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CC movie   디카 에쎄이 깊어가는 가을여행 ...만추 임하호반 드라이브

 

   깊어가는  가을은  이제 겨울로 계절의 바통을 넘기려나 보다. 잎을 다 털어 버린 감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린 까치밥과 찬 바람에 바스락거리는 낙엽마저 흔적을 감추면 이 가을도 끝나나 보다.
곱던 단풍은 가고 없지만, 만추의 청명한 하늘과  찬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따라 낭만적인 여행을 하기에 좋은 때로 주말이면 건 도심을 벗어나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계절이기도하다.
이런 계절에 딱인 드라이브 코스를 달려보자.
 오늘 소개하고자하는 나들이코스는 임하호반길인데 일반적으로 임하댐하면 34번국도 국도변의 별로 보잘 것 없는 외곽을 연상하는데 임하호의 아름다움은 안동시 길안면
천연기념물 175호 용계은행나무에서 임동면 박곡리 지례예술촌까지의 이십오리(약 9km) 호반길에 속살을 들어 낸다.
속칭 용계은행나무 순환로인 와룡산 고갯길은 아직까지 흙길로 임하호를 따라 울창한 숲을 이룬다.
이 고갯길은 지역 사람들만 넘나드는 산길로 접근성이 좋치않아 태고적 그대로의 자연을 간직한 인간의 떼가 덜 뭍은 곳이다. 지금  이 고갯길은 확장 공사가 진행중인데 차량 통행은 가능하다.

들머리는 34번국도상의 가랫재 휴게소에서 지례예술촌으로 진입로와  길안과 청송을 동서로 이어주는 914번 지방도상의 구수1리이다.
대구 출발이면 35번 국도를 타야하므로 길안 구수마을에서 용계쪽으로 조금 달리면 옛적 산업시대의 농촌 모습을 간직한 자연부락을 지나다 보면 임하호 용계은행나무에 닿는다.

천연기념물 175호 용계은행나무는 원래 용계초등학교 운동장에서   700여년을 자라다가, 17년 전 임하댐의 건설로 수몰 위기에 처하자 각계의 노력으로 되살린 천년기념물이다.
1990년부터 1994년까지 3년 5개월에 걸쳐 댐 만수시에도 안전한 높이로 제자리에서 흙을 15m 북돋아 산 형태(假山)를 만든 뒤 그 자리에서 15m 수직으로  올려 심은 천년기념물로 20억원이 소요된 소중한 문화재이다.

조선 선조때 훈련대장이었던 탁순창(卓順昌)이 서울에서 내려와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은행나무계(契)를 만들어 이 나무를 보호하고, 매년 7월에 나무 밑에 모여 서로의 친목을 도모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용계마을은 수몰로 사라졌지만, 탁(卓)씨의 후손들은 해마다 나무에 제사를 드리며 보호하고 있다고 한다.
 용계 은행나무는 나라에 변고가 날때마다 울어서 예언(豫言)해 주는 신목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한일합방, 6.25사변(事變),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서거(逝去) 때 울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병마(病魔)가 퍼질 때나, 가물 때도 운다는 신목(神木)으로 알려져 신성시하고 있다.   
필자가 찾은날도 소복한 여인이 나무아래 제물을 차리고 향을 피워 주문을 외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상한 것은 자웅(雌雄)이 서로 마주 보아야만 열매를 맺는다고 하는데 용계은행나무는 숫 나무 없이 해마다 은행이 많이 열린다.
암나무 홀로 열매를 맺는 것은 임하댐 맑은 물에 비친 자기의 그림자를 수나무로 착각(錯覺)하여 은행을 열게 한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리고 용계은행나무 주변 도로에는 용계은행나무 2세목이 무럭무럭 자라 노란 단풍이 나그네의 이목을 끈다.

용계은행 2세목은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된 것을 기념하여 지난 2004년 용계은행나무에서 은행 종자를 채취해 양묘하여 심어진 나무들로 전국적으로 수많은 2세목을 둔 천연기념물이다.
은행나무를 둘러보고 차를 다시 북으로 돌리면 구비구비 임하호 절경이 차창에 전개된다.
임하호는
임하면 임하리 반변천에 건설된 다목적 댐 건설로 생긴 호수로 유역면적이 1,361㎢, 총저수량이 5억 9,500만t인 다목적댐이다.

조금가다 다리를 건너면 포장길은 끝나고 와룡산 고갯길의 시작이다. 다리목 호반언덕 숲속에는 그림같은 집이 눈길을 끈다. 다리에 서면 사방이 그림이다. 호수와 울창한 숲이 구비구비 눈길마다 산수화다.
등산을 좋아한다면 다리목에 차를 두고 호반을 내려다보면서 흙길이 끝나는 지점까지 약 오리길을 시름시름 걸어도 좋은길이다.
확장공사 중이지만 걷기에는 좋은 적당한 경사로의 흙길이다.

 흙길이 끝나는 삼거리 길의 오른쪽은 지례예술촌 가는길이고 왼쪽은 임동.수곡방향이다.
여기까지 왔으면 지척의 지례예술촌을 꼭 둘러 보라고 권하고 싶다. 능선의 좁은 길을 타고 조금가다보면 왼쪽으로 영덕 이정표를 뒤로하고 곧장 달리면 임호호반까지 꼬불꼬불한 찻길이 이어지는데 강원도 산속을 달리는 듯한 한갓지고 호젖하다.
몰전 지례마을은 조선 숙종임금때 대사성을 지낸 지촌(芝村) 김방걸(金邦杰 1623~1695)과 그의 중형(仲兄) 방형(邦衡)의 자손이 340여년간 동족 부락을 이루어 주경야독하며 살아온 전형적 사림(士林)의 마을이었다.
이 마을이
임하담 건설로 수몰됨에 지촌가의 사람들은 수몰된 옛고향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뒷산 중턱에 지촌문중 소유의 종택과 제청, 서당 등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받아 3년에 걸쳐(1986~1989) 옮겨 다시 지어 예술창작마을로 문을 연 것이 지례예술촌의 효시이다.
지례예술촌은 현대의 은둔지로 내외국인들로 하여금 가장 한국적 리조트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라할 수 있다.

지례예술촌은 안동에서도 구비구비 첩첩산중 호숫가인 임동면 박곡리 산에 홀로 있다. 여기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자연의 아름다움, 평화로움과 고요함 그리고 옛스러움이다.
TV도 전화도 벽시계도 없고, 휴대폰도 터지질 않으니 당신을 방해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  천연기념물 175호 용계은행나무
                                                                                                                                    

▲  천연기념물 175호 용계은행나무는 원래 용계초등학교 운동장에서   700여년을 자라다가, 17년 전 임하댐의 건설로 수몰 위기에 처하자 각계의 노력으로 되살린 천년기념물이다.

▲  천연기념물 175호 용계은행나무 만추

▲  1990년부터 1994년까지 3년 5개월에 걸쳐 댐 만수시에도 안전한 높이로 제자리에서 흙을 15m 북돋아 산 형태(假山)를 만든 뒤 그 자리에서 15m 수직으로  올려 심은 천년기념물로 20억원이 소요된 소중한 문화재이다.

▲  천연기념물 175호 용계은행나무 만추

▲  천연기념물 175호 용계은행나무 만추

▲  천연기념물 175호 용계은행나무 만추

▲  천연기념물 175호 용계은행나무 만추

▲  임하호반
임하면 임하리 반변천에 건설된 다목적 댐 건설로 생긴 호수로 유역면적이 1,361㎢, 총저수량이 5억 9,500만t인 다목적댐이다.

▲  민추 임하호반 풍경

 

▲  용계은행나무 순환로인 와룡산 고갯길 비포장로에서 내려다 본 만추 임하호반 풍경

▲  용계은행나무 순환로인 와룡산 고갯길 비포장로에서 내려다 본 만추 임하호반 풍경

▲  용계은행나무 순환로인 와룡산 고갯길 비포장로에서 내려다 본 만추 임하호반 풍경

▲  용계은행나무 순환로인 와룡산 고갯길 비포장로가 끝나는 삼거리

▲  지례에술촌 전경.
임하호로 수몰된 지역이 옛
지례마을로 조선 숙종임금때 대사성을 지낸 지촌(芝村) 김방걸(金邦杰 1623~1695)과 그의 중형(仲兄) 방형(邦衡)의 자손이 340여년간 동족 부락을 이루어 주경야독하며 살아온 전형적 사림(士林)의 마을이었다.
이 마을이
임하담 건설로 수몰됨에 지촌가의 사람들은 수몰된 옛고향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뒷산 중턱에 지촌문중 소유의 종택과 제청, 서당 등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받아 3년에 걸쳐(1986~1989) 옮겨 다시 지어 예술창작마을로 문을 연 것이 지례예술촌의 효시이다.
지례예술촌은 현대의 은둔지로 내외국인들로 하여금 가장 한국적 리조트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라할 수 있다. 

▲  임하호가 내려다 보이는 와룡산 중턱의 지례예술촌 만추

▲  임하호가 내려다 보이는 와룡산 중턱의 지례예술촌 만추

▲  임하호가 내려다 보이는 와룡산 중턱의 지례예술촌 만추