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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국사적지 화상 花相


▲ 조문국사적지 작약평원의 오월.  2012.5.22 . CASIO EX-F1

국가지정 문화재급 사적지 고분군이 많지만, 5월이면 조문국사적지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
최근 복원된 조문국사적지는 신라, 백제, 가야 등의 고분군에 비해  생소하고 무명의 고분군이지만 이곳의 메리트(merit)는 화상(花相)이란 작약 꽃 때문이다.
오월이면 의성의 사곡면 금성면 일원은 함박웃음 지으며 나그네를 맞는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작약을 재배한 의성은 영남의 내륙으로 토심이 깊고, 겨울은 춥고, 여름에 더워 작약재배의 적지로 우리나라 작약 생상량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하고 약효도 좋기로 이름나 있다.

그래서인지 작약의 고장답게 의성에는 작약연구소(신물질연구소)도 있다.
의성 작약이 집단으로 재배되는 곳은 912번 지방도변의 상리리,옥산 감계리,사곡 신감 등으로 해마다 5월 중순에서 6월 초 사이 이 길을 지나는 나그네의 발길을 잡는다.

특히 사진발이 좋은 곳은 28번 국도 변 조문국사적지 작약평원이다.
관광지로 잘 다듬은 조문국사적지의 중앙에 넓게 자리 잡은 작약 꽃 평원에는 산책길과 쉼터가 있고, 주변은 푸른 초원, 노송, 고분군으로 둘러싸여 구도만 잘 잡으면 엽서 같은 그림이 찍히는 곳이라 사진애호가들이 즐겨 찾는다.

신물질연구소(작약연구소)나 사곡면 일원의 작약 꽃 사진발은 조문국사적지 작약평원보다 한수아래다.
2012.5.22 현재 조문국사적지의 작약평원의 작약은 80% 이상으로 이쁘게 피어 깨끗하고 색상이 곱지만,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나, 6월 초까지는 작약의 미모를 유지할 것 같다.

가족이나 연인, 푸른 초원, 고분군, 작약 그리고 파란 하늘 흰 구름을 요리조리 프레임에 잘 담으면 오월의 달력  그림이 찍히는 출사지로 강추 할 만한 곳이다.

작약은 일명 함박꽃이라고도 한다. 함박꽃 송이처럼 굵고 탐스럽게 내리는 눈을 함박눈이라 하고, 환하게 크게 웃는 웃음을 함박웃음 짓는다고 한다.
이같이 함박꽃은 굵고, 탑스러워 원예용으로 가꾸기도 하고 뿌리는 진통· 복통· 월경통· 빈혈· 타박상 등의 한약재로 쓰인다.
작약은 중국 진나라 때, 이미 화초로서 가꾸어져 꽃 세상의 재상인 "화상(花相)"이라 칭하였다.
"화왕(花王)"인 모란 다음으로 아름다운 꽃이라 하였다.
"화왕(花王)"인 모란(木壇)은 나무이고 함박꽃(작약 芍藥)은 풀(숙근초)이라는 점이 다르다.
화투장에 그려진 목단은 다른 나무와 마찬가지로 줄기가 땅 위에서 자라서 겨울에도 죽지 않고 남아 있지만, 작약은 겨울이 되면 땅 위의 줄기는 말라죽고 뿌리만 살아 이듬해 봄에 뿌리에서 새싹이 돋아 나온다.
모란과 작약의 또 하나 재미있는 점은 꽃이 피는 순서이다.
반드시 "화왕(花王)"인 모란이 진 후에야 비로소 "화상(花相)"인 작약이 피기 시작한다. 절대로 "화왕(花王)"인 모란보다 앞서 피지 않는다.

▲ 조문국사적지 작약평원의 작약꽃.2012.5.22 . CASIO EX-F1

▲ 조문국사적지 작약평원의 작약꽃.2012.5.22 . CASIO EX-F1

▲ 조문국사적지 작약평원의 작약꽃.2012.5.22 . CASIO EX-F1

▲ 조문국사적지 표지석.  2012.5.22 . CASIO EX-F1

조문국은 삼한시대 영남의 내륙 의성 금성면을 도읍지(都邑地)로 지금의 의성 땅을 지배한 고대 부족국가인 소국이다.
삼국사기에 신라 9대왕 벌휴 이사금이 서기 185년 2월에 파진찬 구도와 일길찬 구수혜로서 좌우군주로 삼아 조문국을 정벌하였다는 기록으로보아 조문국이 신라에 복속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900여 년 전의 일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조문국의 옛터는 현의 남쪽 25리에 있다. 지금은 조문리라 부른다"고 기록하고 있다.
조문국은 규모가 매우 큰 100여기 등 모두 260여기의 고분군(古墳群)이 남아 있는 점으로 미루어 최소한 몇 세기에 걸친 삼한의 초기부터 존재하던 부족국가라 추정할 수 있다.

 경북대의 조문국 고분군 발굴조사(1995~1996)에서 공작새 날개 모양의 금동관(좌측 사진), 나비모양의 관장식 등 당시의 화려했던 장신구들이 무더기로 발굴돼 국립중앙박물관등에 소장하고 있다.
21대 369년의 왕의 역사란 자료(의성 향토사학자 소장)에는 21명의 왕 이름과 재위연도, 재위기간, 주요 업적 등이 담겨 있다고 전해진다.

 

▲ 네비게이션 검색어:조문국.금성산고분군  주소:경북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 351

▲  조문국 주변 안내도

조문국사적지 방문자쎈터 2층 전망대에서 바라본 조문국 사적지내 경상북도  기념물  제128호 의성금성산고분군 (義城金城山古墳群) 전경. 이 고분군은 5∼6세기로 추정되며, 대리리<大里里>, 탑리리<塔里里>, 학미리<鶴尾里> 일원에 소재하며 200여기나 된다. 2012.5.22 . CASIO EX-F1

▲  국도 28번가 문익점 면작 기념비 안내.2012.5.22 . CASIO EX-F1

▲  문익점면작기념비(文益漸棉作記念碑) 옆의 기마상.2012.5.22 . CASIO EX-F1

▲ 조문국 시비.2012.5.22 . CASIO EX-F1

▲ 국보  제77호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 (義城 塔里里 五層石塔). 2012.5.22 . CASIO EX-F1

                                                                      경북 의성군  금성면 오층석탑길 5-3 (탑리) 소재

탑리리 마을에 세워져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5층 석탑이다. 낮은 1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으로,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올린 전탑(塼塔)양식과 목조건축의 수법을 동시에 보여주는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기단은 여러 개의 돌로 바닥을 깐 뒤, 목조건축을 본떠 가운데기둥과 모서리기둥 모두를 각각 다른 돌로 구성하였다. 탑신은 1층이 높으며 2층부터는 높이가 급격히 줄어드는 모습을 보이는데, 1층 몸돌에는 불상을 모시는 방인 감실(龕室)을 설치하였다.

지붕돌은 전탑에서 보이는 모습처럼 밑면 뿐만 아니라 윗면까지도 층을 이루고 있는데 윗면이 6단, 아랫면이 5단이다. 지붕돌은 네 귀퉁이가 살짝 들려있어 목조건축의 지붕 끝을 떠올리게 한다.
각 부분에서 목조건축의 양식을 응용하는 한편, 곳곳에서 전탑의 조성기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러한 독특한 특징으로 인해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국보 제30호)과 함께 통일신라 전기의 석탑양식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 국보  제77호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 (義城 塔里里 五層石塔).2012.5.22 . CASIO EX-F1

                                                                                                                          2012.5.23 글.사진 정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