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디카여행 겨울 청량사
淸凉寺 그윽한 풍경 소리에 세속의 떼를 뭍다.



▲  금탑봉,삼각우송,오층탑이 그려내는 겨울청량사

    산소같이 맑은 청량산청량사(淸凉寺)는 유리보전이 있는 내청량과 응진전이 있는 외청량으로 나뉘는데, 立石입석에서 응진전으로 올라 유리보전으로 내려와야 청량산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처음 청량산을 찾는 산객들은 일반적으로 청량사 정문인 팔각정에서 시작되는 들머리길을 오르는데 이 길은 가파르고 시멘트 포장 계곡이라 주위 풍경이 별로이다.



▲  외청량 은진전 들머리인 입석(立石)

팔각정에서 조금 더 오르면 立石입석에 닿는다. 그 곳에는 청량산도립공원안내도가 세워져 있고  왼쪽이 응진전 들머리이다.
응진전 이정표를 따라 가파른 오르막을 숲길을  오르면 고도가 높아질수록 내려다 보는 풍광이 그림같이 펼쳐진다. 시름시름 올라도 3, 40분이면 응진전에 닿는다.

 ▲  외청량 금탑봉 연꽃잎에 포근히 싸인 겨울 응진전은 고즈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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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 노국공주가 16나한상을 모시고 기도 정진한 곳으로 알려진 응진전 불상

▲  외청량 금탑봉 연꽃잎에 포근히 싸인 가을 응진전은 한폭의 그림이다.


가파른 험로를 올라 왼쪽으로 굽어들면 소나무 숲으로 가려진 응진전이 시야에 들어 온다.
이곳이 응진전을 렌즈로 그리기에 가장 좋은 위치이다.
초점거리 200mm화각이면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다.응진전 못미쳐 길옆에 옹기샘이 있는데  한조롱 마시면 등산에 가뿐 숨이 가실것이다.
응진전 앞에 서면 금탑봉 위용에 절로 발길을 멈춘다. 나한기도 도량인 청량사
應眞殿응진전은 원효대사가 수도를 위해 머물렀던 암자로 금탑봉이라는 아름다운 암석 절벽에 매달린듯 놓여 있다.
 응진전 뜰아래로는 천길 낭떠러지.  
금탑봉은 바위가 마치 9층으로 이뤄진 塔탑모양으로 층마다 소나무 등이 테를 두른듯 기암괴석에 뿌리를 내려 그 풍경이 가관이다.
특히 이곳은 고려말 노국공주가 16나한상을 모시고 기도 정진한 곳으로 응진전 옆에는 노국공주의 자취가  글귀로 새겨져 있다. 


 ▲  문장가 최치원이 물을 먹고 聰明총명하여 졌다는 聰明水총명수가 금탑봉 바위틈에 있다.

응진전에서 유리보전으로 내려가는 길목의 큰 바위틈에 聰明水총명수라는 샘이 있는데, 이 샘은 신라의 문장가 최치원이 어릴적 이 물을 먹고 聰明총명하여 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지금은 오염이 심하여 마실수가 없는 전설속의 明水명수이다.

총명수를 지나 오솔길을 조금 가면
어풍대(御風臺)다. 어풍대 바위에 올라 청량산을 바라보면 청량사와 청량산의 기묘한 조화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육육봉(12봉우리/장인봉, 선학봉, 자란봉, 자소봉, 탁필봉, 연적봉, 연화봉, 향로봉, 경일봉, 금탑봉, 자소봉, 탁필봉)이 연꽃잎처럼 둘러싸고 그 가운데 꽃술 자리에 천년고찰 청량사가 자리하여 ‘산은 연꽃이고, 절집은 꽃술’이다.

▲  청량사를 연꽃잎으로 둘러싼 육육봉 12봉우리중의 하나인 卓筆峰 탁필봉

사진을 목적으로한 여행이라면 청량사를 그려내기에 이곳만한 촬영의 명당자리도 없다.
망원렌즈로 카메라만 옆으로 옆으로 조금씩만 돌리면 청량산 육육봉, 유리보전, 오층탑,그리고 슬픈 전설이 전해지는 잘생긴  삼각우송 등 전경을 맛나게 잡을 수도 있다.
청량사는 급경사지라 경내에서는 전경을 잡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어풍대 바위는 금탑봉 허리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라  안전에 주의를 요한다.

마음껏 셔터를 눌러 촬영을 즐기다가 급경사 산길이 끝나는 지점에 산꾼의 집과 청량정사가 자리하고 있다. 여기서 부터가 청량사 경내이다.


▲  유형문화재 제 47호인 琉璃寶殿유리보전에는 공민왕의 친필 "琉璃寶殿유리보전" 현판이 걸려 있고, 종이로 만든 지불이 모셔진 약사기도 도량이다.



▲  절집,삼각우송,금탑봉이 어울린 겨울 청량사 풍경

 ▲  유형문화재 제 47호인 琉璃寶殿유리보전의 가을  

내청량의  볼거리는 三角牛松삼각우송과  琉璃寶殿유리보전(유형문화재 제 47호)이다.
12기암 봉우리가 연꽃처럼 둘러쳐진 꽃술 자리 연화봉 기슭   한 가운데에 자리잡은 천년고찰 청량사는  이름 그대로 청량함과 고귀함을 간직한 한폭의 산수화를 그린 듯 하다.
청량사는 신라 문무왕 3년(663년)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송광사 16국사의 끝 스님인 법장 고봉선사(1351-1426)에 의해 중창된 고찰이다.
창건당시 승당등 33개의 부속 건물을 갖추었던 대사찰로 봉우리 마다 자리잡은 암자에서는 스님들의 독경소리가 청량산을 가득 메웠다고 한다.


하지만 조선시대 불교를 억압하는 주자학자들에 의해 절은 피폐하게 되어 현재는 청량사 유리보전과 응진전만 남아있다.  
유형문화재 제 47호인
琉璃寶殿유리보전에는 공민왕의 친필 "琉璃寶殿유리보전" 현판이 걸려 있고, 종이로 만든 지불이 모셔져 있다.
이곳에 모셔진 약사여래불은 특이하게도 종이를 녹여 만든 귀중한 지불인데, 지극 정성으로 기원하면 병이 치유되고 소원 성취에 영험이 있는 약사기도 도량으로 알려지고 있다. 

▲  유리보전 앞은 청량사에서 가장 경관이 좋은 곳. 산으로 둘러싸인 청량사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유리보전 앞 낭떠러지 바위가에는 "三角
牛松삼각우송"이라 불려지는 잘 생긴 소나무 한그루가 그앞의 5층탑과 건너편 축륭봉,좌측의 금탑봉과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을 그린다.

 "三角
牛松삼각우송"에는 청량사 창건시 소와 관련된 애달픈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원효 대사가 청량사 창건을 위해 진력을 쏟고 있을 때 하루는 사하촌(寺下村)에 내려가게 되었다.
논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논에서 일을 하는 농부를 만나게 되었는데 마침 농부가 뿔이 셋이나 달린 소를 데리고 논을 갈고 있었다.
하지만 이 뿔 셋 달린 소는 도대체 농부의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날뛰고 있었다.
이에 원효 대사가 농부에게 이 소를 시주하여 줄 것을 권유했더니 농부는 흔쾌히 이 뿔 셋 달린 소를 시주했다.
이에 원효 대사는 소를 데리고 돌아왔는데 신기하게도 이 소는 절에 온 후 고분고분해지더니 청량사를 짓는 데 필요한 재목이며 여러가지 물건들을 밤낮없이 운반하더니 준공을 하루 남겨 놓고 생(生)을 마쳤는데 이 소는 '지장보살'의 화신이었던 것이다.
원효 스님은 이 소를 지금의 삼각우총 자리에 묻었는데 그곳에서 가지가 셋인 소나무가 자라나 후세 사람들이 이 소나무를 '三角
牛松삼각우송', 이 소의 무덤을 '三角牛塚삼각우총'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  신라의 명필 김생이 10년간 글공부하던 김생굴

청량사 오른쪽 봉우리의 김생굴은 신라의 명필
김생이 10년간 글공부하던 곳으로, 김생이 9년 공부한 후 하산하던 김생에게 부족함을 일깨워줘 10년을 채워 공부하게 만들었다는 청량봉녀의 전설이 전한다. 별 볼 것은 없지만 응진전에서 청량사로 오는 길에 잠시 들러보 는 것도 좋다.
퇴계 이황은 청량산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호를 ‘청량산인’으로 짓고 벼슬 후 이 산에 머물며 후학을 가르쳤다. 그 장소가 오산당(吾山堂)이다.
그리고 청량사 남쪽의 축융봉엔 공민왕이 1361년에 홍건적의 침입을 피해 쌓은 청량산성과 공민왕이 은신한 공민왕당 등 많은 역사적 유적지가 있다.
유리보전 언덕 아래에는 사찰 전통 다원(茶園)인 안심당(安心堂)이 있어 차를 마시며 산행에 지친 몸을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  

▲  고즈넉한 겨울 청량사 전경

▲  오색단풍에 뭍힌 가을 청량사

 ▲  유리보전에 모셔진 약사여래불은 종이를 녹여 만든 귀중한 지불인데, 지극 정성으로 기원하면 병이 치유되고 소원 성취에 영험이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  유리보전 언덕 아래의 사찰 전통 다원(茶園)인 안심당(安心堂)

 

 

 

⊙ 청량사 찾아가는 길

○ 대구(
국도): 대구→영천→노고재→현서(구산)→68번 지방도→현동(도평)→31번 국도 →삼자현 고개→청송→진보→월전→31번 국도→도계→918번 지방도→남면 좌회전(청량사 이정표)→청량사 입석대

○ 대구(
고속도로) : 중앙고속도로 서안동IC→34번 국도→안동→35번 국도→도산서원→청량사

○ 수도권:중앙고속도로 풍기IC→5번 국도→영주→36번 국도→봉화→918번 지방도→봉성→명호→35번 국도→
청량산.

⊙ 주변 볼거리:도산서원,안동호 빙어 잡이,월영교,원이엄마 아가페상

2007.1.17 글.사진 영남일보사외편집위원.포토다지인연구실장 정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