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품송과 혼례를 치룬 준경묘 미인송 美人松

▲  준경묘를 찾는 길은 태백시나 동해시에서 38번 국도를 타고 삼척시 미로면에 들어서면 도로가에는 '영경묘 및 준경묘 입구’라는 표지판이 나온다. 준경묘 표지판을 따라 약 1.5km를 가면 활기리 마을이다.  드문드문 몇 채의 집이 들어 서 있는 작은 산촌이다. 준경묘 주차장마 입구에는 ‘준경묘 1.8km’라는 표지판을 또 세워 산으로 난 시멘트 포장길을 화살표로 가리키고 있다.

국가지정 사적 524호 삼척 준경묘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5대조 목조(이안사)의 아버지인 양무장군의 묘이다.
준경묘 일대는 울창한 금강송 원시림을 구경할 수 있는 산세가 수려한 곳이지만 접근성이 좋지 않아 아직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트레킹 코스도,인기 관광지도 아니다.
이곳의 낙락장송 금강송(황장목)은 경복궁 중수 때 자제로 쓰였고, 화재로 소실된 숭례문의 복원용으로 쓴 금강송 소나무를 베어낸(2008.11) 곳으로 유명하다.
준경묘의 소재인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 노동(盧洞)은 백두대간 가파른 400고지 능선을 올라야 하는 깊은 산에 있어 접근성이 어려워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백두 대간의 큰재, 댓재,두타산(1353)으로 이어지는 태산준령 준경묘 주변에는 대한민국 최고의 명품 소나무인 금강송(황장목) 원시림으로 남아 사진 인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대구권이나 수도권에서 준경묘나 영경묘를 찾으려면 도로 사정이 비교적 좋은 삼척시에서 38번 국도를 타고 태백방면으로 10여 분이면 미로면 하사전리 영경묘 이정표가 오른쪽으로 보인다. 영경묘는 준경묘에 보다 덜 알려졌지만, 이곳까지 왔으면 꼭 둘러볼 만하다.
영경묘는 하사전리 마을에서 200여m 거리 능선에 있어 잠시 오를 수 있는데 묘원 주변은 명품 금강송이 빼곡히 둘러쳐져 라이브 소나무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구도를 잡아 빛을 잘 요리하면 멋진 뮤럴벽지용 금강송 그림이 그려진다.

준경묘 금강송이 덩치가 크고 웅장하다면 영경묘 금강송은 여성묘 답게 예쁘고 아담한 소나무가 빼곡히 숲을 이루고 있다.
영경묘 입구에는 거북 우물이 있어 이곳을 찾는 나그네의 목을 추겨주기도 한다. 영경묘 제각과 비각에서 울창한 금강송 숲길을 따라 한 모롱이 돌면
바로 영경묘이다. 영경묘는 준경묘보다 지역이 좀 좁다. 묘 앞쪽에서  35mm렌즈로 묘역 전체를 잡기에 짧은거리로 앞쪽은 계곡 낭떠러지이다.

하사전리에서 100여 m 내려오면 오른쪽으로 준경묘 이정표가 보인다. 이정표를 따라 10여 리 작은 고갯길을 넘으면 두메 관광농원 간판이 보이고 왼쪽으로 준경묘.영경묘 재실 이정표가 나그네의 발길을 잡는다.

도로에서 300여 m 거리의 활기리 재실은 ㅁ자 기와집으로 솟을대문으로 되어 있고 제기(祭器)가 보관된 곳이다.
재실 바로 앞에는 '목조구거유지"라는 비와 비각이 있다.

다시 다리를 건너 두메 관광농원에서 좌회전하면 활기리 마을이다. 활기리 준경묘. 두타산 들머리 길에는 제법 큼직한 주차장과 화장실 그리고 쉼터,활기리 농산물 집하장이 있다. 여기서 백두 대간 노동리 준경묘까지는 공식 거리가 1.8km이지만 실제 걸어보면 10리보다 더 멀게 느껴지는 가파른 산길이다.
입구는 차량 출입을 통제하는 육중한 차단기가 굳게 잠겨있다.

준경묘,두타산의 진입로로 사용되는 임도(林道)는 활기리 준경묘 주차장에서 오르막길인 산등성이를 따라 길이 열렸는데, 초입에서 부터 줄곧 가파르게 이어지다 보니 얼마 올라가지 않아 숨이 차 오른다.

일반 관광지처럼 대들었다간 낭패를 볼수 있는 약 1km 시멘트로 덮인 두타산 들머리길인 마의 할딱고개가 가로막아 쉽게 준경묘의 속살을 허락치 않는다. 평소 운동을 게을리한 사람이나 노약자들은 할딱대며 2, 30분은 족히 트래킹을 해야하는 급경사 길이다.

들머리 초입부터 급경사를 이루어 사람잡는 깔딱고개란 이름값을 다단히 한다. 필자도 깔딱고개를 각오하고  장비는 차에 두고 삼각대에 카메라만 매달아 간편차람으로 오르는데 100걸음도 못걸어 숨은 목까지 차 오르고, 이마에는 땀이 맺힌다. 몇차례 쉬엄쉬엄 시멘트 포장로까지  고갯마루를 올라서니 여기서 준경묘까지 1km 이정표가 보인다.
여기서부터는 약간 내리막길이 되면서 가벼운 산보 길로 이어지는데, 삼림욕(森林浴)으로는 최적의 장소로 느껴진다.
6월초지만 오늘따라 볕이 좋아 날이 뜨겁다. 주차장에서 오른지  약 30~40 여분 가량의 시간이 소요되는 준경묘는 400고지가 넘는 백두대간의 조종산(祖宗山) 중턱에 묘가 있다.
묘소로 들어가는 길은 산이 높고 골이 깊어 오른쪽의 비탈 사면을 깎아 길을 내었는데, 왼쪽 길은 울창한 숲과 함께 깊은 계곡이 연이어 진다.

준경묘 일원은 모두가 쭉쭉빵빵 미인송이지만 그중 가장 잘 생긴 소나무룰 간택하여 속리산 정이품송을 신랑으로 맞아 혼례를 치룬 소나무가 있다.
준경묘 입구 오른쪽 작은 계단위에 있는데 초행길인 여행자는 길에 안내 표시가 없어 그냥 지나칠수 있다.
필화로는 그 잘 생긴 미인송 설명이 부족하여 실제 눈으로 보아야만 느낄수 있는 자태를 지닌 정이품송의 정부인다운 금강송이다.
이 나무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유부녀 소나무라고 알려져 준경묘를 찾는 관광객의 사랑을 받고 있다.

미인송을 지나면 늘씬한 자태의 금강송 사이로 홍살문, 제각, 비각 그리고 준경묘가 눈에 들어온다. 홍살문을 지나 제각 옆에는 거북 우물이 있어 목을 추길 수 있다.  이 곳에서 물을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라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물을 맛볼 수 있다는데 거북등에 놓인 그릇으로 한그릇 퍼 마시니 차고 물맛이 좋았다.
준경묘 주변 미인 금강송을 렌즈에 그리면서 묘역 뒤쪽에 이르러 잘생긴 금강송 그늘아래 앉으니 준경묘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풍수가들의 말처럼 준경묘터는 맹호출림
(猛虎出林)형국의 지형으로 호랑이가 숲에서 출현하는 모습이 연상되었다.

준경묘하면 백우금관(百牛金棺) 전설이 빠지면 안꼬없는 찐빵격이라 .......

태조 이성계의 고조부인 목조(穆租) 이안사(李安社)가 부친(이양무)상을 당하여 묘지를 구하려고 사방으로 해매다가 지금의 준경묘가 위치한 노동((盧洞))에 이르러 나무 밑에서 쉬고 있는데 한 도승이 지나다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두루 살펴 인적이 없음을 확인한 뒤 혼자 말로
 
"참 좋구나, 대지(大地)로다."하는 것이다.

이안사가 나무 밑에 앉아 있었으므로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 도승은 이처럼 탄성을 올리면서 계속하여

"그렇지만 개토제에 소 일백마리를 잡아 제사를 지내야 하고 관을 금으로 만든 것을 싸서 장사를 지내야 하겠다. 그러면 5대손 안에 왕자가 출생하여 기울어 가는 이 나라를 제압하고 창업 주가 될 명당이로다."

하는 말을 남기고 수 백보를 가더니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다.

자신의 귀를 의심한 이안사는 곧장 집으로 돌아와 생각에 골몰하였으나 가난한 살림살이에 소 백마리를 어디서 구하며, 금으로 만든 관은 더욱이 어디서도 구할 수가 없었다.
부친의 묏자리를 명당에 쓰고 싶은 마음은 가득하지만 형편상 어쩔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러나 지혜로운 이안사는 곰곰이 생각한 끝에 궁여지책을 찾아내게 되었다.
 
"그렇다."

손바닥을 친 이안사는 소 일백마리는 흰소 한 마리로 대신하고 금관은 귀리 짚이 황금색이니 이것으로 대신하면 될 것 같았다.
마침 처가에 흰 얼룩소가 있었는데, 흰 소를 한자로 쓰면 백우(白牛)이므로 숫자상 일백 백자와 발음이 통하게 되어 백우(百牛)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하여 부인과 의논을 하였다.
부인에게는 다른 말을 일체 하지 않고   "내일 밭갈이를 할 터이니 처가의 흰 소를 잠시 빌려 오시오" 라고만 하였다.
다음날 친정에 가서 흰소를 데리고 부인이 오자 이 소를  잡아서 제물로 사용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부친을 넣을 관에 씌울 금은 귀리짚으로 대신하였는데, 같은 황금색이므로 금관과 의미가 통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하여 1231년 부친의 장례를 치른 묘가 지금의 준경묘(濬慶墓)라고 전해지고 있다.

▲  임금이 태어날 길지로 알려진 백두 대간 두타산 노동(蘆洞), 지금의 준경묘 터에 이양무가 묻히고(고려 고종 18년.1231)  162년 후에 후손 이성계가 조선 왕조를 창업하였다는 명당인 사적524호 삼척 준경묘(濬慶墓)에는 제각(祭閣)과 비각(碑閣),홍살문 등 부속시설물
 

▲  백두 대간의 큰재, 댓재,두타산(1353)으로 이어지는 태산준령 준경묘 주변에는 대한민국 최고의 명품 소나무인 금강송(황장목) 원시림으로 남아 사진인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기도하다.

▲ 속리산 정이품송과 혼례소나무
삼척준경묘 금강송 미인송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유부녀 소나무라고 알려져 있다.
태백산맥을 타고 금강산에서 삼척,울진.봉화를 거쳐 영덕.청송에 걸쳐 자라는 금강송은 소나무의 한 품종으로 꼬불꼬불한 일반 소나무와는 달리 줄기가 곧바르고 마디가 길고 껍질이 유별나게 붉다. 이 소나무는 금강산의 이름을 따서 금강소나무(金剛松) 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금강송을 일명 춘양목(春陽木)이라고도 부른다.
금강송은  일반 소나무와 달리 결이 곱고 단단하며 켠 뒤에도 크게 굽거나 트지 않고 잘 썩지도 않아 예로부터 소나무 중에서 최고의 나무로 쳤다. 옛날에는 왕실의 건축자재나 ,관곽(棺槨) 제작에 사용하기 위한 황장목을 확보하기 위해 일정 지역을 봉산(封山)으로 지정한 황장봉산(黃腸封山) 제도가 실시되었다. 이 제도는 전국에 황장목이 있는 산을 봉산으로 지정하여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중앙 정부의 정치적인 의도와 함께 왕실에서 필요한 양질의 목재를 얻기 위해 시행되었다.  원주 구룡사 입구, 인제군 한계리, 영월군 황장골 울진 소광리 등에는 황장목을 보호하기위한 황장봉계표석이 존재한다.

▲ 준경묘 제각 옆에는 거북 우물이 있어 목을 추길 수 있다.  이 곳에서 물을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라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물을 맛볼 수 있다는데 거북등에 놓인 그릇으로 한그릇 퍼 마시니 차고 물맛이 좋았다.

▲  준경묘 일대는 울창한 금강송 원시림을 구경할수있는 산세가 수려한 곳이지만 접근성이 좋지 않아 아직까지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트레킹 코스도,인기 관광지도 아니다.
이곳의 낙락장송 금강송(황장목)은 경복궁 중수때 자제로 쓰였고, 화재로 소실된 숭례문의 복원용으로 쓴 금강송 소나무를 베어낸(2008.11) 곳으로 유명하다.

 

 

▲  영경묘 제각과 비각에서 울창한 금강송 숲길을 따라 한모롱이 돌면 바로 영경묘이다.

▲  준경묘 금강송이 등치가 크고 웅장하다면 영경묘 금강송은 여성묘답게 예쁘고 아담한 소나무가 빼곡히 숲을 이루고 있다.

▲  영경묘는 하사전리 마을에서 200 여m 거리 능선에 위치하여 잠시 오를수 있는데 묘원주변은 명품 금강송이 빼곡히 둘러쳐져 라이브 소나무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구도를 잡아 빛을 잘 요리하면 멋진 뮤럴벽지용 금강송 그림이 그려진다.

 

영▲  경묘 제각

▲  영경묘 입구에는 거북 우물이 있어 이곳을 찾는 나그네의 목을 추겨주기도한다.

                                                                                                       2013.6.5  정해유포토디자인연구실 . 사진.글 Freelancer  정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