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르포
워낭소리 촬영지 지금은
  - 인간과 소를 통해 삶과 이별의 의미를....'워낭소리' -

 
▲    '워낭소리' 주인공 최원균. 이삼순 .늙은 소를 그래픽


 
 대구 출발이면  안동에서 5번 국도를 타고 안동시 북후면 옹천을 지나 오운 삼거리에서 915번 지방도로 접어들어 조금 달리면 봉화 땅 상운면 소재지인 가곡리를 지나면  '원낭소리' 영화의 촬영지 하눌 1리에 닿는다.
 도로변 우측에 눈에 익은 선간판이 보인다.
이곳이 독립영화 '워낭소리' 주인공인 최원균, 이삼순 노부부의 집이다.  915번 도로에서 200m 정도의 지척인 얕으막한 산 아래 집까지 진입로가 협소하고 차를 돌릴 만한 공간이 여의치않아 차량은 도로변에 주차해 두는 것이 편하다.

영화속의 그 장소 노부부의 집 돌담 장엔 지금 하얀 찔레꽃이 곱게 피어 정겨운 고향 내음이 가득하다. 대문이 없는 샘가에는 장남 최영두씨(56)가 만든 '워낭소리 대장군과 여장군'이 손님을 맞는다.
그 장승에는 영화속의 명장면 명언들이 새겨져 내방객의 눈길을 끈다.

"소도 고물 나지오도 고물 영감도 고물"
"우리 집에와 고생 많이 했다. 좋은데 가거레이!"

장승을 지나면 노부부의 40년 지기 늙은 소의 보금자리였든 우리가 자리하고 있다.
살아 생전 한우리에 살면서 젊은 소가 늙은 소를 구박하든 모습이 눈에 선하다. 천수를 다한 늙은 소의 무덤은 생전에 주인과 밭갈이를 하든   산아래 작은 골짜기에 있다.

젊은 소와 노부부는 모내기 가고  빈우리다. 우리 뒤로는 실물모양의 늙은 소의 형사이 오월의 푸른 하늘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다.
모형소 뒤쪽으로는 장승이 서 있고 영화 속의 명언들을 새겨 놓았다.

"소 팔아 저놈의 소 새끼 때문에 내가 평생 고생이래"
"안 팔아  오백만원 전에는 택도 없어"

영화나 드라마가 뜨면 촬영지도 뜨기 마련.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의 강구항,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주산지가 좋은 예이다.

300만 관객을 동원한 워낭소리가  상영때는 이곳을 찾는 관광객으로  영화의 주인공 노부부가 몸살을 앓는다고 전해지지만, 필자가 찾은 오늘은 너무나 고즈넉하다.
관객의 눈시을 적신 대박을 터뜨린 영화 촬영지 치고는 별로 달라진 것도 없다.   노부부의 집 입구에 세원진 장승과 소모형 그리고 촬영지 가는 길 도로변의 '워낭소리 로드'안내 선간판, 촬영지 끝 자락 밭 가의 소 무덤 안내 선간판이 고작이다.

기라성같은 명배우, 아름다운 영상미, 세련된 대사가 없는  독립영화 '워낭소리'는 주인공인 노부부와 늙은 소가 더불어 살아가는 일상의 삶을 담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데 무엇이 300만 관객의 가슴을 시리게하고  눈가에 이슬을 맺히게 한  그 힘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독립영화 워낭소리는 자본에서 자유로와 누구의 간섭도 없이 짜여진 극본도 없이  감독은 늙은 농부 부부와 소가 살아가는 일상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담아 삶과 죽음, 이별을 진솔하게 그려내어  관객으로 하여금 부모, 할아버지, 할머니의 삶을 다시 조명해 보는 듯한,  다시 못올 것 같은 그 시절을 대리로 보여주므로써 자신의 부모를 되돌아보며 눈시을 적신게 아닐까 !

강구항이나 주산지 같은 스타 촬영지는 이쁜 영상미를 보여주나 주인공은 간데없다.  봉화 하눌리 산정마을 '워낭소리'촬영지는 주인공이 영화속 그 모습 그대로를 만날 수 있다. 영화 속의 또 하나의 주인공 늙은 소는 무덤으로 대신하지만......


누부부와 늙은 소가 살았던 집을 내려와 봉성 방향으로 915번 지방도를 한 500여 m 떨어진 길 건너편 논 가에는 '워낭 소리 로드'란 안내판이 서 있다.  안내판에서 워낭소리 촬영지와 소(牛) 무덤에 이르는 약 400여m의 좁은 농로는 차량 교행이 어렵고 끝지점도 차를 돌릴만한 공간이 없어 여행자는 차량을 입간판 주변에 두고 둘러보는 것이 좋다.

산 아래 논 가로 난 이 농로는 일명 '워낭소리 로드'로  주인공 최원정 노부부가 죽은 늙은 소가 끄는 수레를 타고 30여 년간 다니든 길이다.
노부부의 오랜 친구 40년지기 소는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노부부 곁을 떠나 저 산아래에 영면하고 있지만.....

지금은 젊은 소가 수레의 멍에를 이어받아 노부부의 발이 되어 준단다.  젊은 소도 벌써 송아지 두 마리를 낳아 영주장에 팔았다고 이삼순 할머니는
귀띔한다.

필자가 찾은 날도 영화 속 장면처럼 최원균 할아버지는 한쪽 다리가 불편함에도 무논에서 작은 작대기를 짚어가며 모내기를 하고 이삼순 할머니는 눈 둑에서 보식할 모를 담을 망태를 빈 비료 포대로 만드느라 바쁘다.
새끼를 썩썩 꼬아 무논에 빠지지 않도록 노란 장화를 잡아 매며  영화 속 모습 그대로 영감님을 타박한다.

영화에서는
"소도 고물 나지오도 고물 영감도 고물" 이라 했지만, 지금 고물 소와 고물 나지오는 보이지 않는다.

이 골짜기의 최원정 할아버지네 전답이 '워낭소리' 영화 주 촬영지이다. 감자랑 땅콩이 자라는 사래 긴 밭 가 작은 골짝엔 최원정 할아버지의 40년 지기 늙은 소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다.

늙의 소의 무덤가에는 잡초가 무성히 자라고 무덤에는  누군가 가져다놓은 말라 빠진 꽃이 자리하고 있을 뿐 고즈넉하다. 쌍으로 울어대는 뻐꾹새가  오월의 한낮 정적을 깨운다.

무덤가에 서니 영화속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친다.  
평생 할아버지에게 복종하며 일만 해왔던 늙은 소가 연민의 정이 느껴진다.

한아름 땔감을 지게에 진 할아버지와  땔감 수레를 끌고  힘겹게 뚜벅뚜벅 언덕길을 오르던 그 장면이 눈에 밟힌다..
2006년 12월 어느 날, 늙은 소는 주저 앉아 버린다. 죽음이 임박했음을 깨달은 최원균 할아버지는   "낭패래......"    하고 한탄하며 평생 옥죄었을 코뚜레와 워낭을 풀어 주면서  "좋은데 가거레이....."  울먹이며 40년지기 친구를 보내는 장면.
그리고 우시장으로 내다 팔기위해 시장으로 가는 날 두 눈에 흘르내린 두 줄기의 눈물.  모두가 파노라마친다.늙은 소의 무덤을 뒤로하고 '원낭소리 로드'를 내려오며 노부부에게 인삿말과 음료수를 전해드리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워낭 소리 울리며, 할아버지와 늙은 소가 30년간 걸었던 길을 홀로 걸으며   옛날 소싯적에 아버지가 키웠던 누렁이의 추억을 되씹으며 차에 올랐다.

'워낭'이란 마소의 귀에서 턱 밑으로 늘여 단 방울종(鐘)을 말하는데 경상도 농부들은 '핑경'이라고도 한다.
워낭은 소가 머리를 움직이면 딸랑 딸랑 소리를 내어 소의 위치를 알 수 있어 숲이 짙은 산에서도 워낭소리를 듣고 소의 위치를 알 수 있어 우리 한우의 위치 추적기라 할 수 있다. 시대가 변하면서 극히 일부의 일소를 제외한 한우들은 코뚜레도 워낭도 없다.
소도 편한 세상을 살아간다.

'워낭소리' 시놉시스(synopsis)는 이러하다.
<초록 논에 물이 돌 듯 온기를 전하는 이야기 팔순 농부와 마흔 살 소, 삶의 모든 것이 기적이었다.  평생 땅을 지키며 살아온 농부 최노인에겐 30년을 부려온 소 한 마리가 있다. 소의 수명은 보통 15년, 그런데 이 소의 나이는 무려 마흔 살.  살아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 이 소는 최노인의 베스트 프렌드이며, 최고의 농기구이고, 유일한 자가용이다. 귀가 잘 안 들리는 최노인이지만 희미한 소의 워낭 소리는 귀신같이 듣고 한 쪽 다리가 불편하지만 소 먹일 풀을 베기 위해 매일 산을 오른다. 심지어 소에게 해가 갈까 논에 농약을 치지 않는 고집쟁이다.  
소 역시 제대로 서지도 못 하면서 최노인이 고삐를 잡으면 산 같은 나뭇짐도 마다 않고 나른다.
무뚝뚝한 노인과 무덤덤한 소.  둘은 모두가 인정하는 환상의 친구다.
그러던 어느 봄, 최노인은 수의사에게 소가 올 해를 넘길 수 없을 거라는 선고를 듣는다.  최씨와 소의 30년 동행(同行)이 끝나는 순간,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소에게서 최씨가 워낭과 코뚜레를 풀어주며  “좋은 데로 가거래이” 할 때,  관객들은 끝내 눈물을 떨구는 삶과 이별의 의미를 되돌아보게하는 휴먼 다큐이다. >

 2009.5.23  글.사진 .그래픽 정해유포토밸리

 

 

 

▲   필자가 찾은 날도 영화속 장면처럼 최원균(82) 할아버지는 한 쪽 다리가 불편함에도 무논에서 작은 작대기를 짚어가며 모내기를 한다.

▲   필자가 찾은 날도 영화속 장면처럼 이삼순 할머니는 무논에 다리가 빠지지 않도록 장화를 둘러메기 위해 눈둑에서  새끼를 썩썩 꽂는다.

▲   필자가 찾은 날도 영화속 장면처럼 최원균(82).이삼순 노부부는 모내기를 한다.

▲   '워낭소리 ' 독립영화 주인공 늙은소 무덤.
무덤가에 서니 영화속 장면들이 파노라마친다. 한아름 땔감을 지게에 진 할아버지와  땔감 수레를 끌고  힘겹게 뚜벅뚜벅 언덕길을 오르던 그 장면이 눈에 밟힌다.마지막 땔감을 나른 뒤 소는 우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자, 죽음이 임박했음을 깨달은 최원균 할아버지는 혼잣말로   "낭패래......"    하고 한탄하며 평생 옥죄었을 코뚜레와 워낭을 풀어 주면서  "우리 집에와 고생 많이 했다. 좋은데 가거레이!...... "  울먹이며 40년지기 친구를 보내는 장면.그리고 우시장으로 내다 팔기위해 시장으로 가는 날 두 눈에 흘르내린 두 줄기의 눈물......
 

 ▲    '원낭소리' 영화의 촬영지 하눌 1리 최원균,이삼순 부부의 집 안내 입간판.
915번 도로변에 세운 입간판에서  200m 정도의 지척이 영화속 주인공 최원균.이삼순씨 부부 집이다. 진입로가 협소하고 차를 돌릴곳이  맞당치 않기 때문에 차량은 도로변에 주차해 두어야한다.

 ▲   독립영화 '워낭소리' 촬영지인 경북 봉화군 상운면 하눌 1리 마을

▲   '원낭소리' 영화의 촬영지 하눌 1리 최원균,이삼순 부부의 집 들머리.
영화속의 그 장소 노부부의 집 돌담장엔 지금 하얀 찔레꽃이 곱게 피어 그 향이 나그네를 맞는다.  오른쪽 산밑으로는 몇 개의 장승이 서있고 그 장승에는 영화속의 명장면 명언들이 새겨져 내방객의 눈길을 끈다.
"소도 고물 나지오도 고물 영감도 고물"
"우리 집에와 고생 많이 했다. 좋은데 가거레이!"

▲   '원낭소리' 영화의 촬영지 하눌 1리 최원균,이삼순 부부의 집

▲  장승을 지나면 노부부와 죽은 소가 먹었을  샘을 지나면 노부부의 40년지기 늙은소의 보금자리였든 우리다.
살아 생전 한우리에 살면서 젊은소가 늙은소를 구박하든 모습이 눈에 선하다. 천수를 다한 늙은 소는 지금 자기가 밭갈던 산아래서 이승의 끈을 놓고 영면하고 있다.
 

▲   최원균.이삼순 부부의 집 마당 소우리 옆에는 늙어 죽은 소의 모형이 오월의 푸른 하늘을 응시하고 있다. 모형소 뒤에 선 장승에는 영화속의 명언들을 새겨 놓았다.
"소 팔아 저 놈의 소새끼 때문에 내가 평생 고생이래"
"안 팔아 오백만원 전에는 택도 없어"

▲   최원균 할아버지가 잠시 일손을 놓고 담배 한 개비를 피워문다.

 ▲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워낭 소리 울리며, 할아버지와 늙은 소가 30년간 걸었던  '워낭소리 로드'

▲   최원균.이삼순  노부부의 40년 지기 친구는 늙어 죽었지만, 젊은 소가 수레의 멍애를 이어받아 노부부의 자가용 노릇를 톡톡히 해놓고 있다. 젊은 소도 벌써 송아지 두 마리를 낳아 영주장에 팔았다고 이삼순 할머니는 귀뜸 한다.

▲   워낭소리 촬영지인 밭에는 감자가 무성히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