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거미가 질 무렵 아궁이에 넉넉히 지핀 군불로 아랫목은 따끈따끈하다. 흙벽에 매달린 희미한 호롱불을 타고 시곗바늘을 수십년 되돌려 그때 그 시절의 추억 속으로 빠져든다.
필자의 이모작 인생의 둥지가 있는 산중엔  해방 당시 지은 것으로 갑이 지난 흙집이 한 채있다.
오랫동안 집을 비워 허름하지만  당시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어 안방과 부엌 사이엔 등창(燈窓)이 있고 부엌 귀퉁이엔 물두멍과 부엌에 딸린 도장방이 원래 그대로이다. 방이 네 개로 당시로는 꽤 규모가 큰 집이다.

이 옛집은 마을(40여 호)의 맨 위 산골에 자리하고 모양새가 소쿠리형이라 멀리서 보면 마을과 붙어 있지만 들어와 보면 깊은 산속에 들어 온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들머리 길에는 대나무,소나무,감나무,바위로 둘러싸여 흡사 산사에 들어가는 풍경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절터라고 말한다. 골의 삼면은 급경사를 이루고 대나무가 촘촘히 둘러싸 자연 울을 이룬다.

사진 자료로 쓸 자연을 가꾸어 사진이나 즐기며 이모작 인생을 소일할까 하여 현직 때 마련하여 둔 것으로  은퇴후 옛집옆 고목 감나무 아래 사진 연구실을 지어면서 옛집이 그다지 큰 소용은 없으나 버리기에는 아까운 계륵(鷄肋)이라, 철거냐 수리냐로 고민을 하다가 지난 가을에 수리를 하여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원래 흙집이라 황토로 다시 고래와 벽을 쌓고 바르니 그럴 듯한 황토방으로 단장되었다.

옛집을 온고당(溫故堂),연구실을 지신당(知新堂)이라 이름도 지었다.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서 새것을 안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에서 따온 말이다.

초등학교 초임시절 손떼 묻은 풍금과 기타도 들이고 옛 댓병에 석유도 받고 등잔에 호롱불을 켜니 시곗바늘을 한 50여 년 전으로 되돌린 듯한 분위기이다.
그리고 봉당엔 필자가 농삿일 때 신는 깜장 고무신을 벗어 놓으니 옛맛이 난다.이 방은 사랑방으로 쓸 요량이다.
필자는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일을 즐기는데  10여 년 전부터 그래픽,디자인에 푹 빠져 하루의 대부분을 연구실에서 나의 절친 포토샵이랑 일러스트레이트랑 지낸다. 그리고 짜투리 시간엔 텃밭 가꾸기로 하루해가 짧기만하다.

텃밭이 꽤 넓어 계곡가엔 감나무를   연구실 주변은 매화,살구,자두를 그리고 들머리길엔 은행,무화과랑 단감나무를 심었다. 양지녘은 채마밭으로 기타 여백엔 참나리,금낭화,초롱꽃,사랑초 등을 심어 세월이 흐르니 모두 제 몫을 한다.  이른 봄엔 매화랑 앵두,자두,살구꽃이 여름엔  금낭화랑 참나리꽃이 다투어 피어나 렌즈가 바쁘다. 요즘같은 만추는 사방이 감으로 붉게 물든다.

온고당을 수리 후 부터는 틈이 날 때마다 밤마다 사랑방을 찾아 옛 추억 속으로 빠져든다.
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온고당의 밤은 낭만적이다.

산골의 밤이 깊어지면  으스스 불어오는 골바람에 사각 되는 대숲과 댕그랑 댕그랑 우는 처마끝 풍경 소리가 정취를 더해 준다. 뒷산 탕건 봉의부엉이라도 구슬피 울어주면 그 시절 추억은 진하게 묻어난다.
요즘은 온고당 사랑방으로 발걸음이 잦아졌다. 들리는 것이라고는  바람 소리와 새소리뿐인 고즈넉한 흙방의 희미한 호롱불에는 유년시절의 아름다운 추억들이  가물대기 때문이다.

올 겨울 눈이라도 소복이 내리는 밤에는 호롱불 밝히고 새끼를 꼬면서 그 시절 추억 속으로 푹 빠져보고 싶다. 

"벼슬도 싫다만은 명예도 싫어 정든 땅 언덕위에 초가집 짓고 낮이면 밭에 나가 길쌈을 매고 밤이면 사랑방에 새끼 꼬면서 새들이 우는 속을 알아보련다..... "   는 유행가 가사처럼  새끼를 꼬면서 부엉이가 우는 속을 알아 보련다. 실제로 겨울이면 뒷산 탕건 봉에서 부엉이가 밤마다 운다. 필자는  2모작 인생을  자연과 친구되어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  온고당과 지신당이 그리는 가을 그림. 
온고당(溫故堂) 쪽  뒷산은 탕건봉이고 지신당(知新堂) 뒷산은 짱지비알이다.
탕건봉과 짱지비알이 이루는 곰냇골 계곡은 사철 물이 마르지 않고 숲이 짙어 산새들이 깃들기에 좋은 장소이다. 마을 주변엔 수수,콩 등을 기르고 따지 않는 감나무 등 먹거리가 많아 부엉이, 뻐꾸기, 꿩, 참새, 까치 등의 개체수가 많아 눈이라도 내리는 날이면 지신당 앞 감나무는 꿩과 직바구리 세상이다.

▲  서쪽 낭떠러지 탕건봉 등산로 대숲에서 내려다 본 온고당(왼쪽)과 지신당(오른쪽)의 가을 풍경

▲  추풍에 풍경 소리가 은은한 온고당의 한낮
작은 범종에 추를 달고 그 밑에 물고기모양 금속판을 매달아 바람부는 대로 흔들리며 은은한 소리가 나도록되어 있는 것으로  예로부터 선비의 시정(詩情)을 돋우고 나그네의 여정(旅情)을 달래주었으며, 불교에서는 수행자의 방일(放逸)이나 나태함을 깨우치는 역할을 한다. 

▲  대숲으로 싸인 온고당.
해방 당시 지은 것으로 60년이 넘었지만, 원형을 간직하고 있어 안방과 부엌 사이엔 등창(燈窓)이 있고 부엌 귀퉁이엔 물두멍과 부엌에 딸린 도장방이 원래 그대로이다. 방이 네 개로 당시엔 규모가 꽤 큰 집이다. 
필자가 이곳에 둥지를 튼지도 어언 10여년 .초기에 옛집 옆으로 마을이 보이는 고목 감나무 아래 연구동을 지어 살면서 옛집이 그다지 큰 소용은 없으나 버리기에는 아까운 계륵(鷄肋)이라, 철거냐 보수냐 고민 중에 지난 가을에 보수로 당시의 모습을 되찾았다. 가마솥을 걸고 아궁에 불을 지피니 불도 잘 들이고  방들이  따스롭다.
원래 흙집이라 황토로 다시 고래와 벽을 쌓고 바르니 흙 냄새가 진하다.  등에 호롱불을 밝히니 시곗바늘을 거꾸로 되돌린 듯 지난 1950년대의 정취가 흠뻑 묻으나 옛 추억을 맛보기에 그만이다.
뒷뜰 대숲이 사각대는 요즘같은 늦가을 밤이면 그 시절 추억이 진하게 묻어난다. 뒷산 탕건 봉에서 부엉이라도 울어주면 그 운치를 더해준다.  

▲  지신당과 텃밭
온고당이 농경문화라면 지신당은  정보화 시대를 구가하고 있는 곳이다. 산골에도 위성 티비, 인터넷,무인경비 시스템 등이  갖추어져 외부와 실시간으로 정보를 소통하고 있다. 참으로 세상 많이 변하였다.
IT문화에 싫증이나면  온고당 황토방에 군불을 지펴 흐미한 호롱불 아래서  그 시절 추억속으로 빠져들어 낭만에 젖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  김장무 수확 .  2009.11.18

▲  김장무 수확 .  2009.11.18

▲  가을걷이. 무청도 말리고

▲  온고당 봉당의 추억의 깜장고무신. 그때 그 시절  배 고팠든 보릿고개 세대들의 추억이 깃던 신발이다.
요즘도 필자는 텃밭을 가꿀 때는 깜장 고무신을 신는데 참으로 편리하다. 흙이 뭍으면 수도가에서 씻어 거꾸로 엎어두면 그만이다. 마루의 단감은 텃밭에서 따온 것인데 씨가 없고 매우 달다. 수령이 9년으로 사다리를 놓고 감을 따야할 정도로 잘 자라 해마다 풍성하게 달린다.

▲  텃밭 감수확

▲  가을 걷이.  감도 깎아 매어달고 무청도 햇볕에 말린다.

▲  가을 걷이.  감말랭이도 한 채반 만들다.

▲  온고당 황토방에는  낡은 세고비아 기타, 아리아 풍금, 등(燈)과 호롱불, 바둑판, 석유병,월간지 등  그 시절의 추억을 반추하기에 좋은 옛 물건들을 구비 하였다.

▲  사라지는 것들의 추억의 끈을 잡고...  온고당의 등, 호롱불 , 석유병,성광 성냥

▲  황토방에서 내다 본 온고당 뜰 . 온고당 뜰에는 산머루,산포도,석류 등 그 시절의 나무를 심었다.

▲  온고당 마루 처마끝에 매단 수수와 벌집
온고당은 사방이 대나무랑 매화나무에 둘러싸였고 뜰엔 참나리, 금낭화, 초롱꽃이 지천이라 봄 여름 가을에는 벌들이 많이 찾는다. 온고당 처마끝에는 벌들이 집을 지어 살아가는데 사람이 건들이지 않으면 절대로 먼저 쏘지 않는다.

▲  사라지는 것들의 하나인 향로 성냥으로 불씨를 사를 때마다 그 시절의  진한 추억의 편린이 벗겨진다.

▲  온고당부엌에 딸린 도장방.도장방은 음식을 보관하는 작은 방으로 결혼이나 환갑 등 큰일 때는 도장방에서 상차림을 하였다.

▲  온고당 부엌 뒷문으로 본 대나무숲

▲  온고당 뒷안의 대나무숲. 온고당은 따로 울이 없다. 빽빽한 대숲이 울이다. 삼복 더위때도 온고당 뒤안 대숲은 시원하여 좋은 피서지가 되기도 한다.

▲  온고당 뒷안의 대나무숲

▲  봄을 심다 (2009.11.10)   언제나 비가 오려나 기다림끝에 입동을 지나서야 천둥을 동반한 늦가을 비가 흠뻑 내려 메마른 대지가 촉촉하여 씨값이를 넣기에 좋다.때가 좀 늦었지만, 잡초를 뽑고 땅을 정지하여 걸음과 복합비료를 치고 보리를 심었다. 보릿고개란 말이 생겨날 정도로 보리는 배고팠던 그때 그 시절의 상징적인 작물로  당시는 들에도 산등성이도 보리천지였다.  배 부른 지금은 보리밭 보기가  귀하여 관광 작물로 뜨고 있지만...
삼동기간 텃밭을 맨땅으로 놀리기보다 보리를 심으면 겨우내 푸르고 청보리 이삭은 관상가치로도 훌륭하다.뿐 만 아니라 수확한 보리는 엿기름 재료로도 요긴하게 쓰인다.

▲  지난해 가을에 심은 청보리  (2009.5.11)  

▲  보리와 시금치 파종을 끝낸 텃밭 (2009.11.10)

▲  채소 창고 . 땅은 거짓이 없다. 가을 상추는 문 닫고 먹는다는 말처럼 귀하고 맛이 있는데, 지난여름 장마가 끝나고 어쭙잖게 파종한 상추가 잘 자라 가으내 식탁의 단골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