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여행
 포은 정몽주 유적지 임고서원

요즘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는 사극 정도전의 중요 배역인 포은 정몽주의 고향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임고서원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5.28(수) 주중인데도 꽤 많은 관광객이 선죽교를 둘러싸고 애기 꽃을 피우고 있었다. 임고서원의 아이콘은 선죽교이다.

북한의 국보 문화유물 제159호인 선죽교(善竹橋)는 개성 남대문에서 동쪽 약 1km 거리의 자남산 남쪽 개울에 있는 다리로 고려 태조 왕건이 919년 송도의시가지를 정비할때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길이 8.35m,너비 3.36m의 화강석으로 축조된 전형적인 널다리이다.
포은 정몽주선생이 후에 태종이 된 이방원의 일파에게 피살된 장소이다. 원래는 선지교라 불렀는데 포은 선생이 피살된 날 밤 다리 옆에서 참대가 솟아났다고 하여 선죽교(善竹橋)로 고쳐 불렀다고 전한다.
고려시대에는 돌난간이 없었으나 1780년 정몽주의 후손 정호인이 개성유수로 부임하여 선조의 유적에 우마차가 다님을 안타깝게 여겨 난간을 설치하여 통행을 제한하는 대신 행인을 위하여 바로 옆에 좁은 돌다리를 가설하였다고 한다. 임고서원의 성역화사업의 일환으로 개성의 선죽교를 실측하여 그 규묘대로 임고서원 은행나무 개울가에  가설하고  한석봉이 쓴 선죽교(善竹橋) 돌비석 또한 탁본하여 세우게 되었다고 돌비석에 전한다. 
임고서원에는 선죽교 외 포은유물관, 조옹대와 용연, 경상북도 기념물 제63호  임고서원은행나무 등에서 포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  기념물 제62호 임고서원   영천시 임고면 양항리 462
임고서원은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1337~1392)를 추모하기 위해 1553년(명종 8) 부래산(浮來山)에 건립하여 1554년(명종9)에 사액되었다. 포은은 1337년 임고면 우항동(愚巷洞)에서 일성군(日城君) 운관(云瓘)의 아들로 출생하였으며, 1360년(공민왕 9)에 문과에 장원하여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으며 왜구토벌에도 공을 세웠다. 지방관의 비행을 근절시키고 의창(義倉)을 세워 빈민을 구제하였으며 성리학에 뛰어났을 뿐 아니라 시문·서화에도 뛰어났다. 고려 삼은(三隱)의 한 사람으로 기울어져 가는 고려의 국운을 바로잡고자 노력하였으나 1392년(공양왕 4)에 이방원의 문객인 조영규(趙英珪)에 의해 선죽교(善竹橋)에서 피살되었다.1401년(태종 1)에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익양부원군(翼陽府院君)에 추봉되었다.

△  임고서원 건물 배치도

△  임고서원 영광루

 



△  경상북도 기념물 제63호  임고서원은행나무(臨皐書院銀杏나무) . 경북 영천시 임고면 양항리 161
임고서원의 은행나무는 나이가 5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20m, 둘레는 5.95m에 이른다. 가지는 사방으로 퍼져 있으며, 나무가 자라나는 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본래 이 나무는 임고서원이 부래산에 있을 당시 그곳에 심어져 있었던 것이나, 임진왜란(1592)으로 인해 없어진 임고서원을 1600년경 이곳에 다시 지으면서 은행나무도 옮겨 심은 것이라고 한다.임고서원의 은행나무는 오랜 세월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속에 살아온 나무로 생물학적 보존 가치가 인정되어 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임고서원에는 선죽교외  경상북도 기념물 제63호  임고서원은행나무(臨皐書院銀杏나무), 포은유물관, 조옹대와 용연 등 포은 정몽주의 역사이야기가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다.

△ 동방의힉지조 비석과 종옹대

 

△  임고서원 포은유물관

△  임고서원 포은유물관 포은 영정

 

△  임고서원 포은유물관 영상자료               2014.5.28 비주얼 이미지 디자인 연구실 정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