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봉평신라비 전시관 개관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봉평리 91번지 일대 4만1700여㎡(1만2600여 평)에 최근 개관된 울진 봉평신라비 전시관 모습

신라 역사를 다시 써야 할 정도로 중요한 국보 제242호 봉평신라비가 발견된 경북 울진군 죽변면 봉평리 91번지 일대에 봉평신라비 실물과 고구려 광개토대왕비, 신라 태종무열왕릉비, 백제 무령왕릉 지석 등의 국보·보물급 모형 비석 35점을 한 자리에 모운 유일무이한 비석박물관인 울진 봉평신라비 전시관이 최근 문을 열어 우리나라 비석 연구의 중심지로, 역사교육장으로 ,관광지로 뜨오르고 있다.
본  전시관은 죽변면 봉평리 91번지 7번국도 옛길과 새길 사이에 위치하여  7번국도 새길에서 내려다보여 접근성이 편리하다.
죽변 나들목을 빠져나오면 바로 울진 봉평신라비 전시관으로 연결되어 진다.
이곳 전시관을 중심으로 죽변곶 등대와 푸른바다 대숲이 빼곡한 해변에는 드라마 폭풍속으로의 세트장이 그림같이 펼쳐지고 사계절 싱싱한 횟감의 고향인 죽변항, 지척의 국내 유일의 노천탕인 덕구온천 ,그리고 등넘어 월천 솔섬과 무잘공비 출몰지 고포 미역 산지....등
눈과 입이 즐거운 곳이다.

본 전시관이 개관 전까지 봉평신라비는 발견된 지점에  한채의 전각으로 보전하다가 금번  봉평 신라비가 발견된 이곳 4만1700여㎡(1만2600여 평)에  울진 봉평신라비 전시관 이 개관되면서 이전되었다.
봉평신라비 전시관은 메인 실내 전시관을 중심으로 야외 비석공원, 비석거리, 정자, 연못, 주차장, 관리시설을 갖추었다.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꾸며진 실내 전시장의 제1전시실에는 봉평신라비 실물 이외에 별실로 꾸며진 체험관에는 모형 봉평신리비가 누워 놓아 관람객이 만져 보고 탁본할 수도 있다.
제2전시실에는 중원고구려비 등 삼국시대 주요 비석 모형 중 소형 위주로 10점과 금석학의 계보와 시대별 비의 양식, 한자 서체 등이 전시돼 있다.
전시실 후원의 한반도 모형의 야외 비석공원에는 대한민국 비석 아이콘인 광개토대왕비,황초령 신라 진흥왕순수비, 북관대첩비 외 25개의 고비석이 보호각 등이 없이 전시되어 관람객이 자유로이 만져볼 수 있고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실내 전시실 들머리 길 좌우의 비석거리에는  조선시대 강원도 관찰사,평해군수,울진현령 등을 지낸 지방관리들의 공덕을 칭송하여 세운 내 첫 비석박물관인 봉평리 울진비석전시관은 비석 연구의 중심지로, 역사교육장으로 ,관광지로 주목받고 있다.

문화재청 홈페이지는 울진 봉평리 신라비를 다음과 같이 기술(記述 )하고 있다.
경북 울진군  죽변면 봉평리 521 소 재  국보 제242호 울진 봉평리 신라비(蔚珍 鳳坪里 新羅碑) 는 삼국시대 신라의 비석으로, 1988년 봉평리 논 객토작업으로 2~3개월 방치되어 있던 것을 마을 주민(권대선)이 발견하고 신고하였다. 오랜 세월 땅속에 묻혀 있었던 까닭에 상태가 좋은 편은 아니나, 원래의 형태를 잘 간직하고 있다.
비는 자연돌을 다듬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였으며, 전체적인 모양은 사다리꼴에 가깝다. 비문은 한쪽 면에만 새겨져 있는데, 글자수는 400자 정도이다. 글씨는 중국 남북조시대에 북조의 영향을 받은 해서체이나, 예서체의 모습도 보인다.
내용은 전형적인 한문이 아니라 신라식의 독특한 한문체를 사용하여 파악이 어렵지만 전체적인 윤곽은 짐작할 만하다. 기본 줄거리는 울진 지방이 신라의 영토로 들어감에 따라 주민들의 항쟁이 일어나자, 신라에서는 육부(六部) 회의를 열고 대인(大人)을 보내어 벌을 주고, 다시 대항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비를 세웠다는 내용이다.
신라가 동북방면으로 진출하면서 건립한 비로, 법흥왕 11년(524)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신라 사회 전반에 걸치는 여러 면들을 새롭게 검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역사적 자료이다. 또한 법흥왕 때의 율령반포와 육부제의 실시, 왕권의 실태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울진봉평신라비는 오랜 세월 동안 땅속에 묻혀 있었던 까닭으로 비문의 일부가 마멸되어 정확한 판독이 어려우나 신라 법흥왕 11년(524)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신라가 영토확장으로 동해안지역에 실직주(悉直州)를 설치하고 이곳 지역을 새로 편입함에 따라 주민들의 항쟁사태가 일어나자 신라에는 이를 응징하기 위해 육부회의(六部會議)를 열고 대인(大人)을 파견하여 벌을 주고, 다시 대항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 비를 세운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비의 크기는 길이가 204cm, 글자가 새겨진 부분의 위폭 32cm, 아래폭 54.5cm이다. 비는 사각장방형의 자연석 화강암에 한면을 다듬어 비문을 새겼는데, 규모는 작지만 형태는 고구려 장수왕 2년(414)에 세운 광개토왕비와 유사한 고구려계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 비를 통하여 신라 육부제(六部制) 실시와 법흥왕의 율령반포에 대한 『삼국사기』의 기록입증 등 사료로서의 가치가 매우 크다.
울진봉평신라비는 오랜 세월 동안 땅속에 묻혀 있었던 까닭으로 비문의 일부가 마멸되어 정확한 판독이 어려우나 신라 법흥왕 11년(524)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신라가 영토확장으로 동해안지역에 실직주(悉直州)를 설치하고 이곳 지역을 새로 편입함에 따라 주민들의 항쟁사태가 일어나자 신라에는 이를 응징하기 위해 육부회의(六部會議)를 열고 대인(大人)을 파견하여 벌을 주고, 다시 대항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 비를 세운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비의 크기는 길이가 204cm, 글자가 새겨진 부분의 위폭 32cm, 아래폭 54.5cm이다. 비는 사각장방형의 자연석 화강암에 한면을 다듬어 비문을 새겼는데, 규모는 작지만 형태는 고구려 장수왕 2년(414)에 세운 광개토왕비와 유사한 고구려계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 비를 통하여 신라 육부제(六部制) 실시와 법흥왕의 율령반포에 대한 『삼국사기』의 기록입증 등 사료로서의 가치가 매우 크다.
 


  ↑ 울진 봉평신라비 전시관이 개관전 경북 울진군 죽변면 봉평리 91 소재 국보 242호  울진봉평신라비(蔚珍鳳坪新羅碑)  모습  1

 울진 봉평신라비 전시관이 개관전 경북 울진군 죽변면 봉평리 91 소재 국보 242호  울진봉평신라비(蔚珍鳳坪新羅碑)  모습  2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봉평리 91번지 일대 4만1700여㎡(1만2600여 평)에 최근 개관된 울진 봉평신라비 실내 전시관 모습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꾸며진 실내 전시장의 제1전시실에는 봉평신라비 실물 이외에 별실로 꾸며진 체험관에는 모형 봉평신리비가 누워 놓아 관람객이 만져 보고 탁본할 수도 있다. 제2전시실에는 중원고구려비 등 삼국시대 주요 비석 모형 중 소형 위주로 10점과 금석학의 계보와 시대별 비의 양식, 한자 서체 등이 전시돼 있다.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봉평리 91번지 일대 4만1700여㎡(1만2600여 평)에 최근 개관된 울진 봉평신라비 전시관의  정자와 연못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꾸며진 실내 전시장의 제1전시실에는 봉평신라비 실물 이외에 별실로 꾸며진 체험관에는 모형 봉평신리비가 누워 놓아 관람객이 만져 보고 탁본할 수도 있다.
제2전시실에는 중원고구려비 등 삼국시대 주요 비석 모형 중 소형 위주로 10점과 금석학의 계보와 시대별 비의 양식, 한자 서체 등이 전시돼 있다.
전시실 후원의 한반도 모형의 야외 비석공원에는 대한민국 비석 아이콘인 광개토대왕비,황초령 신라 진흥왕순수비, 북관대첩비 외 25개의 고비석이 보호각 등이 없이 전시되어 관람객이 자유로이 만져볼 수 있고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실내 전시실 들머리 길 좌우의 비석거리에는  조선시대 강원도 관찰사,평해군수,울진현령 등을 지낸 지방관리들의 공덕을 칭송하여 세운 내 첫 비석박물관인 봉평리 울진비석박물관은 비석 연구의 중심지로, 역사교육장으로 ,관광지로 주목받고 있다.

 실내  제1전시실의 봉평신라비 실물 

 실내  제1전시실의 체험실에는 모형 봉평신리비를 누워 놓아 관람객이 만져 보고 탁본할 수도 있다.

 전시실 후원의 한반도 모형의 야외 비석공원에는 대한민국 비석 아이콘인 광개토대왕비,황초령 신라 진흥왕순수비, 북관대첩비 외 25개의 고비석이 보호각 등이 없이 전시되어 관람객이 자유로이 만져볼 수 있고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야외 비석공원의 모형 황초령 신라 진흥왕순수비

  전시실 후원의 한반도 모형의 야외 비석공원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