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적 제182호  신라 선덕여왕릉(新羅善德女王陵) 전경

 

사적 제182호  신라 선덕여왕릉(新羅善德女王陵)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동  산 79-2

신라 26대 진평왕이 아들이 없이 죽자 장녀인 덕만공주를 화백회의(和白會議)에서 추대하여 왕위에 오른 분이 신라 27대( 632∼647) 선덕여왕이다.
반만년 우리 역사상 최초의 여성 임금인 선덕여왕은  최초의 통일을 이룬 김유신과 김춘추를 발탁, 좌우로 포진하여 통일의 기반을 쌓고  첨성대 축조와 분황사 창건, 황룡사 9층목탑 건립 등 찬란한 신라문화를 꽃피운 여성 임금이다.
 최근  MBC드라마 ‘선덕여왕’이 인기리에 방영되면서 죽은지 1362년만에 환생하여  2009년의 월화의 밤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드라마가 인기를 더해 가면서 경주시 보문동  산 79-2 번지 사적 제182호  신라 선덕여왕릉(新羅善德女王陵)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
 남산 중턱의 송림에 쌓인 고즈넉한 선덕여왕릉(新羅善德女王陵)은 접근성이 좋지 않아 방문자가 드문곳이다.
초행길은 들머리길 찾기도 쉽지 않고  겨우 차량 한 대가 지날 정도의 협로로 중간에서 경운기나 차량을 만나면 난처해 진다.

대구나 서울 등지에서 선덕여왕릉(新羅善德女王陵) 가는 길은 인왕동 4거리에서 울산 방향  배반동 삼거리를 조금 지나  U턴하여 신문왕릉을 지나 조금가면 오른쪽 길가에  아주 작은 선덕여왕릉 안내석이 서있다.
주의를 기울리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 있다. 이곳에서  바로 집입하면 사천왕사
(四天王寺) 발굴지이다. 발굴지 앞으로 길이 나 있는데 초행자는 이 길로 가면 맞는가?  할 정도로 길이 좁아 의아심이 든다.
한 모롱이를 돌면 동해남부선 철로밑 작은 도랑을 지나면 바로 두 갈래길이 나온다 . 곧장가면 중마을이고  왼쪽의 작은 다리를 건너는 길이 왕릉길이다.

 좁은 길을 조금 오르면 선덕여왕릉 이정표가 보인다.
이정표를 따라 우회전 솔숲 언덕길을 오르면 남산과 선덕여왕릉 이정표가  서 있다.  여기까지 차도가 열려져 있고 주차장이 없어 요령껏 숲길 공간에 주차하여야 한다. 입구 좌측엔 작은 암자가 있는데 암자 들머리길에서 차를 돌릴 수 있다.

이정표를 따라 천연 솔술길을 한 5백 여m 따라 오르면 솔숲 사이로 여왕능이 보인다.   여왕능을 둘러 본 사람들이  느끼는 공통점.
" 반만년 우리 역사상 최초의 여성임금의 대접이 소흘하다"점이다.  
서울에서 왔다는 중년 부부 왈, " 길이 이게 뭔교, 내려 갈 때 차 만나면 어짜지. 주차장도 없고 화장실도 ...."
필자도 내려 갈길이 걱정이 좀 되었다.  올적에 철교 밑 도랑에서 반대편 차를 만나 피해주느라 진땀을 뺏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네 숲에도 서있는 간이 화장실 하나 없어 남자들은 적당히 생리를 처리할 수 있지만, 여서들은 꼼짝없이 참아야 될 판이다.
동시대를 살았던 김유신 장군이나 김춘추 무열왕능은  크고 화려하며 편의시설이 잘 갖춘 것과는 달리 선덕영왕의 능은 너무나 초라하였다.

밑둘레 74m, 높이 6.8m, 지름 24m의 여왕의 능은 둥글게 흙을 쌓아 봉분을 만들고 봉분을 보호하기위한 2~3단의 자연석축을 쌓았다.
 십이지신상둘래석으로 꾸민 김유신묘와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   대구나 서울 등지에서 선덕여왕릉(新羅善德女王陵) 가는 길은 인왕동 4거리에서 울산 방향  배반동 삼거리를 조금 지나  U턴하여 신문왕릉을 지나 조금가면 오른쪽 길가에  아주 작은 선덕여왕릉 안내석이 서있다.주의를 기울리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 있다. 이곳에서  바로 집입하면 사천왕사(四天王寺) 발굴지이다. 발굴지 앞으로 길이 나 있는데 초행자는 이 길로 가면 맞는가?  할 정도로 길이 좁아 의아심이 든다.
한 모롱이를 돌면 동해남부선 철로밑 작은 도랑을 지나면 바로 두 갈래길이 나온다 . 곧장가면 중마을이고  왼쪽의 작은 다리를 건너는 길이 왕릉길이다.

▲   사적 제182호  신라 선덕여왕릉(新羅善德女王陵) 이정표

여왕능으로가는  솔술길

 

▲   사적 제182호  신라 선덕여왕릉(新羅善德女王陵) 상석

2009.8.15 글.그림 정해유포토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