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보 제109호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軍威 阿彌陀如來三尊 石窟)

 

국보 제109호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1,000여 년전 신라인들은 바닥에서 20여 m 높이의 깎아지른절벽에 어떻게 석굴을 뚫고 저렇게 큰 세 분의 부처를 모셨을까.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경북 군위군 부계면 남산리 1477 소재 국보 제109호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軍威 阿彌陀如來三尊 石窟) 은 세상에 알려진지가 그리 오래지 않다.지금으로부터 86년전인 1927년 11월 . 배고팠았던 그 시절엔 이곳 남산리절벽에 굴의 흔적을 알고 있었지만 관심밖이었는데 인근 마을 한밤(대율리)에 사는 최두환이라는 분이 절벽 꼭대기에 밧줄을 매고 내려가 깎아지른 절벽 50여m 아래서 석굴에서 아미타여래삼존을 발견했다.
평소 새들이 드나들던 곳이지만, 칡덩쿨 잡목 등 억겹의 흔적을 걷어내니 막혀있던 석굴 입구가 열리면서 부처 세 분이 홀연히 모습을 드러냈으니 이가 곧 경주 석굴암보다 1세기 이상 앞선, 석굴 신앙의 모태요 신라에 불교를 전한 고구려 아도화상이 숨어 수도전법하던 도량인 군위 삼존석굴이다.

이렇게 석굴이 발견 된 이후에도 35년간 묻혀 있다가, 1962.12.20 자로 국보 제109호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軍威 阿彌陀如來三尊 石窟) 이란 이름으로 국보 제109호로 등록 문화재로 보호를 받고있다.

1963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석굴이 발견된 것은 나라의 경사라며 아미타여래삼존 석굴을 찾았으나 22m 높이의 절벽에 위치한지라 직접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일신라시대 때 저 높은 22m절벽에 어떻게 굴을 뚫어 저렇게 큰 부처 세 분을 모셨을까? 초대형 현대식 기중기를 동원해도 쉽지 않을 거사를 그 옛날에 석굴사원을 만들었을까? 참 아이러니하다.
대통령이 당시 돈으로 3천만 원을 시주해 굴 입구까지 오르는 현재 모습의 돌계단, 다리 등을 만들었다고 한다.
절벽의 자연동굴에 만들어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은 700년경 통일신라 초기의 석굴사원으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경주 석굴암 석굴(국보 제24호)보다 연대가 앞선다.
이곳 아미타여래삼존은 삼국시대 조각이 통일신라시대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높은 문화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자연
암벽을 뚫고 그 속에 불상을 배치한 본격적인 석굴사원이라는 점에서 불교 미술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경주 석굴암에 가리워져 빛을 못보고 있는 실정이다. 큰 도시 대구를 등(한티재) 넘어에 두고 있는 국보 제109호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은 단풍 시즌이지만 승려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방문자도 셀 정도로 쓸렁한 느낌이었다. 2013.10.27(日)

▲  이곳 아미타여래삼존은 삼국시대 조각이 통일신라시대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높은 문화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자연 암벽을 뚫고 그 속에 불상을 배치한 본격적인 석굴사원이라는 점에서 불교 미술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경주 석굴암에 가리워져 빛을 못보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가 찾은 이날도 단풍 시즌이지만 승려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방문자도 셀 정도로 쓸렁한 느낌이었다.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58호 군위삼존석굴석조비로자나불좌상 (軍威三尊石窟石造毘盧遮那佛坐像)  

▲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부속 건물

▲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부속 건물이 아니고 석글과 바로 붙어있는 사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