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700리 물길에 마지막 남은 주막 (낙동강하구엑코쎈터 게시자료)
주막(酒幕)은 예있는데 사공은 간곳이 없네........  
글.사진:정해유(영남일보사외편집위원)

낙동강 물길 700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경북 예천군 풍양면에서 삼강(三江)을 만난다. 내성천과 낙동강, 금천의 세 강줄기가 합쳐진다고 해서 삼강(三江)으로 불린다.
낙동강 700리 강줄기에 현존하는 마지막 주막이 이곳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 주막이다.
세월의 무게에 곧 넘어질듯한 흙집인 이 주막이 지금까지 낙동강변을 지키고 있다.
필자가 2003년 이맘때 쯤 찾았을 때, 이 시대의 마지막 주모라 불리는 유옥연(당시87세) 할머니의 건강한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오늘은 인적이 없다.
세간살이로 보아서는 이웃나들이를 가셨는지 ........... 당시는 아혼을 바라보는 나이가 믿기지 않게 정갈한 모습이었다.
그 옛날, 삼강 나루터는 김해에서 올라오는 소금배가 안동까지 가는 길에 뱃사람들이 쉬어가는 곳이었고, 문경새재를 넘어 서울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으로 뱃사람들로 시끌벅적 하였던 곳이다.
현대화의 물결에 소금배가 노젖던 낙동강엔 번듯한 삼강교가 놓여져 지금은 찾는이 없지만, 삼강주막은 오늘도 200살 된 보호수인 회화나무와 함께 쓸쓸이 낙동강변을 지키고 있다.
1960년대까지만 하여도 이곳 풍양면을 휘감아 도는 낙동강 나들목에는 언시뱃가, 강대비리, 말응나루 하풍나루, 삼강나루, 구담나루 등 크고 작은 여섯곳의 나루터에는 사공이 상주하고 간이 주막도 있었다.
그 중 삼강 나루터가 주요한 길목이어서 주변에는 주막이 네개나 있었단다. 당시는 나루를 건너다니던 이곳 면민들이 집집마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약간의 벼를 걷어서 뱃사공에게 뱃삯을 주었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나루에는 하나둘씩 다리가 놓여지면서 소금배가 올라오지 않고, 사람을 건네다 주던 나룻배마저 없어져 사공도 사라 졌다. 이시대에는 나루터가 오늘날의 여객선 터미널 구실을 하였기에 나루터와 관련된 노래나 영화가 그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 1965년도에 나룻터를 배경으로 뱃사공의 딸과 휴양차 서울에서 내려온 대학생과의 비극을 그린 '나루텃 처녀'란 영화나 '노들강변 봄버들 휘휘 늘어진 강변에다 무정한 세월 한허리를 칭칭 동여 매어 볼까 에헤요 봄버들도 못믿으리로다 '로 시작되는 '노들가변'이란 민요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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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9. 11 글.사진:정해유(영남일보사외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