소백산 넘어 남대리 주막거리까지(2.7km)는 경사가  오르막길에 비해 완만하고 하늘을 덮는 숲길로 계곡을 끼고 돌아 멋진 길이다. 동승자가 있으면 운전자만 주막거리까지 내려가고 걸어서 내려가도 좋은 길이다. 마구령 소백산 능선길은 요즘같은 삼복지간에도 좋지만 단풍때는 멋진 드라이브나 산책길이다.

▲  남대리 주막거리에서 부석방향 935번 도로 들머리길로 노폭이 좁고 굴곡이 심하여 버스통행 불가다. 여기서 마구령 정상까지 2.7km이다. 계곡을 끼고 울창한 밀림으로 덮여 운치있는 길이다.

▲  마구령 정상(810)에서 2.7km 소백산길을 내려가면  남대리 주막거리이다.

▲  현정사에서 의풍리방향으로 조금 내려가면 경북과 충북의 지경인 삼도접경지로 경상북도 지경표지석이 있다.

▲ 경북과 충북의 지경

▲  남대리에서 의풍리 방향으로 조금 내려가면 삼도접경공원이 나온다.

▲  김삿갓계곡의 피서객(조선민화박물관 앞 곡동천) 

▲ 어래산 현정사.
어래산현정사는 정광명장(법명)씨가 사재를 털어 스님들의 참선수행을 돕기 위해 만든 사찰로, 베스트셀러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의 저자 미국인 현각스님이 초대 주지스님으로 취임하여 세간에 회자된 사찰로 유명하다.

▲ 어래산 현정사.

▲  김사갓문학문학관 전경

▲  김삿갓문학문학관 전시관

▲  김삿갓문학문학관 관람객

▲  김삿갓문학관 좌우벽화. 벽화 속에서 그가 실제 어디서 태어나 왜 영월에서 생활했으며 어떻게 자랐고 살았는지에 대해서 그의 생애를 그림으로 전해주고 있다.

 

 

 

 

 

 

 

 

 

 

▲  소백산과 태백산이 만나는 신선골 노루목 양지바른 언덕의 김삿갓 묘. 묘지 비석엔 "시선난고 김병연 지묘(詩仙蘭皐金炳淵之墓)라고 새겨져 있다.

▲  하동면에서 김삿갓면으로 면(面) 이름을 바꾸어 영월 관광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김삿갓유적지는 연간 수십만이 찾는 그야말로 국민 여행지이지만, 세상에 알려지기는 고작 30년이 넘었다.
1982년 영월의 향토사학자 박영국 씨(작고)가  '김삿갓 뫼는 양백(태백- 소백)지간, 영월-영춘 어간에 있다'는 고문서 기록 하나로 집요한 추적으로 노루목 밭 가운데 초라하게 서 있던 김삿갓 무덤을 찾아 1989년 묘지 주변을 정비하여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감삿갓묘의 왼쪽은 태백산 끝자락이자 소백산 시발점으로 흡사 버드나무가지에 있는 꾀꼬리집 형국인 유지앵소(柳枝鶯巢)로  정감록에 기록된 십 승지 중 한 곳으로 겨울에 해가 가장 빨리 떠서 가장 늦게까지 머무는 명당이라고 현대판 김삿갓은 전한다.

▲  "하하하...... 마대산 김삿갓이요" 일필휘지로 "최상의 낙으로사는 김삿갓"이라고 써서 전하는 영월군 문화해설사 최상락씨이다.

▲   자칭 마대산 김삿갓의 예사롭지 않은 한지 명함  "최상의 낙으로사는 김삿갓"

▲  죽장에 도포와 갓을쓰고 괴나리 봇짐에 짚신과 호리병을 묶은 현대판 마대산 김삿갓은  영락없는 김삿갓의 모습이다. 
글이면 연주면 연주 영월의 걸물이다.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 흰 구름 뜬 고개 넘어 가는 객이 누구냐 ♪ ♬~~ "색소폰 연주는 전문가를 뺨친다.

▲  죽장에 도포와 갓을쓰고 괴나리 봇짐에 짚신과 호리병을 묶은 현대판 마대산 김삿갓이 관광객들에게 멋진 문화해설을 하고 있다.

▲  김삿갓묘에서 현대판 김삿갓

 

 

                                                                                                            2013.81. 르포. 정해유포토디자인연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