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08.6.7
경상북도 국가지정 문화재 명승(名勝) 9

-  훌륭하고 이름난 경치로 알려진 국가지정 문화재 명승(名勝) 9곳 -

 




1. 명승 제6호 울진불영사계곡일원(蔚珍 佛影寺溪谷 一圓)  


 

  울진군 근남면 행곡리에서 서면 하원리 불영사에 이르는 계곡 일대로 불영사를 중심으로 15㎞의 계곡을 따라 그림같은 명소의 자연 경치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여러 모양의 바위와 낭떠러지가 많아서 특별한 이름을 붙인 장소가 30개 정도 있다. 구룡폭포 근처 금강소나무 숲 속에 불영사가 있는데, 이 절은 신라 진덕여왕 5년(651)에 의상대사가 세웠다고 전해지며, 조선 중기 목조 건물인 응진전이 보물 제730호로 지정되어 있다.
보기 드문 꼬리진달래와 백리향을 비롯해 560여 종류의 식물이 이 지역에서 서식하고 있다. 또한 학술조사를 통해 조류 11종, 어류 42종, 포유류 17종, 나비 30종, 거미류 94종이 살고 있음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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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명승 제11호 청송 주왕산주왕계곡일원(靑松周王山周王溪谷一圓)  


주왕산(周王山, 721m)은 태백산맥의 남단에 위치하며 그 주위에는 600m가 넘는 고봉이 12개나 솟아 있다. 암벽으로 둘러 싸인 산들이 병풍처럼 이어져 석병산이라고도 하며, 산세가 웅장하고 4계절의 경관이 수려하다.
주왕산 일원의 지질은 풍화와 침식에 대한 저항력이 강한 백악기 유천층군의 중성 내지 산성 화산암류로 되어 있다. 연꽃 모양을 한 연화봉과 만화봉, 주왕이 무기를 감추었다고 하는 무장굴(하식동), 신선이 놀았다고 하는 신선대와 선녀탕 그리고 제1, 제2, 제3 폭포 등은 경승지로서의 가치가 뛰어나다.
주왕산이란 이름은 신라시대에 주원왕이 임금의 자리를 버리고 수도하였다는 전설에서 호칭되었다고도 하고, 중국의 진나라에서 피신하여 온 주왕이 이 곳에 웅거하였다고 해서 불리워졌다고 하며, 산봉우리, 암굴마다 주왕의 전설이 얽혀 있다.

주왕산은 심산구곡을 이루고 있어 동·식물도 다종 다양하게 분포한다. 포유동물 46종, 조류 35종, 곤충 474종이고 식물이 393종이다. 특히 수단화, 회양목, 송이버섯, 천연이끼 등은 주왕산의 특산식물로 유명하다.

또한 청송지방에는 여러 산지에 산철쭉이 분포하고 있으나 주왕산의 것을 특별히 수달래(수단화(水丹化))라고 부르고 있다. 그 이유는 옛날 주왕이 이곳에서 신라군사와 싸우다 힘이 다해 마장군 형제의 화살에 맞아 잡히자 그의 피가 주왕굴에서 냇물에 섞여 계곡을 따라 붉게 흘러 내렸는데 그 이듬해부터 이 주왕산에는 이제까지 보지 못하던 꽃이 계곡과 내를 따라 피기 시작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 꽃을 주왕의 피가 꽃이 된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는 전설에 기인한다.

주왕산은 풍화와 침식에 대한 저항력이 강한 백악기 화산암류로 구성되어 있어 뛰어난 자연경관을 갖고 있으며 산봉우리마다 중국의 진나라에서 피신한 주왕의 전설이 얽혀 있는 등 명승으로서의 지정가치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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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명승 제16호 예천회룡포(醴泉回龍浦)  

 

예천 회룡포는 내성천 및 낙동강 상류일대에 나타나는 수많은 감입곡류 지형이 가장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곳으로 하천(맑은 물, 백사장)과 그 외부를 둘러싸고 있는 가파른 경사의 산악지형 그리고 농경지와 마을이 어우러져 비경을 연출하는 곳으로 경관적(예술적) 가치가 뛰어나다.
또한 하성단구, 하성도, 포인트바, 범람원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침식 및 퇴적지형 연구의 기초자료로서 학술적 가치가 크며 하천을 둘러싸고 있는 비룡산에는 신라시대 고찰인 장안사 등의 문화유적이 잘 보존되고 있어 명승적 가치를 높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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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명승 제19호  예천선몽대일원(醴泉仙夢臺一圓)  


선몽대 일원은 예천읍지에 수록된 약 450여년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곳으로, 선몽대와 선몽대 숲 그리고 그 앞을 흐르는 내성천과 하천 앞에 넓게 펼쳐진 백사장이 함께 어우러져 한국의 전통적 산수미를 보여주는 예천 내성천 유역의 대표적 경승지의 하나이다.
선몽대는 퇴계 이황의 종손이며 문하생인 우암(遇巖) 이열도(1538~1591) 공이 1563년 창건한 정자로서 “선몽대”의 대호 세글자는 퇴계 선생의 친필로 알려져 있으며, 정자 내에는 당대의 석학인 퇴계 이황, 약포 정탁, 서애 류성룡, 청음 김상헌, 한음 이덕형, 학봉 김성일 등의 친필시가 목판에 새겨져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는 곳으로 선인들의 유교적 전통공간으로서 역사적 의미가 큰 곳이다.
선몽대 숲은 선몽대와 선몽대 뒤편의 백송리 마을을 보호하기 위하여 조성된 우리 선조들의 풍수사상이 깃든 전통적인 마을 숲으로 100~200여년 수령의 소나무 노거수와 은행나무, 버드나무, 향나무 등이 함께 자라고 있으며, 수해방비림, 방풍림, 수구막이숲(홍수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거나 풍수상 단점을 보완할 목적으로 물길 등을 막기 위해 조성한 숲) 및 비보림(풍수상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숲)의 역할을 해 온 것으로 보인다.
선몽대 일대는 기러기가 내성천에서 풍부한 먹이를 먹고 백사장에서 한가로이 쉬는 형이라고 하여 풍수상 평사낙안형(平沙落雁形)이라 전하고 있는데, 예천에서 안동 방향으로 흐르는 내성천의 강물과 십리에 이른다는 넓게 펼쳐진 백사장이 역사적 유래가 깊은 선몽대와 숲과 함께 어우러져 빼어난 경관을 자아내고 있는 곳으로 경관적·역사적 가치가 큰 경승지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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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명승 제23호 봉화청량산(奉化 淸凉山)  



「봉화 청량산」은 낙동강 가에 우뚝이 자리 잡은 명산으로 자연경관이 수려하여 예로부터 소금강이라고 전하여 왔으며, 조선후기 실학자 이중환의「택리지」에서 보면 백두대간의 8개 명산 외에 대간을 벗어난 4대 명산 중 하나로 평가되어 온 한국의 대표적 명산이다.
해발 800m 내외에 12개 암봉(六六峰 : 장인봉, 선학봉, 자란봉, 자소봉, 탁필봉, 연적봉, 연화봉, 향로봉, 경일봉, 탁립봉, 금탑봉, 축융봉)과 청량산 12대(독서대, 어풍대, 밀성대, 풍혈대, 학소대, 금강대, 원효대, 반야대, 만월대, 자비대, 청풍대, 송풍대, 의상대), 청량산 8굴(김생굴, 금강굴, 원효굴, 의상굴, 반야굴, 방장굴, 고운굴, 감생굴) 및 청량산 4우물(총명수, 청량약수, 감로수, 김생폭)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보여준다.

청량산에는 중생대 백악기에 퇴적된 역암, 사암, 이암층이 융기·풍화·차별침식 등의 작용으로 다양한 지형이 나타나고 있는데, 봉우리들은 모두 역암으로 이루어져 저각도 수평층리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V자곡이 발달된 계곡 주변엔 소규모의 수직·수평절리에 의한 풍화혈과 타모니 등이 발달하여 특별한 경관을 보여줄 뿐 아니라 학술적 가치 또한 뛰어나다.

또한, 고려말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 몽진 시 머무르며 축조하였다는 산성 흔적과 마을 주민들이 공민왕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사당이 남아 있으며, 원효, 의상, 김생, 최치원, 이황 등 역사적 인물과 관련된 장소와 설화들이 많이 남아 있는 등 이 곳은 불교의 도량으로, 그리고 16세기 사림파의 등장 이후 산수경치를 사랑하고 유교와 퇴계를 숭상하는 선비들의 유교적 순례지가 되어 왔다.

「봉화 청량산」은 이렇듯 역사적 유래가 깊은 명산일 뿐 아니라 공민왕을 기리는 당제가 아직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등 민속적 가치가 크고, 자연경관이 매우 뛰어난 명승지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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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명승 제26호 안동백운정및개호송숲일원(安東 白雲亭 및 開湖松 숲 一圓)  

『안동 백운정 및 개호송 숲 일원』은 한국의 대표적 씨족 촌락인 내앞마을과 개호송, 강 건너편의 백운정 등이 낙동강의 제1지류인 반변천(半邊川)과 어우러져 뛰어난 절경을 자아내는 경승지이다.

“백운정(白雲亭,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75호)”은 귀봉 김수일(1528~1583)이 그의 아버지 청계 김진으로부터 땅을 받아 조선 선조 1년(1568년)에 세운 정자로 반변천 강 언덕 위에서 내앞마을과 개호송 숲이 한폭의 경관으로 조망되는 지점에 위치하여 전통적 유교문화 경관을 체험할 수 있는 탁월한 조망점 역할을 하고 있는 정자이다.

“내앞마을”은 의성김씨 씨족 촌락 마을로 의성김씨 종택을 비롯하여 보물 2점과 고택이 잘 보전되어 있으며, <택리지>에 전통 씨족 촌락으로 소개되어 있고, 약300년 전에 제작된 이종악의 <허주산부군수화첩(虛舟山府君水畵帖/半邊川十二景)>에 ‘운정풍범(雲亭風帆)’이라는 제목으로 마을 풍광 그림이 남아 있는 등 500여년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마을이다.

“개호송(開湖松) 숲”은 통례공 만근(通禮公 萬謹)이 조선 성종 무렵에 내앞마을 앞 수구(水口)가 허술함을 메우기 위해 조성한 것으로 임진왜란 직후인 선조 38년(1605년) 대홍수 때 유실된 것을 운천 김용 선생의 발의로 다시 조성한 숲이다. 의성김씨 문중에서는 개호금송완의(開湖禁松完議)라는 문중 규약을 만들어 이 숲을 보호해 왔다고 전한다. 이 숲은 내앞마을의 농경지를 보호하고 바람과 물의 장애요인을 제거하기 위한 수구막이 숲이며, 완만한 모래사장에 달빛이 비추는 ‘완사명월형(浣沙明月形)’ 혹은 소가 누워 풀을 되새김하는 ‘와우형(蝸牛形)’으로 알려져 있는 내앞마을 풍수형국의 모자람을 채우기 위한 비보림(裨補林) 역할을 위하여 인위적으로 조성되어 보호하여 온 오랜 역사의 마을 숲이다. 『안동 백운정 및 개호송 숲 일원』은 강 건너편 백운정과 반변천 수중에 조성되어 있는 반월형 섬 위의 소나무 숲인 개호송 숲, 강가를 따라 조성된 내앞마을, 반변천과 강가의 기암과 단애, 천변 숲이 한 눈에 펼쳐져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자아낼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대표적인 씨족 촌락의 모습을 보여주는 역사적 가치가 큰 명승지이다.

 

7.명승 제30호  죽령옛길(竹嶺 옛길)  



『죽령 옛길』은 <삼국사기>에 ‘신라 아달라왕 5년(서기 158년) 3월에 비로서 죽령길이 열리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동국여지승람>에 ’아달라왕 5년에 죽죽이 죽령길을 개척하다 지쳐서 순사했고 고개마루에는 죽죽을 제사지내는 사당이 있다‘고 전해지는 오랜 역사의 옛길이다.
죽령 지역은 삼국시대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 지역으로 오랜 기간 고구려와 신라의 영토 분쟁지역이었는데, 신라 진흥왕 12년(서기 551년)에 신라가 백제와 연합하여 죽령이북 열 고을을 탈취한 기록과, 그 40년 뒤인 영양왕 1년(서기 590년)에 고구려 명장 온달(溫達)장군이 자청하여 군사를 이끌고 나가면서 “죽령 이북의 잃은 땅을 회복하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한 기록 등이 <삼국사기>에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그 당시 얼마나 중요한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

소백산국립공원 내에 위치하며 영주와 단양을 연결하던 옛길로 옛길을 따라 흐르는 계곡과, 길게 늘어져 있는 수목 터널이 주변에 펼쳐지는 소백산 주요 능선 등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보여주고 있는 명승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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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명승 제31호 문경토끼비리(문경토끼비리)  

『문경 토끼비리』는 석현성 진남문에서 오정산과 영강으로 이어지는 산 경사면에 개설된 천도(遷道 : 하천변의 절벽을 파내고 건설한 길)로 영남대로 옛길 중 가장 험난한 길로 알려져 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고려태조 왕건이 남쪽으로 진군 시 이곳에 이르러 길이 없어졌는데 마침 토끼가 벼랑을 따라 달아나면서 길을 열어주어 ‘토천(兎遷)’이라 부른데서 유래한다고 전한다.

비리’란 ‘벼루’의 사투리로 강이나 바닷가의 위험한 낭떠러지를 말하며, 이곳 토끼비리는 문경 가은에서 내려오는 영강이 문경새재에서 내려오는 조령천과 합류하는 곳에서부터 산간 협곡을 S자 모양으로 파고 흐르면서 동쪽 산지를 침식하여 만든 벼랑에 형성된 길이다. 돌벼랑을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파서 만든 구불구불한 길이 6, 7리 나있는데 겨우 한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좁고 험하다.
토끼비리는 길에서 내려다보이는 영강과 절벽부, 맞은편 마을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조망 경관을 형성하고 있으며, 옛길의 중간중간에 주막거리와 성황당, 2그루의 당나무 등이 남아 있어 다양한 옛길 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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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명승 제32호 문경새재


『문경새재』는 조선 태종 14년(1414년) 개통된 관도로 영남지방과 기호지방을 잇는 영남대로 중 가장 유명하며 조선시대 옛길을 대표한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초점(草岾)’으로, <동국여지승람>에는 ‘조령(鳥嶺)’으로 기록된 길로 조선시대 영남도로에서 충청도(한강유역권)와 경상도(낙동강유역권)를 가르는 백두대간을 넘는 주도로의 역할을 했다. 문경새재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관도(벼슬길)로 제1관문 주흘관, 제2관문 조령관, 제3관문 조곡관 등 3개의 관문과 원(院)터 등 주요 관방시설과 정자와 주막 터, 성황당과 각종 비석 등이 옛길을 따라 잘 남아 있고, 경상도 선비들의 과거길로서 수많은 설화가 내려오고 있는 등 역사적, 민속적 가치가 큰 옛길이다.

또한 문경새재가 위치한 주흘산, 조령산의 다양하고 아름다운 식생 경관과 옛길 주변의 계곡과 폭포, 수림터널 등 자연경관이 아름다워 경관 가치가 뛰어나며, 문경시의 ‘옛길 걷기 체험“, ”과거길 재현“ 등 옛길과 관련한 다양한 체험 행사가 매년 개최되고 있어 현대인들이 조선시대 옛길 문화 및 선비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훌륭한 옛길 자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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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포라이터 정해유 /  자료 글 참조: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